라운드 테이블 패널 인터뷰 : (4) 김지윤 ‘언니에게 한 수 배우다’

2014. 3. 15 11:20 ~ 13:50 @ 광명평생학습관
00 그라운드 교육 라운드 테이블 인터뷰
인터뷰이: 김지윤, 경근혜 (마을 청년 창작단, 언니에게 한 수 배우다)
인터뷰어: 정아람 (00 그라운드)

배우기 위해 일하고 나누기 위해 배운다

[배움을 선택하는 자율]

‘언니에게 한수 배우다’(이하 ‘언한수’) 여러분이 볍씨학교(이하 ‘볍씨’)에서 공부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김지윤: 언한수가 지금 총 다섯 명인데 네 명이 볍씨 졸업생이에요. 볍씨에 가게 된 계기는 네 명이 비슷하면서도 달라요. 일반 초등학교를 다니다 부모님이 볍씨를 만들게 돼서 가게 된 경우도 있어요.

저는 볍씨가 만들어진 지 2년째 되던 해 입학했어요. 부모님이 볍씨가 일반학교와 다르다고 해도 어리니까 정확히 어떻게 다른지 모르잖아요. 엄마가 ‘조금 다른 학교다, 괜찮냐, 갈래?’ 해서 그냥 가겠다고. (웃음) 지금 생각해보니 ‘다르다’고 해서 약간 고민했던 것 같기도 해요. ‘학교 건물이 안 좋다’ 그런 얘길 들었거든요. (웃음) 그래도 별 거리낌 없이 가게 됐어요. 볍씨는 중학교 과정도 있는데 초등 6년을 볍씨에서 보내고 고민을 좀 했어요.

왜요?

김지윤: 볍씨에서만 있다 보니 다른 대안학교에도 관심이 생기는 거예요. 다른 곳에서도 생활해보고 싶어서 알아보다가 ‘그래도 볍씨에서 공부하면 가장 즐겁고 편안하게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겠구나. 내가 즐거운 공간이니까 여기에서 배우고 싶은 걸 배우자’라는 생각으로 중학교 과정까지 마치고 졸업했습니다.

중등 3년 과정까지인가요?

김지윤: 원래는 고등과정까지 있었어요. 제가 다닐 때는 필수 정규과정은 아니었고 중학교를 마치면 졸업이었어요. 당시 ‘볍씨 딛고’라고, 청소년 센터처럼 자기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볍씨에서 만들었는데 거길 1년 동안 다녔어요. 그런데 1년 하고 사라졌다고 해야 하나? 저 포함해서 세 명이 ‘볍씨 딛고’ 를 다니는 동시에 ‘언한수’’를 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지금은 중학교 과정까지밖에 없어요.

볍씨에서 어떤 점이 그렇게 재밌었어요?

김지윤: 제가 뭔가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선생님들이 ‘그럼 이건 이렇게 하자’라는 태도로 준비돼있었어요. 6년 동안 놀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면서 ‘꼭 해야 한다’는 강제가 없었고, 하기 싫지만 하다보면 재미를 스스로 느낄 수 있었어요. 공부라는 게 물론 싫을 때도 있었지만 머리 아픈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볍씨는 성적을 말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한 개념도 없었어요. 일반학교에서 말하는 쪽지 시험 정도인데 점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친구들에게 느끼는 자존심 싸움 같은 거였어요. (웃음) 내가 많이 맞추면 기분 좋은 건 있잖아요. 자기 성취감 같은 거죠. 라이벌 의식이 있는 친구가 많이 맞추면 샘나고. (웃음) 그렇지만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는 않았어요.

[경험과 가치를 나눈다는 것]

‘마을 청년 창작단’으로 2012년부터 아이들과 수업했고 장터에 참여해서 주민들을 잇는 편지쓰기와 걸개그림 그리기 워크샵 등을 했어요. 이런 수업의 원천은 어디서 구했나요?

김지윤: 저는 볍씨를 졸업하고 바로 온 경우지만 언한수를 시작한 멤버들 대개가 볍씨를 졸업하고 다른 곳에서 몇 년 동안 다른 활동을 하다가 다시 모인 거예요. 볍씨와 그밖의 활동을 통해 자기가 쌓은 경험에서 아이디어가 나온 것 같아요. 볍씨에서 같은 경험을 공유했으니까 수업에서 놀이 활동을 하더라도 ‘학교에서 어떤 걸 해봤는데 재미있다, 그걸 한번 해보자’ 하는 얘기가 나오기도 하고요.

무언가 할 때 공통된 문화가 기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일등 이등 등수를 매기는 게임은 다들 별로라고 생각하니까 하지 않는 것에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해요. 편지쓰기도 저희한테는 굉장히 익숙한 문화거든요. 볍씨에서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수업을 준비할 때 상대에게 과연 옳은 방법인가 의구심이 생기잖아요. 언한수는 본인들이 이미 배운 수업의 가치를 알고 등수 게임이 옳지 않다고 판정할 수 있었다니 흥미롭네요.

김지윤: 저희에게는 너무 당연한 가치와 방향이에요. 새로운 멤버가 들어오고 볍씨를 다니지 않은 사람들이 언한수를 꾸려가도 기존에 해왔던 것들에서 가치가 이어졌으면 좋겠는데, 우리한텐 너무 당연한 가치나 생각을 어떻게 전수할까 하는 고민이 있었어요.

언한수만의 다섯가지 원칙([인터뷰] ‘언니에게 한 수 배우다’ 두란)은 그래서 꾸려진 건가요?

김지윤: 네, ‘마을 청년 창작단’이란 걸 하자고 시작할 때 만들어진 원칙이에요. 활동을 시작할 땐 기준이 필요하니까요.

2012년에 했던 아동센터 수업이 2013년엔 어떤 식으로 심화됐나요?

김지윤: 아동센터 수업을 처음 시작할 때 ‘내가 가진 만큼의 경험을 나누자’는 것에 의의를 두었어요. 한 발짝 앞서나간 사람으로서 나눌 수 있는 걸 하자는 의미였어요. 이 친구들한테는 전문적인 강사가 필요한 게 아니라 먼저 경험한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의미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각자 가진 경험, 예를 들면 풍물이나 음악을 한 언니는 그 경험을 나누고 사진을 배운 언니는 사진을 알려주고. 미술, 사진, 풍물, 몸 소리, 책읽기 등의 문화예술 매체를 알려주는 수업이 2012년까지 중심적이었어요.

그렇게 한 다음에는 아쉬움이 남는 거예요. 동네에서 아이들과 재밌는 걸 해보려고 한 건데 동네에서 무언가를 더 재밌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죠. 동네 활동의 의미를 수업에서 좀 더 키워보고자 했어요. 그래서 2013년에는 아동센터 수도 기존 열두 개에서 두 개로 줄이고, 강사도 아동센터 하나당 기존 한 명 담당에서 팀(두세 명)을 짜 진행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이었던 수업을 두 번으로 바꾸고. 그러면서 아이들과 깊게 만나고 동네에서 활동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어요.

어떤 활동이에요?

김지윤: 쓰레기 줍기라든가, 매달 주제를 정해서 사진을 찍는 과정도 있었고요. 예를 들면 동네의 문이 주제면 찍으러 다닌다든가 우리 동네 텃밭이나 화단이 많으니까 찍은 것도 있고. 사진이나 애들이 쓴 글을 매달 작게 전시했어요. 동네에 계신 어르신께서 애들한테 직접 한수 알려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에 어르신 한 분 모셔서 요리 가르치는 수업을 한 번 했었고요. 음식을 만들면 어르신들 찾아봬서 드리기도 하고. 저희가 아예 모르는 분들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활성화되긴 어려웠지만 물꼬를 트는 걸 목표로 1년 동안 얼굴 뵙고 인사드리는 과정이었어요.

무엇보다도 어린 아이들이 동네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걸 알리는 게 작년 목표였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동네에서 뛰어 놀고 만드는 활동을 했어요. 저희가 마을창작, 마을을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 동네 문화를 만들기를 바랐어요. 지역아동센터가 있는 곳은 경제적인 환경이 어려운 곳이에요. 저희가 활동한 두 지역이 그런 공통점을 갖고 있어요.

동네에서 재밌는 게 진행되고 있는데 그걸 우리 옆집 애가 하고 있다면 ‘정’이 가잖아요. 동네 어르신들이 아이들에게 관심갖고 있다는 걸 아이들이 느꼈으면 하는 아동센터 선생님들의 바람도 있었어요. 아이들도 자기가 사는 동네를 직접 꾸미고 전시하면서 성취감을 누리고 무척 좋아했어요.

동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이야기를 짓는 전시도 했고요. 애들이 좋아하는 ‘귀신’이 이야기 주제였어요. ‘어느 건물에 귀신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썼는데 한 어르신이 읽어보시곤 진짜 있었던 이야기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웃음) 아이들에게 ‘너희들 얘기가 얼마나 진짜 같았으면 그러셨겠냐’며 들려주니 굉장히 뿌듯해했죠.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은 전부 초등학생이었나요?

김지윤: 한 센터는 중학교 친구들, 다른 센터는 초등학교 저학년 중심이었어요.

중학생 친구들은 어땠나요?

경근혜: 중등 아이들은 어떤 활동이든지 시작하기를 힘들어해요. 초등학생 친구들은 밖에서 뛰어노는 건 신나게 하잖아요. 자신이 관심 있는 걸 발견하면 그것만 계속한다든지. 중등 친구들은 좋아하는 걸 발견하는 것조차 힘들고 귀찮아해요. 오히려 선생님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친구들의 힘을 받아서 ‘이렇게 해볼까?’ 제시하는데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동네에서 뭔가 해보는 것에 목적이 있기보다 아이들의 시선을 돌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둬요. 생각이라도 한 번 더 해볼 수 있도록. 중등 친구들은 몸을 움직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서, 목표 설정을 점점 친구들의 특성에 맞춰 진행했어요.

직접 만나다보면 애초 설정한 목표를 아이들에게 맞춰 수정하게 되잖아요.

김지윤: 그렇죠. 쉽지 않아요. (웃음) 그렇게 맞춰 나가야 되는 것 같아요.
[공부와 학생의 분리]

아이들을 만나면서 교육에 대한 입장도 정리해나갈 것 같은데요, IDEC(International Democratic Education Conference 세계민주교육한마당, 이하 ‘아이덱’)도 그 연장선에서 하고 있는 활동인 것 같고요.
교육의 의미를 고민해본 적이 있나요?

김지윤: 그런 고민보다는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런데 교육에 대한 고민은 저희뿐만 아니라 다들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만나는 거니까 ‘선생님이 뭐지?’ 라는 것에서부터.

저는 17살부터 아이들을 만나왔어요. 나이 차이도 많이 안 나고 외양도 어려보이니까 저 스스로 용납이 안 되는 거예요. 아이들이 나이를 물어보면 뜨끔하고. 선생님의 자격이 나이에 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구나, 나이로써 선생님답지 않다면 무엇으로 선생님다워야 하지? 아이들에게 알려줄 게 많지 않은 것 같은데 ‘선생님’이라는 말을 들으니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그럼 무엇을 나눠야 하나.

일반학교에서 직접 수업하면서 교육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아이들한테 진짜 필요한 게 뭘까. 볍씨에서는 항상 아이들을 주체로서 존중했기 때문에 일반학교 문화를 접하고 고민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일반학교 문화’요?

김지윤: 30명을 데리고 수업한다는 자체가 문화충격이었어요. 볍씨에서도 한 반에 열 명이었고 아동센터도 아이들 수가 많지 않았어요. (이 인원수로는) ‘쉽지가 않구나’ 생각하면서 왜 일반학교 선생님들이 호통치고 규칙을 중요시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저도 아이들을 폭력적으로 대하는 게 스스로 느껴지니까 고민이 많았어요. 일반학교에서 바뀌어야 할 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 교실에서 모든 인원을 충족하면서 수업을 진행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우등생은 끌고 나가고 뒤처지는 아이들은 방치하니 모든 아이들이 평등하게 수업에 참여할 수 없고. 한 명씩 존중하고 개별로 필요한 부분을 보조하기에는 일반 학교의 구조적인 어려움이 있어요.

김지윤: 되게 잔인한 것 같아요. 저는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해서 실감은 못했는데 최근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느꼈어요. 작년에 제가 ‘한번 해보자’ 시도하는 생각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했는데 생각해보면 저보다 훨씬 치열한 애들이 한국에 엄청 많은 거잖아요. ‘상위권에 있는 학교에 들어가라’는 게 얼마나 학생들을 힘들게 하는 건지. 다들 치열한 만큼 나도 치열해야 하니까. ‘한번 준비해볼까’하고 가볍게 생각했지만 실은 그렇게 하면 절대 안 된다는 걸 느끼니까. ‘장난이 아니구나’ (웃음)

실제로 자기한테 공부가 왜 필요한지 모르면서 공부하는 경우가 많아요. 공부와 학생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김지윤: 맞아요. 고민할 여유가 주어져야 하는데. 제가 볍씨를 다닐 때 과학을 싫어해서 왜 배워야 되냐고 선생님께 만날 따지곤 했죠. (웃음)

그럼 선생님께서 답변을 잘 해주시던가요?

김지윤: 얘기해 주셔봤자 뭐하겠어요. 저는 이미 과학이 싫은데. 선생님이 아무리 말씀하셔도 ‘싫어요, 전’ (웃음)

볍씨에서는 배우기 싫은 건 안 배워도 돼요?

김지윤: 지금은 볍씨 학교가 아예 수업 시간표가 없어요. 아이들이 원하는 수업을 만들어서 하는 시스템이에요. 제가 다닐 때는 시간표가 있었으니 어쨌든 수업을 듣기는 해야 했어요. 제가 싫다고 뛰쳐나가거나 배우기 싫다고 버티고 있으면 선생님도 설득 작업을 시작하는데, 수업 과목을 싫어하고 공부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기보다 떼쓰는 태도를 지적 하셨었어요.

학교는 한 사람이 학생으로서 살아갈 때 더없이 중요한 공간인 것 같아요.

김지윤: 학교 자체가 틀렸다기보다는 그걸 어떻게 꾸리는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교육, 곧 삶 방식]

언한수는 교육의 내용으로 활동하는 것에서 나아가 직접 학교 공간을 꾸릴 계획도 있나요? 아이덱도 대의적인 목적의 교육을 한국에 소개하는 거잖아요.

김지윤: 학교를 만들자는 목표가 있는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꿈은 조금씩 있어요. ‘언젠가 볍씨의 선생으로 갈 거다, 청소년들이 즐겁게 공부하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언한수 자체에서 학교를 만들자는 생각보다는 우리 동네에서 배울 수 있는 거리가 있으면 좋으니까 동네 활동을 하는 것 같아요.

아이덱은 민주교육을 한국에 알리자는 목표도 있지만, 청년들도 함께 모여 교육에 관해 생각을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이전 행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한국에서도 열리면 재밌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우리가 겁이 없었구나. (웃음)

경험을 통해 몸소 습득하면 자기 지식이 되는 거잖아요. 요즘 학생들은 경험이 다양하지 않고 하나만 바라보기 쉬운데요. 잘 안 되면 실패했구나, 좌절하고 자기 자신을 놓아버리기까지 하고요.

김지윤: 볍씨를 동네에서 다니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있어요. 그 기억들이 같은 동네 아이들에게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덱에서 삶의 방식이 다양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교육의 방식도 다양하고요. ‘그게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하고 있지는 않나요? 대학에 들어가는 것, 취직하는 것. 한국에서는 제시되는 길 자체가 너무 좁아요. 아무도 안 알려주잖아요. 주변에 그런 사례가 없으면 모르고 살기 때문에. 이미 제시되어 있는 단 하나만이 답이 아니라는 걸 다같이 알아본다면 삶이 훨씬 풍부해지지 않을까요?

다양한 걸 추구하는 쪽은 전체 사회에서 소수인데, 언한수로 활동하면서 ‘왜 그런 활동을 해?’ 의문 어린 시선을 받아봤나요? ‘대학 가야지. 안 가면 어떻게 하려고?’

김지윤: 언한수 다들 많죠. 이 활동자체에 의문을 품은 시선을 받은 적은 없지만 ‘아 좋은일 하는데, 대학은?’ 그런 시선을 받은 적은 있어요. 하다못해 명절 때 친지분들 뵈면 ‘대안학교를 다니더라도 대학은 가야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은 모두 갖고 있어요. 한국에서 대학이 굉장히 중요하니 어쩔 수 없이 받을 수밖에 없는 질문인 것 같아요.

내 판단이 굳지 않으면 부모님의 염려에 기우뚱하기도 할 텐데.

김지윤: 저는 대안학교를 다니고 열일곱 살 때부터 활동해서 부모님이 이해하고 지지해주셨어요. 저 자신도 ‘어리니까 실패하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크게 흔들리는 것 없이 해왔고요. 오히려 중학생 때 미래를 고민했는데 저한텐 너무 먼 일인 거예요. 고민하다보니까 구체적으로 답이 안 나와서 힘들었어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너무 먼 일은 생각하지말자’ 하고 살아온 것 같아요. 저에게 반대하는 사람이 없어서 꾸준히 해올 수 있었어요.

한 인터뷰(<마을 청년 창작단, 언니에게 한 수 배우다>, 청년기자단 대단)에서 언한수 중 한 분이 “저희가 살아온 곳에서 활동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라고 입장을 말씀하셨는데요, 나고 자란 동네에서 활동한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것이 무척 신기했어요.

김지윤: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재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에 하는 것 같아요. 활동 하면서 ‘이게 재밌구나, 이런 식으로 계속되면 참 좋겠다. 이러다 보면 내가 사는 곳이 재밌어지겠다.’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일부러 힘써서 공동체를 기획하는 게 아니라면 공동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굳이 사람들 만나서 솜씨를 나누지 않아도 돈 주고 구매하면 되니까요. 마을 안에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가 궁금해요.

김지윤: 저희가 만난 첫 번째 대상이 아이들이잖아요. 아이들도 마을의 주민이기 때문에,만나면서 관계 맺는 게 힘들어도 재밌어요. 아이들과 같이 마을 문화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냥 함께 하면서 아이들과 지지고 볶고,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게 재미고. 무엇보다 저도 즐겁기 때문에 계속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사교성이 부족해서 처음 주민들 만난다고 할 때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먼저 들었어요. 그래서 마을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신 선생님의 도움을 받기도 했어요. 인사드릴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 인사를 받아주는 분이 계시다는 것 자체에서 소소하게 계속 재미를 느껴요. 여기서 끝나자니 뭔가 더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남아요. 그래서 계속 하게 돼요.

만남의 과정과 방식은 끝이 없는 것 같아요.

김지윤: 아이덱 설문조사를 초등학교에서 한 적이 있거든요. 마지막 질문이 ‘학교에서 어떤 걸 더 했으면 좋겠냐’였어요. 대부분의 아이들이 ‘현장학습’이라고 하더라고요.

아이덱을 준비하면서 해외 교육사례도 좀 보셨을 텐데 우리나라 교육과 비교해 어떻던가요?

김지윤: 미국의 경우 공교육에서 대학가기 위한 교육열이 심해요. 대안 교육이 학비가 비싸다보니 재정적으로 힘들고. 아이덱에 참관한 외국 사례를 보면 거의 지원을 못 받는 상황인데, 캐나다의 한 학교는 교육에 개입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는 곳이 있다고 해요. 그런 사례들이 해외에 하나둘씩 생기는 것 같아요

[스스로 교육함]

사람이 만나는 형식으로서의 문화, 플랫폼으로서의 문화를 고민하진 않으셨나요?

김지윤: 문화라는 것 자체를 고민하기보단 단기로 끝나지 않고 장기적으로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해요. 예를 들어 사진 수업을 한다면 찍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기록물을 남기고 동네에서 나눌 방법을 고민하죠. 1년 수업이 끝나면 너무 아쉽잖아요.

저희의 가장 큰 목표는 언한수가 아동센터에서 수업을 더 이상 하지 않더라도 아동센터나 아이들이 스스로 직접 문화 활동을 만들어나가는 거예요. 사소한 인사라도. 그래서 활동의 방식보다는 그 방식에 담긴 의미를 어떻게 남길지가 고민이에요. 어르신께서 요리수업 한 번 해주시고 끝이 아니라 그분과 어떻게 계속 관계를 맺어갈까 하는 것들.

교육이라는 특정한 형식을 통해 만날 땐 친분 이상의 관계를 맺게되는 것 같아요.

김지윤: 저희는 그 동네 사람이 아니라서 어떤 분들이 계신지 몰라요. 그래서 오랫동안 그곳에 계신 아동센터 선생님들, 부모님의 친구분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어르신들과의 만남도 그렇게 이루어졌어요. 철산4동에는 10년 동안 작은 마을 도서관이 운영되고 있어요. 그곳 선생님이 동네를 굉장히 잘 알고 계셔서 ‘동네학교’(철산4동 아동센터) 수업을 같이 진행하고 있어요.

저희는 아직 초보라 동네 어르신들과 관계 맺기가 어렵지만 도움주실 분이 계시냐고 자문하면 지역아동센터 선생님들께서 소개해주세요. 작년 12월에는 따듯한 손길이 필요한 분들을 연결해주셔서 아이들이 쓴 선물, 편지를 전해드렸어요. 아이들과 요리한 음식도 때때로 그분들께 나눠드려요. 음식을 배달할 땐 넝쿨도서관 이모들과 센터 선생님들과 함께 목도리도 짜 드렸죠.

수업이나 강의를 살펴보면 아동, 어르신들, 청년들을 만나왔는데 청년 문제에도 관심이 많나요?

김지윤: 저희가 청년이기 때문에 고민하는 것 같아요. ‘청년 교육’이란 게 저희와 다른 청년을 교육한다는 게 아니라 저희 스스로 교육한다는 뜻이 더 커요. 저희의 마지막 원칙이 ‘배우기 위해 일하고 나누기 위해 배운다’ 거든요. 일을 하고 나누면서 동시에 배워야 되는 거예요. 수업을 하다 보면 자기가 부족하다는 게 계속 느껴지잖아요. 그런 것들을 채우는 게 필요해서 ‘우리가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청년 강좌를 열었고 아동 발달을 배웠어요. 광명시를 알기 위해서 오래 살고 활동하신 분도 뵈었고요.

하다보면서 ‘그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하는 고민이 생겼어요. 지역에서 활동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요. 언제까지 1년짜리 프로젝트 따면서 해야 하나, 단체의 자체 프로그램을 기획해볼 순 없을까, 어떤 활동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요. 그래서 아이덱에서 ‘청년’이란 주제를 다뤄보기로 했고요.

청년 활동가들과 긴밀히 만나기도 했나요?

김지윤: 2012년에 광명시에 있는 청년 팀들과 두 번 모인 적이 있어요. 모여서 지속적으로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어 언한수에서 주도적으로 했는데 잘 되진 않았어요. 그때 만난 계기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게 되었어요. ‘지구마을청년대학’(이하 ‘지마청대’)이라고 청년 대학을 만들고 있는 팀이 있어요. 그 팀 중 일부가 아이덱에 많이 들어와서 같이 준비 하고 있어요.

아이덱은 지마청대, 언한수 뿐만 아니라 광명에 사는 청년, 대안 학교를 졸업한 청년, 부산에서 온 청년, 당산 쪽에 사는 친구 등 다양한 지역 청년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도 2012년에 만난 계기로 이렇게 연락 주고받게 됐고요.

청년이 결집해서 공동 창작하는 문화가 익숙하진 않은 듯해요.

김지윤: 저희는 볍씨 졸업생으로 시작했으니까 공통된 문화가 있으니 큰 이의 없이 받아들이는데 다른 팀들은 ‘너랑 나랑 살아온 경험이 다르니까 생각을 맞추는 것부터 어렵다’는 얘길 들었어요. 그때서야 제가 ‘이렇게 생각 맞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소중한 거구나.’ 싶었어요. 기획이란 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아이디어 모으는 건 논의하면 쉽지만 실제로 실행하는 건 ‘일’이잖아요. 누군가를 섭외하고 행사를 홍보하고. 저희도 1~2년 했지만 쉽지가 않아요. (웃음)

그렇지만 저희는 광명YMCA에서 사무용 공간을 지원해줘서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어요. ‘언한수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 담임선생님도 지금 광명 YMCA 사무총장이고요. 처음부터 방향성을 정해주시거나 기획 실행할 방법을 도와주셔서 모른 채로 시작해도 서서히 배울 수 있었어요.

자금을 독립적으로 마련하는 고민은 계속 될 것 같네요.

김지윤: 맞아요. 저희가 수익을 내는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서 계속 지원 받아야 하는 건지, 그게 힘들면 어떤 식으로 수익을 내야하는지 고민을 마음 한편에 갖고 있어요. 사업을 다른 재단에서 따서 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지원 기간이 제한돼있고 1년 하고 또 다시 기획서를 써야 하고, 지원에 따라 성과내는 것도 무시할 수 없고요.

처음 시작할 때 우리는 ‘일’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봉사나 동아리로 생각 말고 본격적으로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하자. 그러려면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유지하고 힘쓸 수 있어요. 지금 받는 월급으로는 독립하기엔 많이 부족해요. 어떻게 해결할지는 계속 고민중입니다.

작년에 참관한 IDEC 프로그램에 ‘배움과 나눔’이 있던데 여기서 말한 ‘배움’은 무엇인가요?

김지윤: 미국에서 열렸고 ‘런 앤 쉐어’라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사람을 만나서 얻는 배움에 가장 큰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아요. 참가자가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그 안에서 사람을 만나고 얘기 나누는 의미가 커요. 프로그램에 아무 것도 참여하지 않고 그냥 얘기만 나누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 IDEC에 오는 사람도 많아요.

보통 주최측은 같이 모여 듣는 공개 강연을 준비하지만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아요. 참가자들이 준비하는 프로그램이 더 중요하고 프로그램을 직접 열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많아서 자율적으로 진행돼요. 저희도 참가자로 프로그램을 열어서 언한수를 소개하고 청년들이 모여 교육에 관한 서로의 고민을 나누었어요.

김지윤 (‘마을 청년 창작단, 언니에게 한 수 배우다’)
2011년, 광명 YMCA 볍씨학교 졸업생들이 모여 만든 ‘언니에게 한 수 배우다’ (줄여 ‘언한수’) 는 마을을 위한 창작활동에 집중한다.

“배우기 위해 일하고 나누기 위해 배우려는” 그들은 나고 자라 배운 광명시에서 지역아동센터 교육, 청년 강좌, 언니네 장터 등 지역 기반 활동을 펼친다.
2013년부터 현재, IDEC 2014 KOREA (International Democratic Education Conference· 세계민주교육한마당)를 주관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중이다.

민주교육이란 ‘자기가 하고 싶은 배움을 내가 정할 권리가 있다’는 가치를 인정하는 교육이다.

* 언한수 페이스북 facebook.com/withunni
* IDEC idec2014.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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