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운동’ 라운드테이블3 “청년운동의 성과와 세대교체” 녹취록

Chapter 3. 운동 : 라운드테이블 3 “청년운동의 성과와 세대교체”

일시    2015년 3월 22일 일요일
장소    오피스커피
패널    박도빈(문화예술커뮤니티 동네형들), 이가현(알바노조), 이태영(녹색당, 신촌민회)
사회    성이름(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사진    전소영


성이름  안녕하세요. 오늘 라운드테이블은 청년운동의 성과와 세대교체라는 제목으로 녹색당과 신촌민회에서 활동하는 이태영 씨와 알바노조의 이가현 씨, 문화예술커뮤니티 동네형들의 박도빈 씨를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 보려고 합니다. 저는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이하 기청넷)에서 활동하는 성이름입니다.

기본소득 청’소’년네트워크는 기본소득이라는 정책을 한국사회에 실현시키기 위해 주장하고, 그와 관련된 많은 아젠다에 대해 연대하고 발언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른 패널분들의 활동과 단체에 대한 소개도 짧게 들은 후 본격적인 행사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태영  안녕하세요. 저는 이태영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녹색당이라는 정당의 당원이고, 서울시당에서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녹색당은 아시죠? 정당이구요. 또 신촌도 아시죠? 그 신촌에 체화당이라는 작은 카페가 있어요. 그리고 풀뿌리사회지기라는 대안대학, 또 신촌민회라고 하는 지역시민단체라고 할까요. 민회는 주민회의체를 만드려는 실험을 이어오고 있는 단체인데요. 저는 신촌민회 사무국장이라는 역할로 체화당과 풀뿌리사회지기학교, 신촌민회와 함께 어우러져 가면서 지역에서 활동을 하고있습니다.

이가현  안녕하세요. 저는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이가현입니다. 알바노조는 2013년 1월에 알바연대에서 시작했어요. 한국 비정규 불안정노동의 최하단에 아르바이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고, 8월에 알바노조로 노동부에 설립인가를 받고 단순하게는 법을 지키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실태조사를 하기도 하고, 최저시급을 안 지키는 사업장을 고발하는 기자회견, 노동법 상담을 기본으로 하고 있구요. 법을 지켜라를 넘어서 최저임금 1만원 등 인권의 수준을 높이는 운동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저는 2013년 9월에 맥도날드 알바를 시작했었어요. 10월 쯤에 알바노조에 가입을 하게됐어요. 2013년 5월에 주장하며 2013년 5월에 미국에서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이 하루 파업을 했는데, 한국에서도 이를 지지한다는 기자회견을 했어요. 그 자리에 맥도날드의 노동환경에 대해 증언하는 역할로 참여했고, 점장에게 혼나고 노동조합 활동한다고 해고당하고 복직을 위해 알바노조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박도빈  안녕하세요. 저는 문화예술커뮤니티 동네형들에서 온 박도빈입니다. 저희는 다양한 영역에서 일하는 활동가, 예술가, 청소년 교육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일상과 활동이 분리되지 않게 가까이서 살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하여, 각자 살고 있던 곳에서 강북구로 함께 이사를 와서 공간을 운영하고 있구요. 주로 쓸데없는 일을 많이 하고있어요. 각각의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상상과 아이디어를 일로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주로 청소년들 대상으로 문화예술 교육이나 청년들과 여러가지 일을 만들고 있습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놀러오는 기분으로 왔어요.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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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의 화두

성이름  패널분들의 단체 소개를 간단히 들어봤는데요. 최근에는 어떤 활동에 주력하고 있는지, 또 주요한 관심사는 무엇인지 더 들어보면 좋겠습니다.

박도빈  저희는 사실 공간을 작년 초에 오픈 했어요. 그전부터 지역에서 주민들을 많이 만나면서 활동 기반을 준비하다가 작년부터 공간을 운영하고 있구요. 그러다보니 최근에는 공간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데, 올해 들어오면서 가장 큰 화두는 개인의 변화 인 것 같아요. 저희가 7명 정도 함께 일하고 있는데, 우리 안에서 각자의 일이나 활동의 의미를 어떻게 볼 것이냐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있구요. 오늘 주제와 연관해서는, 개인들이 변화해야 주변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일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고,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 낼 것이냐가 큰 화두인 것 같아요. 이러한 고민들은 저희만 하는 게 아니고 여러 청년 활동을 하며 활동가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살고 있는 청년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 같아서 어떻게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가현  알바노조는 2월 7일에 총회를 열었어요. 결정한 사안이 맥도날드가 부당해고 문제도 있지만, 근로계약서도 제대로 안 쓰거나 근무표 추적하거나 임금 체불 같은 문제도 상당히 있거든요. 작년에 16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반절이 넘는 사람들이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안 썼다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다양한 사례들이 있는데, 맥도날드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전체적인 문제를 짚을 수 있다고 결정을 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식품연맹과 연대해서 한 해 활동을 하자고 결정을 했구요. 또 주력하고 있는 일은 올해 최저임금을 높이라는 이야기가 많아졌잖아요. 심지어 새누리당에서도 이야기를 하고 있고,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싸움이 6월에 있는데 그것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태영  저에게는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작년 재작년 지내오면서 가장 관심있게 활동하고자 했던 키워드는 전환입니다. 전환도시, 전환마을 이런 키워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와 피크오일 시대에 대응하는 공동체, 대안이 전환도시를 설명하는 개념 같은 것인데요. 사실 서울은 마을이라는 개념을 이야기 하기에도 너무 복잡하고 주민이라고 정확히 호출하거나 호명할 수 있는 대상도 불명확하고 신촌은 더 그렇거든요. 그런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전환운동이 뭘까. 그러니까 핵 에너지 없이 지속 가능한 삶이 가능한 마을, 그런 단위의 도시를 만드는 작업은 어떤 걸까? 전환도시도 그렇고 전환 마을도 사례를 접하면 7천 명 규모의 마을이에요. 그런데 신촌동이 2만 2천 명이거든요. 전환도시로 가장 유명한 토트네스는 8천 명 정도의 마을이에요. 서울로 치면 행정동 하나의 절반도 안 되죠. 신촌동은 작은 동이거든요. 물론 서울이 복잡하죠. 전라북도 장수 이런 곳은 군 인구가 2만 명인데 서울은 신촌동만 2만 명 넘는 복잡한 도시니까요. 그런 곳에서 할 수 있는 마을 운동은 뭘까 하는 고민을 갖고 작업들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포럼이나 워크샵 같은 것도 하고, 올해는 진짜로 주민 인터뷰 같은 걸 해보려고 고민 중이에요.

서울시 공모사업 중에 <에너지 자립마을 공모사업> 이란 게 있거든요. 요즘 단체들이 전부 공모사업의 노예가 되고 있다는 소문들이 많지만, 저도 에너지 자립마을 공모사업을 넣어볼까 고민하고 있어요. 신촌동 특히 체화당이 있는 동네는 원룸촌이거든요. 다세대 주택이 많고. 대부분의 전환마을은 에너지 절감실험을 하는 게 중요해요. 5% 감량 목표라던지. 그런데 이 마을에서는 각각의 행위자, 시민 주체들의 에너지에 대한 동력이 다 너무 다른 거예요. 예를 들어 관리비로 전기비를 내는 원룸 세입자는 전기를 아끼고 싶을까 같은 거죠. 그리고 사실 원룸들은 전기세가 그렇게 많이 안 나가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규모의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에너지 실험은 뭘까. 단지 에너지에 국한하지 않고, 그 전환운동이라고 하는 건 어떤 걸까. 그런 궁금증을 갖고 사람들을 일단 많이 만나면서 인터뷰하려고요. 혹시 자기의 경제적인 이해관계와 별개의 공공성 같은 게 발견될 수 있을까 하는 부가적인 기대를 갖고 해보려고 합니다.

성이름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의 멤버로서 저희 단체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해보자면, 물론 기본소득을 정책으로서 실현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특히 최근에는 기본소득 담론도 더 활발하게 나타나고 그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배경에는 경제위기가 이제 실제로 사람들이 생활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체감하는 상황으로 이어진 것이 있겠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기본소득이라는 것이 도빈씨가 말씀하셨던 것 같은 개인의 변화를 필요로 하는 정책이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기본소득을 준다고 하면 사람들이 일을 안 하지 않을까. 혹은 게으르게 지내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많이 해요. 그런데 저는 개인들의 자율성과 주체성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고, 오히려 그런 것들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동력으로 발휘되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한 장치나 기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관점에서 자율성과 주체성 같은 것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활동을 기획하고 있고, 공공 그라운드도 그 맥락에 있어요.

이렇게 해서 패널로 오신 단체들의 활동 내용과 고민에 대해서 들어봤는데요. 각 단체의 활동들이 서로 다른 영역에 있는 것 같아요. 저희가 세 분을 섭외하면서 기대했던 것이 세 단체가 가진 성격의 차이가 나타나도록 하고 싶다는 생각이는데요. 이 활동들을 뭉뚱그려서 청년 운동이라고 칭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다른 주제와 영역에서 활동을 하고 계시고, 다양한 맥락과 층위에서 활동이 이뤄지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각자가 활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들어보면서 이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먼저 알바노조가 이에 대해서 가장 명확하게 말씀을 해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가현  알바노조를 처음 알게된 건 학교 친구를 잘못 만나서? (웃음) 원래는 학보사에서 활동을 했었어요. 기자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학보사에 들어가서 활동을 하면서 먼저 청년유니온을 알게 되고 취재를 하다 보니, 알바연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됐어요. 그렇게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여기서 활동을 할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하고 있었어요. 오히려 대학교 1, 2학년 때는 운동권을 싫어했어요. 전형적인 이미지들 있잖아요. 남의 말을 안 듣고, 자기가 무조건 옳고, 자기 말을 안 들으면 가치가 없는 사람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제가 보던 운동권 사람들이어서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바를 시작하고 나서 친구한테 알바 연대를 후원해볼래? 하는 제안을 들었어요. 그래서 처음엔 후원하는 느낌으로 시작했어요. 내가 알바를 하고있기도 하고, 부당한 일을 겪으면 상담을 받을 수도 있고 좋은 일 하는 곳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는데, 하다 보니까 기자회견 정도는 참여할 수 있겠지 싶어서 증언을 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부당한 일이 발생했고, 그때 알바노조가 많이 힘이 되어줬어요. 만약에 제가 알바노조에 가입 안 하고 개인으로 남아있었으면, 그냥 이번 알바는 운이 나빴으니까 다른 데 가서 알바하면 되지 하고 받아들이고 다른 알바를 시작했을 거예요. 그런데 노조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이건 부당 해고다, 너 같은 사례가 다시 나오면 안 된다, 싸우자 같이’ 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힘 닿는 데까지 함께 하자는 이야기를 들어서 운동을 시작하게 됐거든요. 그런 식으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이태영  오늘도 ‘청년’이라는 키워드가 있잖아요. 그런데 청년이라는 키워드로 스스로를 해석하는 게 너무 어렵다고 할까요. 다른 언어로 말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그런 우려가 들 때가 있었거든요. 이천년대 중반 이후에 88만원 세대니 하는 여러가지 세대론으로 학습된 이 세대가 나중에 청년이 아니게 되었을 때 어떤 언어가 있을까 라는 걱정이 들었어요. 그런 고민으로 ‘지역이라든지 보편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활동하고, 그런 확장성을 갖고 싶다. 생물학적으로는 우리가 청년이라도 서로를 다른 호칭으로 부르고 싶다. 시민이나 주민같은.’ 이라는 마음으로 지금의 공간에서 활동하는 것 같고, 녹색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고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어렸을 때 경기도 화성의 야마기시즘 공동체 마을에서 성장했어요. 청소년기를 그렇게 보내고 대학 갈 즈음에 공동체에서 나오게 됐고, 대학에서 정치학과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정치학과 수업 중에 ‘대안정치 대안 사회’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제목의 1학년 세미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들어갔어요. 그랬더니 그 세미나가 제가 있는 체화당과 풀뿌리사회지기학교와 신촌민회를 직접 조직하게 됐던 수업이었어요. 그 정치학과의 선생님은 자기는 수업에 들어오시지 않으시고, 계속 그런 일들만 시키는 선생님이셨던 거죠. 정치학과 수업의 제일 좋은 경험은 조직하는 훈련이라는 확신을 갖고 계셨어요. 그게 제가 체화당을 찾아갔던 계기이고, 체화당을 통해서 만났던 관계들이 제가 잠시 직장으로 있었던 YMCA 사람들을 만나게 했고, 대학 생협을 만나는 연장선에 있었던 것 같고요.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으로 활동가라는 삶을 선택했던 건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으면 가장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막연히 어차피 평생직장은 없을 것 같다는 인식이 있었고, 또 막연히 기계문명이 훨씬 발달하면 어차피 일자리는 줄어들 것 같은데, 활동가는 기계문명이 대체하지 못할 것 같다는 기대가 있었고(좌중 웃음) 그런 것들이 활동가를 지원하게 됐던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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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빈  저희는 원래 알고 계시던 시민사회 영역에 있는 단체들이랑은 많이 다를 거예요. 설명하기는 조금 어려운데, 저희 안에서는 모두가 기획자가 되고 그 일에 필요한 실무자가 되고 실제로 진행하는 진행자가 되는 방식으로 활동들을 진행하고 있어요. 그래서 각자 생각하는 방향이 다르고 고민하는 것도 달라서 누가 이런 자리에 나오느냐에 따라서 이야기가 되게 달라져요. 공통적으로 봤을 때는 모든 구성원들이 청년이고 혼자 사는 1인 가구고 한국사회에서 살고있는 입장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가 좀 소모되고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한 조직에서 일을 하건, 여러 단체를 다니며 프로젝트를 하건 그 성과와는 무관하게 ‘나’는 없는 거죠. 그 단체나 조직은 남지만 그 안에 내가 없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구요. 그래서 같이 모여서 살면 좀 낫지 않을까,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사실 별로 구체적인 계획은 없이 동네형들을 시작했어요. 현재는 문화예술 교육이나 프로젝트를 많이 하고 있는데, 사실은 별 거 없어요. 저희 안에 예술가도 있지만 아닌 사람도 더 많이 있구요. 기본 전제는 모든 사람들은 다 예술가이다, 라는 생각으로 시작하고 있어서. 예술이 자기 생각이나 고민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고, 뭔가 만들어내는 작업 자체가 소통의 수단이 된다고 생각하면서 청년들이나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시민단체에서 일은 해온 활동가에요. 자원봉사를 계속 하다가, 생계유지를 위해 활동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저희 세대는 활동가로 살기가 되게 어려운 세대거든요. 저희 이전 세대는 학생 운동의 경험도 있엇고, 민주화 운동 경험을 하면서, 학교와 학번을 알면 다 연결이 되는 그 연대감이 아직도 있어요. 하나의 적을 두고 싸웠던 경험이 있고 지금도 남아있는데 그런 게 저희 세대는 없어요. 같은 관심사를 갖거나 같은 영역에 있지 않으면 그런 연대감을 느끼기 힘들어요. 저는 스스로 활동가로 사는 게 되게 자랑스럽고 즐거운데, 저를 바라보는 시선도 그렇고 이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연 행복한가 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현재 시민 운동에 시민이 없다는 생각을 했고, 다음의 시민운동을 준비하는 지금 세대가 얼마나 준비가 되어있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동네형들은 적극적으로 할 수 있고 준비된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더불어하는 활동에 관심을 갖고, 실제로 작은 것들을 해보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고요. 저희는 비영리 민간단체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기 위해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마을 안에서도 청년들이 마을에서 어떻게 살건지 많이 고민하면서 그런 시작점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이름  동네형들이 오늘 오시면서 단체 소개하는 브로셔를 가지고 왔어요. 간단하게 소개드리면 좋을 것 같은데, 단체 소개가 담배곽에 들어있다거나, 나무젓가락 포장지의 연필, 냉장고 자석도 있구요.

박도빈  저희는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더 재밌어야 되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기도 해요. 만드는 것 하나하나 저희가 디자인 하면서, 받았을 때 버리지 않는 인쇄물을 만들기 위해서 고민을 하고 있어요.

성이름  동네형들도 그렇고 요즘에는 운동하는 사람들이 좀 더 캐주얼하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죠. 간단하게 전략이나 노하우 같은 것들 공유해봤으면 하는데요.

이가현  전략이라고 할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말투같은 데 있어서도, 기존에는 단정적인 걸 많이 썼잖아요. 유인물에는 주먹이 들어가 있어야 하고. 제 기억속에 운동권은 그랬거든요. 알바노조는 그런 것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다가가기 쉬운 일상적인 용어들을 사용하려고 한다던가 기자회견이나 퍼포먼스에서도 아이디어를 내려고 해요. 3월 28일에 또 한번 맥도날드 점거 시위를 할 예정이거든요. 이번주에 기자회견을 했었는데요. 홍제점에 50대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있는데 170시간 정도씩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을 자르려고 매니저가 일을 100시간 가까이 줄이고 월급이 반토막 나서, 결국 그 노동자가 자진해서 퇴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어요. 그런 고무줄 근무 시간을 비판하면서 고무줄로 퍼포먼스를 한다던가 그런 노력을 하고 있어요.

이태영  맞아요. 쉽고 재밌게 해야 한다는 고민이나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뼈속까지 무겁달까요. 저는 이런 키워드를 고민한 적이 있었어요. 경쾌함? 유쾌함? 재미보다 더 닮고 싶었던 키워드는 그런 것들이에요. 웹자보 같은 것을 만들면 세미나나 토론회할 때 엄청 회의 하는데, 대부분 별로잖아요. “우리 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기도 하고. 저도 재밌고 누구나 더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늘 스스로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한편으로는 재미있어야 된다는 게 스트레스였던 시기가 있었던 거죠.

체화당은 마을 카페를 지향하고 있는데 12년 정도 됐어요. 마을 카페라는 이름치곤 꽤 오래 했죠. 여러가지 조건이 있어서 할 수 있었던 것인데요. 십년 카페라는 책에 체화당이 나오는데, 주말에 가도 평일같은 곳이라고 나와요. 욕인지.. (웃음) 그런데 체화당에 있다 보면 무슨 생각을 하냐면, 체화당이 늘 장사가 안 됐어요. 지금도 안 되는데 위치가 후미진 곳이라 그런 것도 있겠죠. 그래서 저는 이 동네 사람들이 커피를 잘 안 마시나 보다, 원룸촌이니까 사람들이 동네에서 커피를 안 마시나보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4년 전쯤 스타벅스가 길 건너에 생겼어요. 늘 사람이 많아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카페라는 공간은 개인적인 공간인데, 체화당 은 문을 여는 순간 아우라가 있는 거죠. 혼자 있을 수 없고, 아는 사람만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런데 우리가 그 아우라를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거예요. 그 아우라를 걷어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 공간 자체가 열려있는 아우라로 누구나 사람을 초대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게 좋은걸까. 그러니까 손님으로 오는 사람은 많지 않아도 큰 부담을 안 갖는데, 이 작업에 공감한 동료들이 더 이상 찾지 않는 것,  이게 체화당으로서는 정말 걱정스러운 일이고 이 둘을 분리해서 고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고 있어요.

성이름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기 전에 작년에 녹색당에서 출마했을 때 썼던 구호들도 소개를 해주세요.

이태영  저는 녹색당 서대문 구의원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어요. 여러분은 지금 낙선자를 보고계신데… 그때 메인 슬로건이 ‘당신에게 투표하세요.’ 였어요. 그래서 그 슬로건마다 ‘이번에는 길고양이에 투표하세요. 골목길, 단골가게에 투표하세요.’ 이렇게 명함을 6종 만들었죠. 지방 선거에서 명함 받으면 다 버리잖아요. 이번에는 안 버리는 명함 만들자. 목표는 책상에 세워두고 싶은 명함을 만든다. 그래서 명함이 되게 예쁘기는 했던 것 같아요. 한쪽에는 예쁜 그림과 ‘이번에는 길고양이에게 투표하세요.’ 하고 뒷면에는 제 얼굴하고 이름하고 경력, 보통 경력을 많이 쓰는데 많이 쓸 경력도 없고 사람들 보지도 않는 것 같고 젊은 사람이 경력 내세워봤자 뻥 같고 그래서 그렇게 했어요. (웃음)

 

활동의 기반

성이름  태영 씨 같은 경우 신촌에서 마을을 기반에 두고 활동하시잖아요. 동네형들도 공간 만드시면서 그런 활동을 많이 하시구요. 그러면 주로 어떤 기반에 근거해서 활동하시는지,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하려고 하시는지 같은 것도 들어보고 싶네요. 알바노조같은 경우는 마을은 아니지만 같이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신데 어떤 분들이신지도 궁금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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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빈  저희가 살고있는 곳은 삼각산 재미난 마을 언저리에 있거든요. 요즘에 마을에 관심이 많고 서울시도 난리거든요. 저희도 처음에 이사올 때 약간의 기대와 상상이 있었어요. 마을이라고 하면 그려지는 그림들이 있잖아요.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아까 잠깐 말씀 드렸지만 청년이라서 어려운 점이 있었어요. 성미산 마을이나 저희 마을이나 오래된 마을들은 공동 육아로 시작한 케이스가 많거든요. 모여 살다보니 다들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같이 키우면 효율적이 되겠다. 그러다가 아이가 자라니까 학교를 보내려니 학교는 재미가 없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학교를 만들자고 해서 대안 교육으로 넘어가고. 그래서 학부모들 중심이 많고요.

그런데 저희 같은 1인가구 청년들은 가족이 없잖아요.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당사자로 주체적으로 활동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마을에서 역할을 찾는 게 고민이었어요.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저희가 사는 강북도 2, 30 대가 30%가 넘거든요. 많은 청년들이 있지만 실제로 마을 안에서 뭔가를 하는 청년들은 찾아보기 힘들고요. 그래서 그 청년들을 찾아야겠다.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지 않으면 이 안에서 조화롭게 살아가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희는 ‘위성 청년’이라는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안에 들어가고 싶지만 계속 주위만 맴도는 사례들이 많아요. 저는 고향이 부산인데, 어릴 때부터 아파트에 자라서 공동체의 경험이 없어요. 여기 오신 분들도 아마 다들 그러실 것 같아요. 공동체의 경험이나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잘 모르는거죠. 같이 하면 좋고 나누면 좋다는 걸 알지만 실제로 경험은 많이 해보지 않은 것 같아요. 항상 남보다 뭔가 잘 하기 위한 노력만 했지. 그런 상태에서 당장 마을 안에서 뭔가 하라고 역할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인 거죠. 그래서 작은 것들이라도 내 옆의 사람들과 한번 실제로 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저희 안에서도 서로 일상을 나누려고 노력해요. 일 때문에 바쁘기도 하고 먹고사는 문제로 어렵기도 하지만, 같이 시간을 내서 서로 일상을 들여다보고 고민을 나누려고 해요. 저희가 앞으로 마을 안에서 함께 싶은 사람들도 막연하게 다른 사람들과 뭔가를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계기가 없는 청년들이구요.

성이름  마을에 확실히 기반을 두려고 하는 목표는 있으신 건가요?

박도빈  네. 지역 기반으로 계속 운영하려고 공간을 만들고 이사한 거고요. 그런데 마을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이만큼이 마을이라면 그 안에 있는 사람은 다같이 그 마을에서 살아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러니한 건 강북구에 수유동이나 우이동 쪽은 3, 40년 그 지역에서 살아온 분이 많거든요. 그런데 지금 마을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새로 이사온 사람들이에요. 그러면 이만큼 테두리를 치고 여기는 재미난 마을이고 우리는 마을 주민이라고 했을 때, 그 안에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는가 하는거죠. 좀 더 넓혀야 된다고 생각해요. 테두리를 칠 게 아니라, 내가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 내 주변이 마을의 한 부분이 아닐까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계속 고민 중이라 딱 뭐라고 말씀드리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성이름  태영씨도 비슷한 말씀을 평소에 많이 하시잖아요. 신촌은 주거지를 신촌으로 두는 학생은 많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러면서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이 마을 만들기와 연관되는 게 적합한지 하는 고민이 있으실 것 같아요.

이태영  마을은 가상의 공간이 아니잖아요. 유토피아라던지 상상속의 공간이 아닌데 최근에 마을지원센터 같은 공간을 가면 “왜 청년들이 마을에 없어?”라고 얘기하세요. 거기서 마을은 특정한 공간이나 커뮤니티를 지칭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런 문제가 있죠. 신촌은 자가주택 비율이 20프로 밖에 안 돼요. 80%가 세입자인 동네가 신촌동이에요. 그런데 서울에서 평균적으로 자가주택을 갖고 있는 사람이 한 집에 머무르는 햇수가 10년이라고 해요. 전세든 월세든 자가가 아닌 사람은 3년이 평균이라고 합니다. 3년을 주기로 옮겨다니는 세입자의 삶에서 마을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어떻게 형성되는가? 라는 고민이 있는 거죠. 그런 사회적 조건들을 어떻게 고려를 할 것인가.

저희 체화당 근처 봉원교회라는 곳에서 꾸준히 원룸 축제를 해오고 있어요. 그 동네 청년들이 나오면 좋겠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잘 안 나와요. 소문이 좀 나면 다른 동네에서 청년들이 옵니다. 우리끼리 무슨 얘길 했냐면, 나도 우리 동네에서 이런 거 하면 안 나간다고요. 어떤 고시원 이야길 한 적이 있는데, 그 고시원은 입구에서 자기 방까지 아무도 안 만나게 설계되어 있대요. 동네에서 아는 사람 만들기 싫어하는 취향 같은 게 있어요. 이 세대가 갖는 인간으로서 그런 개인적인 조건이 있죠. 그리고 사회적 조건이 있어요. 그리고 저는 경험적 조건도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예능 프로그램을 되게 잘 보는데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를 재밌게 봤어요. 그런데 고등학교에 GS 25같은 편의점이 있는 거예요. 요즘에는 너무 익숙해졌지만 2천년대 대학교에 스타벅스 처음 들어왔을 때 깜짝 놀라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이제 다 있잖아요. 자기가 어떤 공간의 변화에 개입해본 경험이 없는 거예요. 저는 단골가게 같은 게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 공간이 없어지면 슬프다 이런 게 있잖아요. 이 공간이 변할 때 개입하고 싶다던지 그런 감정이 정치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그 경험이 점점 없는 거예요. 그런 상태에서 마을이란 게 던져졌을 때 마을은 가상의 공간처럼 오거나, 당위적으로 다가오는 거죠. ‘내가 마을에서 아는 사람 만들어야 돼. 그래야 난 좋은 사람이야.’ 같은 거죠. 그게 강박이 되면 1년 정도 있다가 그런 표현을 하는데 주민 코스프레 하다가 심정적으로 힘든거죠. 주민 해본 적도 없고 3년 이상 살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곳에 가면 관계망 중요하고 그런 말 하면서 스트레스 받고. ‘아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아’ 하면서 다른 영역을 찾아가고. 이게 반복이 되면 그건 오히려 더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신촌에서 하는 작업은 그런 고민을 갖고 있어요.

최근에는 대학에서도 마을 관련 수업이 열리더라구요. 어떤 대학생들이 성미산과 성대골로 가서 인터뷰하고, 그 동네를 소셜픽션으로 2050년을 그려보게 하는 발표에 간 적이 있어요. 그 발표에서 굉장히 감명깊게 본 포인트는 그 소셜픽션에 자기들이 들어가있지 않은 거예요. 현실의 자기들. 물론 자기 미래를 그려서 그럴 수도 있겠는데, 그 마을의 하루를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까지 그리잖아요. 그럼 보통 4인 정상 가족으로 되있는데 일어나서 밥을 먹고 노인분들을 만나고 마을 축제를 하고. 성대골 같은 경우는 에너지 이슈가 좀 결합해있고 공동육아나 이런 이슈들이 더 결합하는 방식으로 멋있게 픽션을 했죠. 성대골 주민이나 성미산 주민이 보기엔 너무 만족스러운 소셜픽션인데 자기의 삶이랑 싱크로가 되어있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마을이 가상인거죠. 자기 생활 패턴이나 경험치랑 다른 마을을 그리고 있고. 저는 그런 경험이 사실은 자기의 시민성이나 주민성은 더 약해지고 부유하면서 변화를 만들기 더 어렵게 만들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러니까 마을 운동의 핵심은 그런 커뮤니티를 찾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식으로든 변화에 개입해본 경험이나 개입하고싶은 마음이나 애정의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낼 건가. 그게 특히 서울에서, 지금의 조건에서 중요한 것 아닌가 합니다.

성이름  마을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됐는데,  요즘 청년 운동과 많이 연결되는 주제기도 하지만 특히 청년 세대가 사람들과 관계맺는 방식이나 태도와 관련해 생각해볼 점이 많은 것 같아요.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알바노조는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있나요?

이가현  언론에서 알바노조라고 뜨는 것들은 중앙에서 기획한 사업이고, 그런 것들을 많이 보셨을 거예요. 그렇게 중앙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각 지역마다 지부들이 있고, 대학 분회들과 여성주의 분회, 지역에서 활동하는 분회들이 있어요. 아무래도 상황상 가장 활발한 건 대학 분회인 것 같아요. 거기에 한계를 느껴서 여성주의 분회나 지역 분회에 집중하자는 이야기도 하고 있지만, 활동이 가능한 사람들이 대부분 대학에 있고, 이 사람들의 생활공간은 학교잖아요. 집이나 자기 지역에 있는 시간보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서 현실적으로 가능한게 대학이라 그렇게 활동하고 있어요. 그래서 대학이 위치한 지역에서 활동하기도 하고요.

성공회대의 경우는 그 분회만 70명이 넘어가서 분회를 챙기는 동시에 학교가 위치한 구로 지역에 있는 알바노동자를 만나러 다니고, 실태조사 다니고 그런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좀 더 일상적으로 들어가진 못하고 있는 한계가 있어요.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년도 있고, 중장년층도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잖아요. 그런 사람들과 실질적으로 만나기 힘들더라고요. 이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도 없고. 그런 맥락에서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성이름  비슷한 성격으로 보이는 단체 중에 청년유니온도 있잖아요. 청년 유니온과는 어떤 차이가 있고, 관계를 형성하고 있나요?

이가현  청년유니온은 이름에도 청년이 들어가잖아요. 노동 문제를 다루지만, 하는 사업을 보면 청년 주거문제나 취업 문제도 다루고요. 그런데 알바노조는 청년보다 알바 노동에 집중하고 있어요. 알바하는 사람들 중에 실제로 중장년층 비율도 높고요. 맥도날드에서는 주부 사원, 시니어 사원으로 따로 분류될 정도로 그런 사람들의 수가 많아요. 이게 한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좀 다른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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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의 성과 

성이름  다음 질문은 활동의 결과에 대한 것인데요. 활동을 하면 성과라는 게 있잖아요. 그게 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고, 비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을 텐데요. 그런 결과물이 어떤 형태로 남는지, 그런 성취를 어떻게 측정하는지 궁금합니다. 어떻게 기록하고 축적되고 있는지도요. 예를 들어 저희 단체는 사무실같은 공간이 따로 없고, 프로젝트 단위로 활동을 하거든요. 그러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콘텐츠 제작이에요. 활동한 내용을 기록하거나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도 전파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걸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고요.

이가현  대부분의 단체들이 초창기에 활동가들이 먼저 모여서 시작되잖아요. 알바노조에도 실제로 직접 알바를 하는 사람들보다는 활동가들이 많이 있었는데 활동을 하면서 조합원들이 굉장히 많이 늘었어요. 후원의 느낌으로 가입하는 분도 많지만, 저같은 경우도 실제로 알바를 시작하면서 가입하게 됐고요. 뭐라고 할까요. 조합원들, 실제로 알바하는 당사자들이 남는다? 당사자들이 직접 만나면서 그 사람들이 문제에 공감하고 모임에 참여하든,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든 그런 식으로 사람이 남는 것 같아요.

박도빈  저희가 프로젝트나 뭔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할 때 제일 중요한 건 이걸 기획하는 사람이 정말 하고 싶나 인 것 같아요. 저희도 공모사업이나 지원사업을 하지 않는 건 아닌데, 그런게 필요한 이유가 있지만 제일 중요한 건 정말 우리 스스로가 이걸 하고 싶은가 이거든요. 우리가 이걸 얼마나 하고 싶고, 하고 싶은 방향으로 해낼 수 있는가. 그래서 평가가 좋을 수도 있고, 좋지 않을 수도 있지만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각각의 개인들한테 얼만큼 남는가가 중요해요.

동네형들이라는 단체가 외부적으로는 설렁설렁하게 보일 수 있지만, 내부에서는 고민이 많아요. 청년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하든 아이들을 만나든 그 시간은 우리에게뿐 아니라 거기 오는 사람에게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준비하는데 시간을 많이 쏟고, 끝나고 프로그램을 평가하데도 시간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그러한 과정에서 각자가 가지고 있던 것들을 깨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희가 올해 초에 계약서를 썼는데, 각자가 자기가 쓰고 싶은 계약서를 썼어요. 각자가 자기 계약서를 쓰고 나머지 사람들을 설득하는 거예요. 그래서 을이 없어요. 다 갑이에요. 제가 계약서를 쓰고 모든 구성원이 다 싸인을 해줘야 성립이 되는 방식이에요. 각자 한두 달 동안 자신의 계약서를 쓰고 모두가 협의하는 과정이 2주가 걸렸는데 재미있는 내용이 많았어요. ‘계약 기간: 오늘부터 내가 행복하지 않을 때까지’, ‘이성과의 약속시 조기퇴근 가능’ 같은 내용도 있었어요. 내가 일을 잘 할 수 있고, 나한테 필요한 환경들에 대한 거였는데, 사실 그 결과는 자기가 지키면 되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그걸로 법적 제재를 가하거나 계약을 무효화하지 않지만,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요즘 청년들에 대한 열정페이에 대한 논의도 많은데, 저희가 임금을 많이 준다거나 일의 양이 적은 것도 아닌 상태라서 어떻게 봐야될까 생각을 해요. 일단 나한테 있어서 일이 어떤 거고, 그 일이 만들어내는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과정이 있어야 같이 계속 해나갈수있는 동력이 생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기에 에너지를 많이 쓰는 것이고요. 단체 측면에서 봤을 때 뭐가 남냐고 하면 사람이죠. 스스로 성장하고 변화했던 사람들이 남는데 그 과정에서 각자가 가져가는 것들을 단순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질문이 어렵네요.

이태영  질문을 받다보니까 질문이 기획안 쓰는데 굉장히 최적화되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취지와 배경, 대상, 성과를 묻고있는데 보통 이후에는 기대효과를.. (웃음) 제가 방금까지 공모사업 기획안을 쓰고와서요.

체화당도 그렇고, 신촌민회나 풀뿌리 사회지기 학교, 녹색당도 그렇고 저는 우리가 어떻게 더 사람을 확대하느냐가 가장 큰 목표고 성과라고 생각해요. 단체라고 해서 단체 회원 이런 게 아니라. 요즘 가장 고민이 되는 키워드는 시민이에요. 공적이 토론이 가능한 시민이라고 할까요. 공적인 자아? 그 시민을 어떻게 더 만들고 서로 초대할 수 있을까. 최근에 신촌이나 서대문구의 거버넌스 회의에서 불려주셔서 앉아있으면, 저에 대해서 묘한 긴장 관계가 있어요. 경제적 이해관계도 없는 것 같은 왠 젊은 사람이 앉아있는거죠. 오히려 지역 단위로 올수록, 정치적인 자리에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 나타나는 게 되게 어색한 거죠.

소유권이든 임대업을 하거나 상업을 하시거나 이런 분들 중심으로 지역의 정치가 구성돼요. 그런데 그걸 넘는 토론이 가능한 시민사회여야 하지 않을까 라는 고민이 많이 들거든요. 그런 사람을 어떻게 길러낼 수 있을까. 사실은 소유권이 없는 사람이 절반 이상인 거죠. 그런데 소유권이 없는 사람이 지역의 정치에 들어갈 동기가 없어요. 그런 동기와 기획들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가. 그러면서 어떤 지역에서든 자기가 정치적 시민으로 성장하는 경험, 그런 자리를 얼마나 더 만들 수 있을까 그런게 중요한 성과라고 할까요. 그걸 목표로 하고 있구요.

또 하나는 기록과 그 기록의 사회적인 전달이에요. 아까 말씀드렸지만 체화당은 십 몇 년 했고, 신촌민회는 92년에 만들어졌어요. 풀뿌리사회지기학교가 대안대학으로 작년에 10주년을 맞이했거든요. 얼마나 많은 부침들이 있었겠어요. 얼마나 많이 문을 닫을 뻔 했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상처를 받았고, 풀뿌리사회지기 학교를 왔다가 얼마나 실망이 얼마나 남았으며, 신촌민회 욕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이며, 그런데 이런 기록들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게 저희의 굉장한 부채감이에요. 그런 기록들을 사회적 토론거리로 던지는게 사회적 역할이고 성과였을 텐데 그런 걸 우리가 못 해왔구나.

그런 거 있잖아요.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을 때 누군가가 그거 옛날에 해봤다고 그러는거.. 그러면 그 공간은 되게 늙은 공간이 되는 거예요. 해봐서 어떤지에 대한 기록은 없는 거죠. 그냥 해봐서 잘 안 됐다고 하고. 왜 잘 안 됐는지, 뭐가 잘 안 됐는지, 진짜 잘 안 됐는지. 그런 평가나 기록이 확대된 경험이 없으니까. 공간이든 모임이 늙어버린다는 건 사람이 늙어서라기보단, 해왔던 일들에 대한 평가가 없을 때 공간이든 모임이든 늙어버리는 것 같아요. 그러면 거기에는 ‘해봐서 아는데’라는 기운이 축적돼버리는 거예요. 저희는 그런게 제일 두려워요. 그런 기록을 만드는 작업을 해야겠다. 그리고 그게 제가 하는 활동의 성과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청년운동?

성이름  이제 청년운동에 대해서 좀 얘기를 해볼까 해요. 우선 청년운동이라는 단어에 대해 동의하는지 궁금한데요. 공통된 청년운동이라는 것이 성립하고, 본인이 하는 활동이 운동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릴게요.

박도빈  시민운동이 어떻게 흘러왔는지에 대해 아까 잠깐 말씀드렸는데, 예전의 민주화 운동에서 말하던 운동과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운동이 같은 의미인지 많이 생각하게 돼요. 여기 오신 분들은 활동가가 하나의 직업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요즘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저는 스스로 활동가라고 말하고 다니거든요. 그럼 활동가의 기준이 뭐지? 마을에도 활동가가 있고, 시민단체에도 그 외에도 많은 영역에 활동가가 있는데 그 활동가들은 모두 운동을 하고 있는 걸까요?

저는 운동의 핵심은 변화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이야기하는 운동이라 함은 기존의 것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기보다, 기존의 것을 바꿔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운동을 하는 사람인 활동가도 결국은 자기가 바꾸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게 아닐까. 내가 스스로 활동가라고 생각한다면 자기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건, 어디 살고있건 활동가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청년운동은 그 범주를 모르겠어요. 한창 사회적 기업이 트랜드가 됐었고, 사회적 기업을 하는 분들이 다시 협동조합으로 넘어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지역 단위에서는 기존에 활동하고 있는 시민단체에서 같은 컨텐츠로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그 과정에서 많은 청년들이 충분한 고민없이 이러한 물결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기존 세대들이 많이 부추겼던 것 같아요. 활동성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이런 트렌드를 자신의 외면적 정체성으로 만들 기회로 생각하는 것 대한 우려가 있어요.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저는 청년운동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는 이런 자리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형태의 청년 단체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는 것은, 새로운 세대가 올라오는 것이고 그 자체가 하나의 운동이 아닐까 생각해요. 기존의 시민사회가 가진 운동성을 잇는 게 아니라 과도기적인 시점에서 청년 스스로가 힘들고, 변화시키고, 지점들에 대한 새로운 고민들을 풀어나가는 것이 운동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저희 공간에서 예전에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님을 모시고 강연을 했는데, 그런 얘기를 하셨어요. 복잡한 걸 복잡하게 설명하는 게 운동이라고. 그 얘기를 듣고 한참 생각했는데요. 제 활동에 적용시켜서 생각해보면, 작은 변화라도 그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게 운동이 아닐까 생각해요. 인권이나 평화도 중요한 요소지만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런 단어를 직접적으로 쓰지 않고서도 그 사람으로 하여금 인권에 대해, 평화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게 운동이 아닐까.

저희가 청년들과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지만, 여기 두 단체 활동이랑은 되게 달라요. 저희는 재밌는 걸 지향하면서 그 안에서 조금씩 생각을 바꾸려고 하는 변화의 지점들이 있어요. 저의 활동은 되게 작은 단위에서의 운동인 것 같아요. 생활과 일상 속에서 조금씩 주변 사람들 생각을 바꿔나가는 거라고 생각하고, 그게 저희 이후에 다음 세대들의 활동에 새로운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가현  알바노조에서 활동하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개인적으로는 알바노조 운동이 학생 운동이나 청년 운동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알바노조의 회칙 상 실제로 비정규 노동, 아르바이트 노동을 하는 분을 포함해서 문제에 공감하는 분들까지 가입을 받고 있지만, 그 중심은 당사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생생한 목소리가 나와야 되고요.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에서 항상 이야기하는 게 ‘알바생’이 아니라 ‘아르바이트 노동자’ 라 불러야 한다는 거예요. 편견으로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은 대학생이 많고, 청년일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는 노동이 아니라 배워가는 거고 임금을 낮게 줘도 되고, 임금 외에 얻어가는게 있는 사람이니까 법을 안 지켜도 된다는 식의 인식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실제로 보면 아르바이트 노동은 생계수단이고, 전 세대에 걸친 문제이기 때문에 청년 운동이라는 단어는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에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알바노조에 2013년에 가입해서 작년에 본격적으로 활동을 했어요. 그런데 저는 작년에 한 번도 운동을 한다고 한 적이 없었어요. 요즘 들어서 운동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저한테 운동의 느낌은 의지가 담겨 있어야 쓸 수 있는 단어라는 거예요. 운동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면 진지하게 생각하고, 평생 할 각오를 해야 그런 단어를 쓸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들어서, 작년에는 운동이라는 단어를 제 입으로 한 번도 꺼내본 적이 없어요. 저에게는 그런 느낌이에요.

성이름  두 분 말씀에 공감하는게 저도 스스로 기청넷 활동을 청년운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대의 구분이 있고 또 변화로 나타나는 게 있다는 생각 때문에 이 질문을 드렸어요. 그런데 신촌 민회 같은 경우는 이름에서도 그런 성격이 드러나지 않잖아요. 그럼에도 태영씨 본인은 청년으로 많이 불려 다니고 있고요. 그런 맥락에서 태영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태영  제가 얼마 전에도 어디 불려갔었는데요. 앉아있는데 그런 생각이 불쑥 드는 거예요. 예능 프로그램 중에 목요일에 해피투게더 보면 그러잖아요. “00 특집입니다~” 요즘 예능 프로들 전반적인 특징인 것 같아요.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사람 모아놓고 오늘은 무슨 특집. 그러면 패널들도 “제가 왜 이 특집에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이 특집에 어울리나요?”라고 물으면 그냥 갖다붙인 거라고 노골적으로 얘기하는. 제가 그날에 느낌 감정은 약간, “청년 특집입니다~” 같은 거예요. 박람회 같기도 하고. 앞에 앉아있는 사람도 다 다른 얘기를 해요. 각자 갖고있는 의제도 다른 거죠. 그러니까 진짜 의미가 있으려면 이 의제들로 토론을 해야하는데, 앞에서 쭉 얘기하고, 그 앞에 앉아 계신 분들이 “화이팅!” 하고 객석에서 “앗 내가 하고싶은 얘기!” 이러고 끝. 아무도 그 자리를 통해서 변하지 않아요.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어요.

청년운동 하면 제가 지금 딱 떠오르는 건 두 가지 의미에요. 운동의 대상으로서, 사회적인 약자 계층인 청년을 호명하는 청년운동. 아니면 사회변혁의 주체로서 청년을 호명하는 청년운동. 기청넷에도 여러가지 정체성이 있을 수 있잖아요. 기본소득 단체기도 하고 청년들이 모여있기도 하고. 그러니까 필요할 때 자기 정체성을 끄집어내서, 요즘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스스로에게 요청하고 있어요. 제가 너무 그런 데 가면 맨날 툴툴대요. 다 똑같은 것도 아닌데 맨날 불러낸다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꼭 그럴 필요 없이 여러가지 정체성 중에 끄집어낼 수 있는 걸 끄집어내서 하면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단, 운동으로서 의미가 있을 때는 종간 다양성이라고 할까요. 의제 다양성이 우리 과제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청년운동 하면 딱 떠오르는 대표 의제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데 사실 청년 운동 내부에도 굉장히 다양한 의제가 있을 수 있는 거죠. 기본소득도 있을 수 있고, 노동, 지역, 문화, 예술, 그 안에서 서로 경합하는 토론거리도 충분히 있을 수 있죠. 저는 그런 걸 드러내는 게 이 세대에게 주어진 운동의 과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우리가 그걸 드러내지 못하고 청년이라는 애매한 틀 안에서 “사회는 분열되있어도 청년이라면 정파 상관없이 뭉쳐야지.” 같은 얘기를 청년끼리도 하고 있으니까.

저는 차이를 발견하지 않고 서로의 같은 점만 발견하면서 만들어진 공간의 지속성을 신뢰하지 않는데요. 저는 청년도 그런 키워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좀 더 많이 이런 자리들이 있으면 좋겠어요. 사실 10년 뒤, 20년 뒤에도 우리가 계속 토론을 못 하면, 그때도 자기 얘기 들어주는 그 시기의 청년들 불러서 이야기 시키고 , 청년 특집 하고 화이팅 하고, 그게 반복되는 거죠. 그러지 않는 시니어가 되는 게 우리의 또 다른 과제라는 생각도 듭니다.

 

운동의 관계망

성이름  세 단체가 서로 만나뵌 적 없으시다고 하더라구요. 저희는 다른 운동을 기획하면서 주제가 맞아서 초청한 적도 있고 청년허브에서 만나기도 했고, 그런데요. 어떤 단체들과 친한가요? 활동을 하다보면 관계망이 쌓이는데. 청년허브에서 알게 된 경우, 어쩌고 있는데. 세 분들은 어떤 단체들과 친한가요? 어떤 단체들과 교류를 많이 하고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는지. 청년운동이라는 게 단일한 주제는 아닌데, 비슷한 공감을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맞는 게 있어서 여러가지가 형성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것들을 조망해서 한번에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박도빈  저희도 고민하고 있는 지점인데요. 다만 저희가 특별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않다는 마음이 있어요. 물론 활동을 하다보면 개인으로서 보여지고 싶은 욕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요. 우리가 이렇게 살고있고, 이렇게 살아보면 어떠냐고 질문을 던질 때, 저 사람이 특별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싶지 않거든요.

보통 티비나 잡지 같은 매체를 통해 보게 되는 청년들의 모습은 되게 극단적인 것 같아요. 이 사회에서 인터뷰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갖고 있는 아이디어나 재능을 펼친 사회적 기업이나 벤쳐 기업, 그렇게 자기만의 재능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케이스이거나, 반대로 “우린 돈없어도 행복해요.” 같은 청년들이죠. 그런 극단적인 사례 안에서 많은 청년들의 고민은 이렇게 귀결되는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경제적인 부분을 포기할 것이냐, 아니면 경제적인 안정을 추구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할 것이냐, 그런데 앞에서 말한 사람들은 되게 소수의 사람들이거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이에 있는, 평범한 재능으로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이에요.

저희도 아는 단체 사람들도 많죠. 관계하고 있는 단체들도 조금씩은 있는데, 그렇게 모여서 뭔가 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도 있어요. 그 불편함이 어디서 나올까 생각해보면 특별한 사람, 주목받는 사람들의 그룹을 지양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저희가 기본적으로 사회성이 떨어져요. 낯도 가리고 불친절하구요. 저희를 소개하거나 홍보하는 걸 잘 못 해요. 물론 저희가 프로그램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는 관심을 갖지만 주목받고 싶은 욕심은 별로 없어요. 그래서 특별히 저희가 관심을 가지고 교류를 하는 것 보다는, 저희 안에서, 주변에서 일상적인 만남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 딱히 없습니다.

이가현  주로 사업이나 기자회견을 같이 하는 건 <민주노총>이고, 요즘 맥도날드 투쟁을 하면서 <국제식품연맹> 정도가 있구요. 언론에서는 주로 <청년 유니온>과 같이 엮어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런 세 단체 정도가 있지만, 예전에 알바노조가 <민주노총> 산하로 들어가냐 하는 논의가 있었어요. 결론은 독자성을 유지하고, 비정규불안정노동을 해결하기 적합한 상태는 따로 하는 거라고 판단해서 구조적으로 독립된 상황이구요. 올해는 아무래도 맥도날드가 알바노조의 중심의제니까 <국제식품연맹>과 연계를 하고 있지만,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상황이고요.

친한 단체 이야기를 하자면, 지도위원이 <좌파노동자>회 대표이신 허영구 대표님이셔서 기자회견에서 발언도 하시고, 사무실도 같이 쓰고 있고요. 작년에 한번 김정진 연구원이 알바노조와 청년유니온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돌린 적이 있어요. 이 조합원들의 연령대나 생각에 대한 기초조사를 했는데, 그 때 나타난 게 노동당 지지율이 70%더라구요. 그렇습니다.

이태영  최근에 <녹색전환연구소>와 <풀뿌리 자치연구소 이음>을 만나서 뭘 해보자 하고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같이 해보자! ” 이런 마음으로 만나니까 오히려 생각보다 뭐가 잘 찾아지진 않더라고요. 어쨌든 풀뿌리, 자치 이런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으니까 네트워크를 해가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요. 저희 단체로서는 <대화문화아카데미>라는 기관과도 가까운 관계에요. 필요하면 와인잔 빌리러 가는 관계에요.

친해지고 싶은 단체들은 좀 있어요. 단체라고 할까? 이런 기획을 같이 해보면 좋겠다 싶은. 그런데 우려는 그런 기대로 만났을 때 서로의 관심사가 달라서 잘 안 되는 게 많고, 그래서 공동기획이 어려운 것 같거든요. 예를 들면 저희는 지역에서 풀뿌리라는 키워드로 활동하는 단체이기도 하지만, 신촌이라는 특성도 있고, 풀뿌리 정치라는 언어를 물리적인 지역공간에 한정짓지 않으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시민’과 관련해서 작업을 하고싶은데, <더 넥스트>라는 단체와도 비슷한 관심사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최근 <평화교육프로젝트 모모>에서도 시민 교육이 키워드라는 말슴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런 고민을 가진 분들하고 만나고 싶어요. 저는 오늘 동네형들을 이름만 여기저기서 듣고, 처음 뵈었는데 친해지고 싶어요. (웃음)

그런데 저는 왜 비슷한 관심사인데 서로 안 뭉치냐는 질문을 받으면 “에이, 그럴 수도 있죠.” 이런 자세인데, 재작년에 ‘주민으로 불리지않는 주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포럼을 기획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서촌에서 ‘마을에서 빠진 이야기’라고 해서 ‘마빡이’ 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더라구요. 그렇게 모니터링은 하면서 언제든 만날 기회가 되면 만나야지 그런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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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름  시간 상 이제 객석에서 질문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질문 1  알바노조에게 여쭤보고 싶어요. 저는 삼십 대고, 노동을 하고 있어요. 정확한 데이터는 확인하지 못 했지만, 학생을 벗어난 시점부터 계속 비정규직 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더라구요. 특히 70년대 후반생부터 그런 사람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하고 있어요. 정규직으로 진입하는 게 어렵고, 비정규직을 한 번 경험했던 사람들이 악순환에 들어서는게 많았거든요. 제가 일하는 업종에도 계약직으로 들어가서 파견직으로, 시간제 근무자로 가는 게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알바노조라는 말이 그런 상황을 통합한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사용자 측, 회사에서도 ‘시간제 근무자’나 ‘대체 근무자’ 같은 여러가지 말이 있어서 다 똑같은 비정규직인데도 각자가 서로를 다르게 생각하고요. 주말직은 누구보다 아래에 있고. 그래서 내부에서도 같이 힘을 합쳐야 할 때도 잘 안 될 때가 있거든요. 또 지금의 20대들이 30대가 되어서도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 하는 경우가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알바는 이걸 언젠가 벗어날 수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이 용어를 변경하시거나, 사용자 측의 용어들을 하나로 합쳐야 된다는 이야기들이 있는지 궁금하고요.

이태영 씨에게도 여쭤보고 싶은데, 마을에서 자랐다고 하셨잖아요. 저는 부산에서 자랐는데 저도 마을이라는 단어가 가상의 공간으로 느껴지거든요. 제가 지금 서울에 살고 있지만, 마을 사업을 볼 때 솔직히 불편해요. 제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 한 마을이라는 것을 자꾸 심으려고 하는데 그게 왜 필요한지 잘 모르겠고. 이 마을이란 말이 내 현실에 없었고, 동네라는 말을 쓰지 마을이란 말을 쓰지 않잖아요. 그런데 왜 굳이 여러 단체에서 그런 단어를 쓰고 있는지 궁금하고요.

실제로 마을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도시로 나오셨잖아요. 제 생각에는 젊은 사람에게는 익명성이 주는 쾌감이 굉장히 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이라는 공간이 청년에게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게 어떤 건지 궁금해요.

이가현  알바연대가 처음 생길 때 저는 없었는데, ‘비정규 불안정 노동을 해결하는 비불연대’ 등 다양한 제안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알바연대로 택한 이유는 비정규 불안정 노동의 가장 극단적 형태가 아르바이트 노동이라는 생각해서 그렇기도 하고, 그 단어가 널리 통용되는 상황이니까 그렇게 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아르바이트가 명확히 정의되지 않잖아요.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 다르기 때문에 그걸 어떻게 정의할지 논의는 계속 되고있었어요. 작년에 사법연수원에서 일하셨던 4, 50대 분들이 법을 가르치는 곳에서 법을 안 지킨다며 제보를 계속하셨거든요. 그래서 그 분들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사법연수원에 문제제기를 하고 교섭도 몇 차례 진행했어요. 그때 그 분들이 우리도 아르바이트 노동자냐고 되물으시고, 내부적으로도 고민이 있었다고 해요.어떻게 아르바이트 노동을 정의하면 이분들까지 함께 할 수 있을까. 그런 결에서 나왔던 구호가 “알바생이 아니라 알바 노동자다”라고 생각하고, 계속 주장하고 있는 바입니다.

이태영  저는 스무 살에 도시에 처음 살았죠. 재작년까지도 서울사람이라는 정체성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구의원 선거에 나가려다 보니까, 스스로 서울사람 정체성도 없는데 서울에 후보로 나가려니 그렇기도 하고 선거 치르면서 그 정체성이 생겼던 것 같아요. 저한테는 선거가 스스로 지역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는 계기였죠.

이런 말들을 많이 하잖아요. 특히 단체 소속 활동가들이 자기 집에 잘 없잖아요. 그런데 머리로는 지역이 중요하고, 마을이 중요하다는 학습을 해요. 그런 자리에 가면 죄짓는 마냥 “제가 저희 동네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이러는데 저는 그런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집에서 그냥 자고 싶고, 모르는 사람과 발생하는 감정들에 대처하기 싫을 수도 있는데. 중요한 건 자기한테 그런 공간이 있냐는 검토지, 꼭 그게 내가 사는 동네를 중심으로 할 필요가 있나 싶어요. 자기 필요가 있으면 그렇게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도시의 지속 가능성은 그 익명성으로부터 만들어지는 다양성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이 도시라는 공간의 탄력이잖아요. 그걸 마치 익명성들이 나쁜 거고, 우리는 관계망으로 얽혀야되고, 마을이 짱이고 마을이 세상을 구하고 그러는데, 제가 보기엔 마을이 세상을 구하기 전에 세상이 망할 것 같거든요.

엘름댄스라고 느릅나무를 추모하는 춤이 있는데 강강수월래 비슷하게 해서 탈핵마을 같은 데서 많이 춰요. 춤을 추면서 느꼈던 것은 추모하고 싶은 나무, 장소, 그 동력이라는 게 탈핵운동에서도 얼마나 중요했던가. 그런데 추모하고 싶고 지키고 싶고, 애도하고 싶은 마음같은 게 아예 없는 삶이란 뭘까. 거기서 어떻게 정치가 만들어지는가.

아홉시 뉴스에서만 나오는 것에만 분노하게 되는 이십대는 왜 분노하지 않는가 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그래요. 그런 애정의 공간이 있어야 분노를 하는 거잖아요. 저한테 마을은 그런 공간인 것 같아요. 애정하고 분노하고, 애도하고 싶은 추모의 공간. 그 공간이 진짜 장소일수도 있고, 커뮤니티일 수도 있는데 그런게 우리 세대에게 있냐 없냐는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저는 그게 아예 그게 없는 세대가 허리를 이루는 시대는 무섭거든요. 그런 시대가 됐을 때 우리 동년배들에게 어떻게 말을 건넬 수 있을까. 동년배에게 말을 건네지 못 하게 되는 순간, 이 사회는 어떤 반응을 통해 변화할 수 있을까. 근데 그게 또 그런 경험이 왜 없냐고 윽박지른다고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초대가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박도빈  저한테 질문하신 건 아니지만, 저의 생각도 말씀드리자면, 전통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서 나의 가치관으로 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고향이 부산인데 1년에 두 번 정도 밖에 고향에 못 가거든요. 그러면 저희 부모님은 제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르세요. 일상에서 어떤 고민을 갖고 있고 뭘 하고 싶어하는지 모르세요. 그런데 저와 일상적으로 만나는, 피를 나누지 않은 주변 사람들과는 제가 가지고 있는 고민과 생각을 깊이 나누고 있거든요. 이런 지점에서 그렇다면 나한테 가족이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마을도 마찬가지 같은데, 저희 구성원들은 같은 동네에서 살고는 있지만 한 집에서 같이 살고 싶어하지는 않거든요. 단 한번도 같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남산의 해방촌과 같이 청년들이 함께 모여사는 사례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저는 그렇게 못 살 것 같아요. 저는 저의 개인적인 공간이 되게 중요한 사람이거든요. 그건 제가 공동체를 보고 마을을 보는 방식인거죠. 보통 주변 분들이 쉽게 이야기를 많이 해요. 너네 모여서 같이 살면 좋겠네. 그런데 저는 그러고 싶지 않다는 거죠. 그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어떤 틀을 만들어주잖아요. 마을은 이래야 되고 그 안에서 청년들이 이렇게 하면 더 효율적이고 그런 건 누구나 다 알죠. 그런데 그렇게 하고싶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희는 다 각자 살고있어요. 대신 그 외의 나머지 공간을 다 공유하는 형태를 지향해요. 저희 공간을 만들 때 열려있는 주방 형태로 만들어서 매일매일 밥을 먹거든요. 반찬도 만들고, 김장도 해요. 그리고 거실에서는 각자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거죠. 개인작업이 됐건 모임이 됐건. 그 외에 잠을 자는 내 공간이 있는 거죠. 이건 누군가에게는 맞지 않은 형태일 수 있겠죠. 마을도 선을 그어놓고 여기가 마을이라고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것 같고, 그 안에서 내가 어떻게 볼 것이냐, 내 주변 사람을 어떻게 보고 공동체를 만들어갈거냐 그게 중요한 거죠. 공동체도 느슨한 형태도 많이 있을 수 있거든요. 다양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며 살 수 있는 거죠.

질문 2  말씀 잘 들었습니다. 동네형들의 박도빈님이 말씀하셨는데, 활동가로서 스스로가 소모되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는 고민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아르바이트 노조에서도 비정규불안정 노동을 해소하기 위한 활동을 하는데 거기 필요한 활동비를 비정규불안정 노동으로 마련해야 하는 것처럼, 활동가로서 소모될 수 잇는 부분이 많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 것들을 개인적으로 혹은 사업으로 어떻게 풀어나가시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성이름  일단 외적인 부분만 말씀드리자면 저희 단체는 사무실이나 상근자가 없어요. 정기적으로 총회를 하고, 한 분기의 활동에 책임을 지는 임원이 두 명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일하는 방식은 프로젝트 단위로 사업을 만들고 운영위원들이 참여하는 방식이고요. 물론 임금도 따로 받지 않고, 본업은 각자 다 따로 가지려고 하는 식이에요. 저희 단체같은 경우는 오히려 큰 목표가 뚜렷하기 때문에 단체 운영에 있어서는 자본이나 여러 가지 리스크를 줄이면서 하려는 방식 같아요.

좋아하는 표현 중에 ‘절반만 활동가’ 라는 게 있는데, 실제로 저희 세대나 이 시대에게 적합한 활동방식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꼭 활동이라는 게 전업일 필요는 없는 것이고, 활동 외의 자기 영역까지 포함해서 각자 삶을 꾸려나가야 하는 것이겠죠.

박도빈  아직 답을 찾은 건 아닌 것 같아요. 여전히 어려운 문제이긴 한데, 활동가로서의 삶을 봤을 때 어쩔 수 없이 경제적 안정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내가 원하는 가치를 실현해가는 거잖아요. 저는 선택이라고 보는데 모든 사람이 이렇게 살 필요는 없는 거죠. 다만 그 안에서 자기가 생각하는 변화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는 일상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작년에 저희가 “활동가의 밥상”이라는 강연 프로그램을 했었는데, 거기 핵심은 거창한 담론이 아니었거든요. 강사분들에게 나의 일상과 연관시키는 계기를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드렸었고, 보편적으로 이야기하는 환경이나 평화 같은 여러 영역들이 내 일상과 연결되지 않고 활동만 하는 건 정말 소모적이라고 생각해요. 돈을 얼마나 받고 어떤 역할을 하든지, 내가 내 안에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지속가능하기 어려운 방식이거든요.

내가 하는 것들이 나한테 어떤 의미가 있고 그게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연결시켜내지 못 하면, 직업으로서의 매력도 없는 상태에서 활동으로서의 매력도 없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 안에서 스스로 성장하고 변화하는데, 조직을 어떻게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유지할 거냐 하는 건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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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3  오늘 패널로 나오신 분들이 각각 명시적으로 청년이라는 주체성을 내세우고 있든, 그렇지 않든 조금씩 기존의 청년에서 빠져나오려고 하고 있다는 인식을 받았어요. 알바노조같은 경우는 청년이 아니라, 알바노동자로서 주체성을 강조하는 것 같고, 이태영씨는 시민이라는 명칭을 통해 보편적인 주체로 확장시키면서, 호명된 청년에 갇히지 않으려는 인상을 받았어요. 동네형들 같은 경우 사회를 변화시키는 유권자로서 청년이 아니라 내 삶과 일상부터 변화시키는 게 중요하고,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누가 대신 말해주는 그런 게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앞세대에서 청년을 소비하는 방식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도 할 수 있잖아요. 예컨대 서울시에서 청년들에게 지원을 많이 해주는데 그게 독이 되기도 하지만 약이 되기도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그 외에도 소규모 단체나 청년단체에서 주장하는 의제를 큰 시민운동 단체에서 가져가서 활동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게 거기서 확장시켜준다는 점에서 의제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단체의 의제를 빼앗기는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요. 그런 앞세대와의 관계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잇는 자원을 잘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것을 잘 이용해가면서 우리가 갖고 있고 말하고자 하는 우리의 차별점을 어떻게 잘 이어나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이태영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많아진 건 맞아요. 활용할 수 있는 건 활용한다는 건 별개의 이야기인 것 같아요. 활용할 수 있는 건 활용하는 거죠. 저는 아까 청년이 포괄적이고 모호하다고 표현했는데, 한편으로는 대화하다보면 기대하는 청년이라는 역할이 있어요. 혁신적이고 새롭고 재미있고 신나고. 저 안 그렇거든요. 그런 자리 가면 청년 취급을 잘 안 해요.

저는 그런 공간에서 토론거리로 내놓여지지 않는 내용들, 우리가 정면으로 건드렸을 때 서로 감정적으로 스크래치가 날 수 있는 주제를 건드리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동등한 테이블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청년에게 뭔가 띄워주는 거죠. 자 이걸 해봐. 그건 그것대로 잘 쓰면 좋겠지만, 진짜 정면으로 부딪혀야 할 것들과 어떻게 부딪힐 것이냐. 왜 너희는 분노하지 않아. 니네는 해준 게 뭐 있다고! 이런 톤이 아니라.

저는 나쁜 의미에서가 아니라 선배들에게 기대를 많이 안 해요. 이 시대가 너무 난감한 시대인 건 상수인 것 같고, 오히려 선배들이 예측하지 못 하는 미래를 우리가 더 잘 예측할 수 있는 거죠. 사물인터넷 이런 걸 시민단체 활동가 선배들이 얼마나 예측하고 있겠어요. 아직도 계속 카톡 좋아하시고, 꽃사진 막 올리시는데 IOT 이런 게 아직 생소하실 수 있죠. 저도 생소해요. 그런데 난감한 시대고 예측이 어려운 시대니까 같이 얘기할 수 있는 자리들이 많이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아요.

왜 그 아젠다를 만들어놓지 않았냐고 불평하는 것도 저는 이제 끝인 것 같고, 선배들도 그건 남겨두고 자기가 못 할 걸 풀어놓는 건 중요한 것 같아요. 선후배간의 관계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내가 봐도 잘 못하는데 끌어안고 있는 것 있잖아요. 그런 것 좀 풀어놓게 하고, 같이 이야기하는 테이블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이 세대 안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요.

‘긴장관계’라고 할까요. 김목인이라는 가수의 노래 중에 <불편한 식탁> 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우리가 같이 식사를 했다고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니라는 가사가 나와요. 그런데 우리가 같은 생각인 줄 알고 모였다가 다른 얘기하면 상처받고 그러잖아요. 서로에게 다른 정체성이 있을 수 있고 그 긴장감을 버텨가면서 이야기하는게 많이 만들어져야할 것 같아요. 좌우종횡하면서 긴장관계를 견디는 훈련을 하는게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가현  저는 기존 제도권이나 그런 관계에 있어서 얻는 게 있으면 그만큼 비판하지 못 하는 영역도 많아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예컨대 서울시에서 혁신근로일자리 사업을 하고 있잖아요. 사회공공영역에서 일하면 서울시가 상근비를 대신 지급하는 건데, 알바노조 입장에서도 그걸 신청하면 서울시 재정으로 상근자를 늘릴 수 있으니 좋죠. 그런데 신청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알바노조에서 비정규 불안정 노동 일자리를 비판하고 있는데, 그 정책은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11개월 계약하는 단기간 일자리거든요. 저희가 그걸 비판하면서 이용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또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위원회가 공익위원 9명, 사용자측 9명, 노조 등에서 9명으로 구성되는데, 최근에 민주노총에서 그 중 한 자리를 2년 후 알바노조에서 들어가라고 제안했어요. 알바노조에서는 그것도 거절했는데, 그렇게 되면 그 2년 동안 알바노조로서는 민주노총이 잘못했을 때 비판하기 어렵잖아요. 그런 식으로 본질은 잃지않고 함께 하는 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박도빈  저희는 세대 교체 이전에 올해 문 닫지 않고, 한해 한해 버티는게 목표에요. 저희는 말씀하신 혁신 일자리를 올 해 두 명 받았거든요. 그리고 서울시 뿐 아니라 여러 외부 사업들을 하고 있는데, 저는 냉정하게 봐야된다고 생각해요. 그 방식은 정말 맘에 안 들죠. 시작한지 이미 2주가 됐는데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어요. 시킬 수 있는 게 없어요. 우리가 하고 있는 활동들을 어떻게 볼 것인지가 정리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지만 혁신일자리의 기간 동안 인건비를 지급할 수 있으니 원하는 친구들이 일을 할 수 있는 준비 과정이라고 해보자는 생각에서 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단체의 방향을 봤을 때는 그런 것들이 모여서 어떻게 다양성을 담아낼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있어요. 앞으로의 과제에서 핵심은 다양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청년이라고 하는 세대도 기존의 생각들에 많이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아요. 같이 일하는 게 즐겁고, 협동하는 게 더 효율적이고, 나누는 게 좋다고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많이 경쟁하고 있고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과도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단체를 크게 만들거나 오랫동안 해나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지금은 모두 비영리활동을 하고 있지만 어떻게 하면 독립성을 갖고 앞으로 각자 하고 싶은 영역으로 자립해 나갈 것인지가 저희의 가장 큰 화두거든요. 청년운동이나 시민사회 영역으로 묶었을 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이안에서 우리가 얼마나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고, 사람들의 다양성을 담아낼 것인가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기존의 방식들은 한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어려운 방식이에요. 협력이란 건 없었다고 보거든요. 이해관계가 있었던 거고, 정말로 다른 생각을 가진 집단들이 협력을 해왔느냐고 하면 저는 부정적이에요. 지금 2, 30대의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는 다양한 소리를 듣고 존중하는 게 필요하고, 그렇게 전달되어 가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이름  긴 시간 함께 해주신 패널 분들, 들어주신 관객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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