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드 테이블 패널 인터뷰 : (5) 황윤지 ‘씨앗들 협동조합’

2014.3.20. 14:00-16:30 @ 혜화동
00 그라운드 교육 라운드 테이블 인터뷰
인터뷰이: 황윤지 (씨앗들 협동조합)
인터뷰어: 정아람 (00 그라운드)

[농사란 땅을 이해하는 과정]

그동안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환경은 안정적이었나요?

황윤지: 저희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이 못 되었어요. 학교 안에서 시작했는데 학교에서 마찰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계속 텃밭을 옮겨다니면서 활동했거든요.

농사는 몇 월부터 몇 월까지 최소 6개월 이상은 계속 해야지 결국 마지막에 가서 열매 하나를 딸 수 있는 시스템이에요. 지금까지 한 번도 같은 땅에서 같은 농사를 두 번 이상 해본 적이 없어요. 이걸 겨우 몇 달을 해봐서 열매 하나를 얻는지를 해보는 건데 다음 해에 아예 낯선 환경에서 그 과정을 다시 해보니까 전년도 했던 방법은 실패할 수밖에요. 그러다보니까 저희 안에 교육 지침이라든가 컨텐츠를 제작하고 공유하고 새로 들어오는 분들에게 알려드릴 만한 기회가 없었어요. 정리할 시간도 없었고요. 껍데기만 남는 느낌이 계속 들더라고요.

극복할 방법을 많이 시도해보셨나요?

황윤지: 극단적으로 우리가 땅을 사버리자. 그게 현실적인 해결책이 아니니까 ‘그래도 우리가 흔들리거나 와해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우리 스스로를 교육하면서 확신을 갖는 것. 그래야 외부 환경이 달라져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지원 사업이나 사회적인 참여 활동이 사회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당연히 좋고 가치 있지만, 그 안에서 우리 정체성을 잃어버린 경우가 너무 많으니까 그 전 단계로 지금 그걸 보강해야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죠. 이번 기회를 통해서 조금 더 질적 성장이 필요해졌어요.

모든 조합원들이 적어도 다른 사람한테 전문적인 지식을 스스로 확신하고 다른 사람에게 알려줄 수 있을 만큼의 교육?

황윤지: 그러면 정말 좋겠죠! 그걸 장기 목표라고 본다면 우선 단기 목표는 우리의 한 회 활동을 서로 많이 이야기해보고 정리를 위한 시간을 많이 갖자. 정리된 내용으로 이걸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간접경험 할 수 있도록 말이죠. 저희가 1년 동안 무언가를 해봤다고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으면 신규 조합원한테도 어떤 이유로 어떻게 잘못되었는가를 보여줄 수가 있잖아요.

체험을 공유할 때 특정한 양식이 필요한 건가요?

황윤지: 만약에 이 농사가 잘 되었거나 안 되었다면 무수히 많은 요인이 있거든요. 비가 며칠 몰아쳐서 흙이 쓸려 내려갔을 수도 있고, 벌레가 특별히 많이 꼬였을 수도 있고요. 씨앗이 안 좋았거나 우리가 간 날짜가 너무 짧았을 수도 있고, 옆 밭에서 농약을 썼을 수도 있어요.

그걸 매일 기록하거나 정리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가서 뭐가 원인이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결국 망했어, 우린 농사 되게 못 짓나봐.’ 능력 미달이라는 등의 결론밖에 안 나요. 조직을 계속 이어나가려면 분석하고 컨텐츠화 하고 전수할 게 필요한데 농사일이 항상 너무 힘들기도 했고, 끝나고 나서 수확물이 많을 땐 기쁨에 도취되어서 흐지부지 끝났죠. (웃음)

어떤 활동이든 지속하려면 자기 ‘로컬’의 기반을 다지는 게 중요하잖아요. 씨앗들과 같이 도시 농업을 하는 사람들에겐 땅이라는 원초적인 공간이 가장 절실하겠어요. 땅을 지원하는 사업은 없나요?

황윤지: 저희도 그게 항상 답답한데 지원 사업은 단기적인 프로젝트성이잖아요. 저희한테 그런 걸 지원해줄 수 있는 단체가 없거니와, 서울에 그런 농업 농지인 빈 땅이 거의 없어요. 그걸 빌리거나 사는 건 서울 땅값이 워낙 비싸서 불가능해요. 그러다보니 지자체 소유 자투리 땅을 많이 사용하거든요. 그런데 지자체에서도 그 땅의 목적을 계속 바꿔요. 건물이 들어오든지 공사하든지. 그래서 임시적으로밖에 사용할 수가 없어요.

아예 텃밭을 목적으로 큰 부지를 가진 곳도 있어요. 좋긴 하지만 구획이 계속 바뀌는 단점이 있죠. 저희가 단체이긴 하지만 몇 명의 소수잖아요. 그런 몇 명이 국가나 지자체 소유의 땅을 점거한다는 게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왜냐하면 그 땅이 사실 ‘시민 모두의 땅’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근데 몇몇 시민이 분양받아서 독점적으로 사용한다는 게 문제인 거죠.

농사는 땅을 구획하고 사용할 수밖에 없거든요. ‘내 땅’ 이런 느낌으로. 그러다보니까 그 사람이 그 땅을 소유한다는 것에 대해서 분노하는 사람이 되게 많아요. 그 안에서 땅을 1년 미만 사용했으면 내년엔 딴 사람이 써보는 게 평등하다고들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 같은 단체도 구획이 매번 바뀌고 다음에 신청이 될 수 있지만 그땐 했던 땅이 아니라 다른 구획에서 해야 할 수도 있는 변수가 있어요.

옥상텃밭이나 상자텃밭이 대안일 수 있는데 씨앗들은 왜 굳이 노지 텃밭을 주장하나요?

황윤지: 옥상텃밭은 ‘땅심’이라는 게 없어서 작물이 부실해요. 크기도 작고 힘도 없고, 땅에서의 농사와는 달라요. 물론 가치는 있어요. 빈 옥상을 텃밭으로 활용한다거나 짜투리 베란다에 상자를 놓는다는 것. 근데 일반 농사와 다른 특수한 환경이고 인위적인 공간이라서 작물이 자연스럽진 않아요.

옥상에서 하면 상자의 깊이 만큼밖에 흙을 놓을 수가 없어요. 옥상전체에 흙을 채워서 텃밭 비슷하게 할 순 있어요. 일반 땅보다 부실해서 물을 주면 건물 하중에 문제가 생겨요. 물을 흡수한 흙은 몇 톤의 무게인데 그게 건물에 올라가니까요. 옥상 텃밭을 고려해서 건물이 설계되었다면 문제가 아닌데 일반적으론 고려하지 않아요. 저도 집 베란다를 콘크리트로 막고 흙을 퍼부어서 키웠거든요. 1년은 할 수 있더라고요. 땅은 땅들끼리 연결되어 있어서 순환이 되는데 콘크리트는 안 돼서 흙을 파보니 안에 해충이 어마어마하게 서식했더라고요. 습기도 엄청 많고 환풍이 안 되니까. 너무 많아서 손으로 잡을 수도 없더라고요.

옥상 텃밭은 건물주와의 문제도 있어요. 공간을 기부해주면 할 수 있지만. 텃밭 때문에 건물에 수십 명이 들락날락 하면 싫어하는 사람도 많아요. 흙 아래는 흡수가 안 되니까 장마 때는 물이 넘치거나 흙 위에 물 웅덩이가 생기기도 하죠. 하지만 옥상텃밭을 하는 분들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공간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건 저희도 공감하고요.

아파트 단지 화단에 하는 분들도 꽤 많죠. 저희도 그런 제안은 몇 번 받았어요. 단지 안에 텃밭을 만들고 싶은데 같이 하자. 근데 사유지다 보니 아파트 주민들의 땅이라서 저희는 전반적으로 운영하는 관리자가 되는 느낌이 들어서 하지는 않았어요.

[생활에 스미는 공동체]

씨앗들에게 모여서 농사짓는다는 의미가 뭔가요?

황윤지: 공동체적인 특성이 커요. 내 삶의 일부라도 서로 공유하는 면이 있고 수확물도 형편없지만 같이 소비하고 같이 먹고 식사를 같이 할 때가 많거든요. 텃밭으로 농사하러 가면 포트락 같은 걸 했어요. 먹을 걸 싸와서 같이 먹는데 전에 수확한 작물로 요리를 만들어 먹는 친구도 있죠.

각자 집에서 요리해 와서 나눠먹으니까 식탁을 공유하는 개념이에요. 수확물도 지역사회에 기부하거든요. 미미한 자급자족의 의미가 있는 거죠. (웃음) 일주일에 한 끼 정도 먹을 수 있는 자급. 수확량도 많지 않고 농약도 안 쓰니까 양이나 품질도 월등하지 않은데 스스로 가꿔 먹는 것.

협동조합으로 거듭나면서 구성원도 다양해졌을 것 같은데요.

황윤지: 처음에 학내에서 활동했다는 것 때문에 ‘그 학교 출신들’ 이런 분위기가 있어서 접근성이 좋은 조직은 아니었어요. 들어와 보면 특정 학교 애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 대학생들만 있는 단첸가 하는 의문도 받았죠.

협동조합을 설립했지만 연령대가 폐쇄적이라는 게 문제예요. 청년조직이라서 연령대 구성을 잘 모르는 분이 들어오시면 ‘여기 애들만 있는 덴데, 나 괜히 잘못 들어왔구나’ 저희가 본의 아니게 이런 인상을 끼치기도 했지만 본인 스스로 이질감을 느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그런 분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저희도 청년이 아니게 될 테니 청년 조직으로 계속 머물고 싶진 않거든요. 다양한 연령층이 있는 게 좋죠. 초등학생 조합원도 있고 어르신도 계시고 그래요. 저는 그런 게 가족적이고 더 좋아요. 또래문화가 강해서 공감대 형성이 잘 안되는 한계점은 탈피하려고 노력해요.

전문적인 농사꾼이 되기보단 농사에 대한 지식을 보급하려는 색깔이 더 강해보여요. 씨앗들이 농사를 대안적인 삶의 한 모델로 제시하는 활동이라면 세대를 막론하고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황윤지: 그런 면에선 저희는 다른 청년 단체보다 좀 더 나은 것 같아요. 청년 단체들이 청년 실업이라든가 등록금 문제 등의 문제를 표방하고 있다면 ‘텃밭’이나 ‘도시농업’, ‘귀농’, ‘도농교류’ 등 저희 관심사는 세대 구별이 적은 분야라고 생각해요. 저희 내부적으로는 세대 색채를 버리지 못했지만 연계하는 단체는 선배단체나 시민 활동하시는 중장년층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위아래뿐만 아니라 수평적으로도 소통하죠.

청년의 입장을 구색 맞추기 용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는 구성적 측면에서 조화를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시 농업의 대안이나 다음세대로 이어지는 단체로 만들고 싶어 하셔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저희는 감사하지만 한편 거기서 벗어나려고 시도도 많이 했어요.

어떤 이유로 그렇게 노력하셨나요?

황윤지: 전수하는 느낌이라서 저희만의 색깔이 없으니까요. 2010년에 를 짤 때 기존의 다른 도시농업 학교와 과목이 똑같았어요. 저희들도 그 강의를 수강했고 우리가 좋았던 강의 위주로 편성했지만 그 강사진과 강의제목 기존의 것 그대로 가져왔거든요. 그러다보니 우리한테 맞지 않았고 너무 전문적이거나 아니면 너무 실전적이었어요.

저희도 처음에 가치관 형성 과정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단체에서 거의 가져오다시피 하고 저희 성격에 맞는 몇 가지를 보완하면서 나갔어요. 그 모든 시도들이 벗어나려는 시도였을 수도 있어요. 계속 보완하면서 윗 세대 분들이 저희의 여러 시도를 지켜봐주셨죠. 덕분에 지금도 언제든지 문제에 부딪치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상황이에요.

씨앗들 또한 자기들만의 도시 농업 단체를 꾸릴 후배들에게 전수할 생각인가요?

황윤지: 처음부터 항상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저희가 처음에 시작했을 당시에 상황 자체가 ‘우리들만을 위한’이라기보다는 ‘학내에 텃밭을 만들자. 텃밭에 대한 대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학내에 이런 생산적인 공간이 필요하다.’ 저희는 기본적으로 졸업할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그 텃밭을 가지고 나오는 건 불가능하니까 새로 들어온 학생들에게 전수하거나 넘겨줘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 이유에서 를 만든 거예요. 우리가 이 땅을 갖고 나갈 수 없는데 관리하고 지켜나가려면 그런 학생들이 있어야 한다. 계속 모집하는 것보단 정규 강좌를 만들어서 이 강좌를 수강한 학생들이 밭을 관리할 수 있게끔, 그래서 밭이 계속 살아나갈 수 있도록 밭 스스로의 생존력을 만들자. 그래서 이런 교육 프로그램을 만든 거죠.

[원하는 배움을 학교에 제안하기]

수업 개설할 때 학교에서 잘 협조해주던가요?

황윤지: 사실 그게 뜻대로 잘 안 됐어요. 왜냐면 학교에다가 교육 프로그램 하나를 정규 교과로 넣는 게 불가능하거든요. 저희도 관련 교수님 자문을 구하고 학교에 지원서도 내고 학교와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학교 선생님의 지원도 받고 했지만, 아무래도 정규 수업 과정으로 자리매김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이런 컨텐츠가 우리 학교에 필요하다는 합의가 있어야 하고 학생들의 수요를 증명해야 했어요. 이 분야의 전공 교수도 학교에 있어야 하고요.

저희가 모든 걸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실험적인 형태로써 학내 수요를 증명해보려고 했죠. ‘다년간 운영해본 결과 우리학교 학생들은 이런 강의를 원한다, 그러니 ‘도시 농업’이나 ‘농사’라는 분야를 핵심 교양으로 넣어달라. 대학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는 걸 주장하고 싶었거든요.

근데 그게 정착하려면 정말 많은 자료가 있어야 했어요. 당시엔 도시농업에 대한 개념도 없었고 붐도 없었어요. 이러다보니까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땐 너무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렸지만 지금은 학교에 제안해볼 수 있는 상황인 것 같아요.

학생들게 텃밭 가꾸기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 같나요 ?

황윤지: 20대 초반 이런 친구들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재미로 들어오는 경향이 많아요, 저희 단체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지를 표방하지 않아서 다양한 정치 성향이나 가치관을 가진 친구들이 많이 들어와요. 그래서 이 안에서 어떤 가치관을 형성해가는 과정을 제가 목격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저희 단체에서 하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 교육 컨텐츠보다는 한 사람의 가치관을 긍정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그게 실은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강제한 것도 아닌데 이 친구들이 문화 속에서 삶의 방식이나 방향을 수정해나가는 걸 보는 것.

그런 친구들 덕분에 저희 활동에 전문성이 생긴다고 생각하고 계속 만나고 싶고 좋은 영향을 주고받고 하고 싶어요. 저희가 교육사업 쪽으로는 성공했다고 할 수 는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긍정적인 몇 명의 사례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같이 활동하면서 생활방식이나 삶의 패턴이나 방향성을 바꾼 친구들.

반응은 어땠나요?

황윤지: 새로운 것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정말 재밌었어요. 첫 강의를 친구들이랑 오픈했는데 ‘야 우리가 친구 한 명씩 데려오자’ 저희가 5명이었으니까 한 명씩 데려오면 10명이고 세미나 형태로 강사님 모셔놓고 진행하면 낫겠다 생각하고 오픈했는데 60명이 온 거예요. 그때부터 너무 자극이 되면서 우리들끼리만 재밌었던 게 아니라, 학교 커뮤니티에 올린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농사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수강신청 한 것도 아니고 궁금해서 자발적으로 온 학생들이 이렇게 많다는 데 자극을 느꼈어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서 흥미로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저희가 만든 인터넷 카페에 자발적으로 수업 평가 올리고, ‘밭에 가서 스스로 관리해봐도 돼요?’ 만날 물어보고. 우리 텃밭을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하게 됐고 우리가 안 가도 그 아이들이 친구들도 데리고 와서 ‘누가 키우는 건데 뜯어먹어보는 애들도 있고 비오는 날엔 사진 찍어서 ’제가 오늘 가봤는데 아무 이상 없습니다.‘ 올리는 친구도 있고 그게 무척 감동적이었어요.

활동의 가치가 다른 사람에게서 바로바로 느껴지니까 ’이걸 계속 할 필요가 있겠구나. 내 삶도 바뀌어나가는 게 좋겠다‘ 생각을 진지하게 안 했어도 항상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수업보다 수강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서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존재로서 영향을 받는.

지금은 저희가 아니어도 지금은 학내에, 자생하는 동아리들이 많아졌어요. 그게 유의미한 것 같아요. 저희가 이식시키는 방식으론 너무 권위적이잖아요. 처음엔 텃밭학교라는 걸 학교마다 돌아가면서 운영하면서, 운영할 친구들 모집하고 정착시키고 떠나고 했는데 각 학교에 자생적으로 생기면서 굳이 개입하지 않아도 됐어요.

청소년들도 만나봤어요?

황윤지: 대안학교에서도 수업을 했고 초중고 C.A 수업도 많이 했어요. 대학에서 수업을 하니까 학교에서 연락이 많이 왔어요. 그래서 저희가 직접 이론과 실습 강의를 했었거든요. 학교 안에다 텃밭 만들어서 애기들일아 같이 운영하는. 그때도 새로운 형태로 시도를 많이 해봤고. 초등학생들이랑 할 때는 텃밭 그림일기를 정기적으로 쓰고, 동시 짓기, 스마트 폰으로 CF나 영화 촬영해서 발표하기 하면서 아이들이 많이 바뀌는 걸 느꼈어요.

여자애들은 벌레 도망다니고 하기 싫어하고. 나중에는 자원해서 물 주려고 하고. 벌레 사진 찍어오는 등 호의적으로 바뀌었죠. 키운 작물에 대한 애착심도 생기고 텃밭 동아리라는 것에 자부심도 생겼어요. 학내 다른 동아리랑 다르게 자기네들은 공간이 있으니까 자기 거인 양 관리하면서, 바로 옆에는 급식 잔반통으로 퇴비 만들어서 지렁이도 키우고 관리해주고. 지렁이도 안 무서워하고.

[공동체 스스로를 위한 교육]

대학 안에서 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본인들이 대학생이기 때문에 대학생으로서 일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가장 적합하고 실제 우리들이 대학의 땅을 개간한다고 했을 때 아무도 하지 않았던 걸 시도했다면 그 확신은 뭐였어요?

황윤지: 복잡한 사고과정을 거치지 않았어요. 우리가 학교에 제일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서 시도했던 게 제일 크고. 대학생은 아무래도 지역성이 없잖아요. 다른 지방에서 오는 친구들이 많고. 학교 주변이 나의 터전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다른 곳에 삶의 터전을 갖고 있는 친구도 없고. 그래서 당연히 학교 말고는 다른 공간을 생각하기 어려운 면이 있죠.

처음에 제안한 오빠가 외국에서 ‘게릴라 가드닝’ 하는 히피들의 동영상을 보고 ‘해보자’고 해서 시작한 거거든요. 히피니까 자기네끼리 놀면서 보도블럭 걷어버리고 식물 심고 파티하는 내용이었어요. 정치적인 움직임이라기보다 그래피티 하는 느낌으로 우리 흔적을 뿌려버리고 학교를 눈치 못채게 바꿔버리는 소소한 재미에서 시작한 거예요. 사회적 메시지가 없었는데 학교측에서 ‘왜 하냐’고 물어서 ‘이런 이유로 합니다’ 의미를 찾아 붙인 거지, 사실은 거창한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재밌게 했던 것 같아요.

저희가 생각하기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가장 가까운 근교에서 농업’을 하는 게 도시농업이거든요. ‘도시민’들이 도시에서밖에 할 데가 없으니까 내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하는 거죠.

서울 지도를 펼쳐보면 녹색으로 칠해져 있는 공간이 대부분 대학이에요. 서울에서 가장 단위면적이 큰 곳이 대학인 것 같아요. 도시 공간과 다르게 대학에는 나무나 자연 공간도 많잖아요.

그 땅을 어떤 목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공적인 의미가 있다고 충분히 의미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학교에서는 땅을 이용하면 곧 소유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결과물은 우리가 소유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공적인 의미를 억지로라도 만들어내는 게 이해가 잘 안가네요.

황윤지: 텃밭의 의미에 대해서 공감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수확물로 접근하는 사람들은 ‘왜 농사를 해야 되는 건지’ 제일 많이 빚는 문제가 그런 거예요. ‘너희가 도시 농업을 하면 지방의 농부들이 죽는다. 지금 농업이 우리나라가 열악한 환경에서 농민들의 주권까지 앗아가는 거다’고 거창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실 저희가 농민들한테 그렇게 피해를 입히면서 농사를 하고 있다면 하고 싶지도 않거든요. 그건 도시농업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판단이라고 생각해요. 저희도 농사 되게 열심히 하지만 일주일에 한 끼도 그걸로 충족할 수 없는 상황인데 농민들의 생계를 방해하면서 도시에서 굳이 농사를 짓는다?

저희가 처음 학교에서 시작했을 때는 수확물 생각은 전혀 안 했어요. 농사를 하는 과정에서 학교가 교육을 위한 공간이듯,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했고 그걸 우리가 함으로써 학생들에게 교육적으로 전시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생들이 저희 때는 농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전혀 없었잖아요. 그러니까 저희가 누군지 모르지만 어떤 애들이 저기 맨날 모여서 깨작깨작 가꾸고 있다, 그럼 지나가면서도 볼 수 있고. 농사에 대해 한 번이라도 화두를 던질 수 있잖아요. 이상하게 느껴지니까.

2013년엔 서울시 지원 사업으로 ‘e-레알텃밭학교‘ 영상을 제작했는데 자평한다면?

황윤지: 저희가 지원사업으로 ‘레알텃밭학교’ 의 사이버 컨텐츠를 제작했지만 전체 강의 중에 반 정도는 전문가를 섭외해 진행한 거란 말이죠. 전문적인 정보를 주는 게 유용할 테니 당연하긴 하지만 그런 분들을 사업비로 초청해서 컨텐츠 만들어서 다시 배포하는 그 안에서 저희의 역할, 색깔이나 정체성이 불분명하더라고요. 문제는 그렇다고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느냐, 그럴 순 없다는 거예요.

교육 컨텐츠를 만들어서 배포하고 좋은 강의 열어서 사람들 초청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우리에게 더 중요한 건 우리 안에 기초가 확실해야겠다는 생각이 다들 있어요. 공동체를 만들었으니 기왕이면 혼자서 공부하는 ‘스스로’가 아니라 ‘공동체가 스스로 한다’는 거죠. 이 안에 ‘자급’의 의미가 있거든요. 혼자서 한다는 건 아니고 서로서로 가르쳐주고 배우면서 내실 있는 우리의 컨텐츠를 만들어보자.

올해의 중요한 과제가 생겼네요.

황윤지: 그래서 이번에 타이틀을 붙인다면 ‘셀프 레알텃밭’. 저희한테 뭐좀 알려줄 수 있냐 강의를 해줄 수 있냐 문의가 오는데 다른 강사님을 소개해준다거나 ‘들어와서 같이 체험 해봐요’ 이런 답밖에 못했어요. 협동조합의 사업 목적 중에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내용이 ‘조합원의 교육’이에요. 내부 조합원들에게 조합의 철학이나 가치관을 정기적으로 교육해야 하는 의무가 있어요. 근데 그런 걸 사실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거나 다름이 없죠.

그리고 협동조합은 소수의 사회적 약자가 모여 만든 조직이다 보니까 다른 약자들의 가치관과 부딪칠 때가 많은데 이럴 때 우리 안에서 교육을 통해 가치관의 확립이나 강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조합원들이 조합에 대한 회의감도 느끼고 조합의 사회적 의미나 역할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러다보니까 조합의 성격이나 의미도 점점 약해지거든요. 그래서 조합원 내부의 교육이 사실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랬을 때 우리가 사회적으로도 역할을 할 수 있는 거고. 다른 교육을 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런 게 부족했다는 반성을 많이 하고 있어요.

황윤지(‘씨앗들협동조합’ (구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아스팔트 보도블럭을 깨고 게릴라 텃밭을 만드는 내용의 외국 다큐멘터리에 감명받은대학생들이 ‘씨앗을뿌리는사람들’을 꾸렸다.
2010년, 대학교 안 버려진 땅에 텃밭을 가꾸기 시작해 대학텃밭 보급, 레알텃밭학교 등의 활동을 해왔다. ‘무 농약, 무 화학비료, 무비닐’이라는 유기농 텃밭의 원칙을 지키고 수확한 작물을 함께 요리해 나누어 먹는다. 땅과 식물이 지닌 생명의 가치를 서로 배우면서 사회가 등한시한 먹거리와 환경 등의 문제 의식을 나누는 환경공동체의 의미를 갖는다.

*씨앗들 협동조합 http://www.wedofar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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