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일’ 라운드테이블1 “DIY 운동은 자율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녹취록

Chapter 2. 일 : 라운드 테이블1 “DIY 운동은 자율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일시    2015년 3월 21일 토요일
장소    오피스커피
패널    정희 (Make: Korea 매거진), 송수연 (청개구리 제작소), 최빛나 (청개구리 제작소)
사회    백희원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사진    전소영

 

  소개와 인사

백희원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로 2회 째인 공공그라운드의 기획을 시작한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에서 운영위원을 맡고있는 백희원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첫 라운드 테이블인 이 자리의 제목은 ‘DIY 운동은 자율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입니다. 공공그라운드에서 일에 대해 다루기로 한 후 DIY를 첫 번째 주제로 선택한 것은 ‘제작문화’, ‘메이커 문화’ 등 다양한 단어로 불리는 이 사안의 복잡성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복잡함을 잘 전달해주실 수 있는 분들을 초대했는데요. 혹시 약간 어려운 자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드는 한 편 재미있으리라는 점은 의심치않습니다.(웃음) 먼저 패널 분들 소개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기대를 갖고 이 자리에 나오셨는지도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최빛나  안녕하세요. 저는 청개구리 제작소에서 일하는 빛나라고 합니다. 원래 시각디자인 작업을 합니다. 저희는 동그랗게 둘러앉아서 열 명, 열다섯 명 정도 얘기하는 자리인 줄 알고 덜컥 초대에 승낙했더니 완전히 소실점에 가까운 구도네요. 공적인 자리에서 활발하게 얘기하는 걸 잘하는 편이 아니에요. 그런데 재미있을 거라는 기대를 왜 벌써부터 하게 만드시죠? (좌중 웃음) 저희가 생각하던 것들을 조금이라도 공유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반갑습니다.

송수연  안녕하세요. 저는 청개구리 제작소에서 같이 활동하는 송수연이라고 합니다. 저 역시 다섯 명 이상이면 말할 때마다 많이 떨어요. 되도록 편하게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청개구리 제작소는 제작기술 문화 관련된 연구들, 활동들, 그리고 작업도 하고 있어요. 활동한 지 올해 4년 정도 됐습니다.(패널 인터뷰 : 최빛나 ‘청개구리 제작소’) 매년 활동과 관련된 질문들이나 고민들은 변하는 것 같아요. 오늘 많은 분들이 오셨는데 어떤 궁금증을 갖고 오셨는지 또한 들어보고 싶습니다. 반갑습니다.

정희  안녕하세요. 메이크 매거진을 만들고 있는 정희라고 합니다. 저는 메이크 매거진을 두고 DIY 프로젝트를 쇼케이스 하는 잡지라고 설명 드리곤 해요. 전 세계 사람들이 차고든 책상이든 다양한 공간에서 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의 결과물을 모아서 보여주는 잡지입니다. 그 외에 단행본도 출간하고, 메이크 페어라는 프로젝트를 보여주고 워크샵하는 행사까지 기획하는 역할을 맡고 있고요.(패널 인터뷰 : 정희 ‘메이크 매거진’) 메이크는 4년 쯤 전에 시작했는데 DIY문화가 그때는 지금보다 더 영세한 세계였기 때문에 청개구리 제작소 분들도 옛날부터 알고 있었고, 오늘 이런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네요. 반갑습니다.
 

  사람들은 왜 DIY를 할까?

백희원  DIY ‘문화’라고 말 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요. DIY라는 흐름이 있는 것인데, 개인들의 자발적인 참여에서부터 비롯된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지점이 ‘공공을 구성하는 것은 개인’이라는 저희 행사의 취지와도 잘 맞는데요. 이 개인들이 DIY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은 인터뷰에서도 여쭤봤는데 그때 사회적인 원인들을 주로 얘기해 주셨지만 이번에는 개인적 차원에서 사람들은 뭐가 좋아서 DIY를 시작하게 되는지 부터 즐겁게 이야기해보면 좋겠습니다.

이번 행사 기획과정에서 ‘공공도큐멘트3: 다들 만들고 계십니까?’(이하 ‘공공도큐멘트3’)라는 책을 많이 참고했는데요. 청개구리 제작소와 미디어버스에서 DIY라는 주제로 같이 낸 책입니다. 여기서 인상 깊었던, 반복되는 이야기가 DIY는 놀이인 동시에 일이기도, 노동이기도 하다는 얘기였거든요. 제 추측으로는 이 점이 매력인 것 같아요. 아주 유용한 취미 생활을가질 수 있다는 것. 이외에 또 무엇이 있을지, 개인적인 얘기를 해주셔도 좋고, 주변에서 관찰한 것을 말씀해주셔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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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  저는 DIY라고 타이틀을 붙였을 뿐 만들기는 누구나 자연적으로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집에서 직접 만드는 게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사실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납땜’이라든지 하는 교육과정이 초등 5학년 과정에 들어있어요. 정규과정을 받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만들기 기술을 습득할 기회가 있었던 거죠. 늘어난 티셔츠를 뭉쳐서 고양이에게 준다든지 이런 것도 DIY 카테고리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새삼 담론이 형성되는 이유를 보자면, 요즘은 만들기 키트도 잘 돼있고, 뭘 만들어서 페이스북에 올렸을 때 사람들이 동조도 해주고, 나도 만들어봐야지 할 수 있는, 기술이나 매체가 뒷받침 되기 때문에 더 드러나기 쉽게 된 것 같아요. 나의 놀이로 시작하지만, 사업화 될 가능성도 크게 열렸고요, 쉽게 시작했는데 기술적인 완성도가 높아질 가능성도 급격하게 커졌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사회와 일과 돈까지도 연결이 되는 것 같고요. 기본적인 호기심에 대한 발산이란 측면은 정말 자연적이니까 거기에 대해서 더 깊게 이유를 찾을 필요는 없다는 느낌이에요.

송수연  그냥 개인적인 얘기를 하면, 저는 무척 오랜시간 동안 시민단체에서 활동을 했었어요. 활동가로서 십 년 넘게 여러가지 일들을 했고 활동이라는 것이 사회의 변화, 진보와 연결되는 것임에도 정작 제 삶은 점점 피폐해지는 걸 느꼈어요. 자율적인 것 같지만 항상 활동이라는 이름 하에 많은 노동을 해야 했고, 어느 순간부터 제가 존재의 기반이나 감각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인지했을 때 친구들하고 자유롭게 공부도 하고 농사도 짓기 시작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만든다는 것에 관심 갖고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바느질, 목공, 기초적인 전자 공작 등을 접해보고 내가 잃어버린 감각 같은 걸 회복시킨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즐거웠고, 혼자서 혹은 주변 친구들과 만드는 과정에서 제가 어렸을 때 어렵게만 느꼈던 물리나 수학 같은 것들을 무척 쉽게 이해하게 된 거에요. 그러면서 아 이런 게 자연스럽게 교육이 되는 거구나. 뭔가 암기하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내가 어떤 걸 만든다는 것, 사물을 만지고 물건을 만든다는 것 자체로 어떤 앎이 쉽게 다가온다는 게 큰 동력이 되었어요.

사회적인 측면의 얘기를 해보면, 앞서 얘기한 제 개인적인 경험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원하고 있고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드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알게 된다는. 한편으로는 또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기술진보 변화 등이 사람들이 무엇을 쉽게 할 수 있다는 장을 열고 또 때로 그런 환상을 갖게 하고요. 개인들이 만들기를 통해 새로운 경제적인 영역, 산업적인 영역을 산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지요. 이런 것들이 앞으로 사회변화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 모르겠지만, 개인의 사회적 생산이 가능하다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만들기, DIY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빛나  앞에서 많이 얘기해주셔서 저는 짧게 답할게요. 인터뷰에서도 어느 정도 이 질문에 답을 한 게 있더군요. 그때는 사회 자체가 구조적으로 ‘DIY화’ 되는 것에 대해서, 만들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예컨대 소셜 네트워크라는 건 플랫폼만 있고 컨텐츠는 우리가 다 채워나가는 거잖아요? 이렇게 사회 자체가 DIY되어가는 것이 우리의 인지 프레임을 바꾸는 게 아닐까 하는 얘기를 했었는데요.

또 다른 얘기는, 사회가 너무 파편화 되다보니 마을 만들기 같은 커뮤니티 형성에서 대안을 찾는 흐름이 있잖아요. 근데 만들기가 그런 커뮤니티 만들기에 좋은 중재성이 있어요. “우리 ‘이거’ 만들어봐요”라고 할 때 관계를 형성하기에 굉장히 좋은 매개체가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희는 처음 활동할 때부터 만들기가 커뮤니티를 만들기 좋은 중재성이 있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만들기라는 것이 잘 만들고 못 만드는 문제가 아니고요. 또 만들어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사는 게 나아요. (웃음) 물론 만들기의 즐거움이 있고, 거기에 또 어떤 접속력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DIY를 통해 생겨나는 관계들 : 공유, 협업, 공간 기반 커뮤니티

백희원  말씀을 들어보니, 일단 내가 손으로 만져보고 지식을 몸으로 체득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DIY를 하게 하는 큰 원인 같아요. 그리고 세 분 말씀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SNS에서 ‘좋아요’를 받는 경우든, 마을에서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 경우든, 만들기 과정에서 내가 뭘 몰라서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경우든, DIY를 하다보면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이 필연적으로 생기는 것 같아요. 이렇게 관계를 확장해야 하기 때문에 문화로서 번져 나갈 수 밖에 없는 추동력이 DIY 활동 자체에 내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패널 분들이 일하고 활동하시며 직접 겪거나 목격하신, DIY를 통해 형성되는 관계들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정희  정말 커뮤니티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한국의 현실에서 커뮤니티가 운영되기란 엄청나게 어렵거든요. 그게 업이 아닐 경우에는 자의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하다보면 공간도 필요하고 모이면 커피라도 마셔야 되고, 자발성에서 나오는 경제적 여유나 시간적 여유에 한계가 있죠. 지금의 DIY 붐도 그런 어려움을 공유하는 한편 뭔가 창출하기는 한결 쉬워지면서 커뮤니티가 생기고, 여유부품이 있으면 서로 나눠주고 연구주제가 있으면 서로 알아주고 하는 관계가 생기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지금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호기심만 있으면 지식과 정보, 관련된 네트워크, 제작소를 찾아서 뭔가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예전에 비해 좋고요. 메이크 매거진이 다루는 지점도 그렇고 ‘이 DIY 문화’의 기존과 다른 점은 ‘공유’인 것 같은데요. 집에서 이 프로젝트를 100번 정도 해보고 생긴 노하우로 생긴 장인 정신이 담긴 가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이 사이즈에 맞는 자기 집에 놓고 싶은 가구를 만들고 싶은데’ 에서 출발했을 때, 나무를 다루는 법에 대한 지식을 사람들이 공유해주기도 하고, 제작소를 가서 조언을 듣기도 하면서, 여기서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가구를 얻게 되는 거죠.

잠깐 홍보를 하자면, 제 바로 앞에 청중 분이 시계를 좋아하셔서 시계 매거진 창간을 준비하시거든요. 제가 알기로 출판 경력은 하나도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지난 주에 페북 페이지도 오픈하셨어요. 예전이라면 어려웠을 목표를 지금은 이렇게 관심만으로 실행해나가는 게 자연스러워진 것 같아요. 이 분은 저에게 문의를 하셔서 조언도 드렸고요. 이런 식으로 정보를 쉽게 구하고 쉽게 주고, 공유하면서 풍요로운 지식이나 문화를 만들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백희원  굉장히 아름다운 이야기로 진행되고 있는데요. 청개구리 제작소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개인적으로 더 들어보고 싶은 것은 작년에 진행하신 언메이크랩에서의 경험입니다. 굉장히 많은 분들과 협업으로 진행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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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빛나  협업은 참 어렵죠.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안 되잖아요. (웃음) “뭔가 같이 해요.”라고 얘기할 때, 생각만큼 아름답게 되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협업을 할 때는 오히려 우리가 무슨 제안을 할 때 뚜렷한 맥락이나 ‘우리 이런 것 하고 싶어요’ 와 ‘우리가 당신을 이렇게 봤는데 이런 걸 연결해보면 어떨까요’ 라는 명확한 제안이 없이는, 그냥 협업이 섞어 놓으면 뭔가 좋은 게 될 것 같다는 그런 방식으로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협업은 오히려 단단한 틀들이 있어야 가능한 것임을 느꼈어요. 작년에도 그런 시행착오를 많이 했고 그래서 저희는 저희가 바라보는 것을 굉장히 명확하게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그 분에게서 우리가 뭘 보고 있는지도 명확하게 얘기하고 그래서 이렇게 연결해보고 싶다는 것을 정확하게 가져가려고 노력하죠.

백희원  관찰과 연구도 하시잖아요. 지켜봐 오신 제작자들의 관계나 네트워크에 대한 내용을 듣고 싶어요. 예를 들면 서울에 있었던 해커스페이스는 왜 사라졌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최빛나  사라졌다기에는 온라인 상에는 있긴 한데요.

정희  제가 초기멤버였는데요. 2010년도쯤에 해커스페이스 서울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협업을 하는 공간이 생겼어요. 기존에 있던 네트워크인데요. 공간 하나를 해커스페이스 웹사이트에 등록하면 전세계 어디서든 이 사람들이 공간을 찾을 수 있고 거기에 가면 만들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알 수 있다는 협력포맷이에요. 한국에도 2010년에 생긴 거예요. 창립멤버 세 분이랑, 초기멤버 몇 명이 들어가서 만들기도 하고 작업도 했는데, 지금은 망했다고 하긴 그렇지만 어쨌든 망했는데요…(웃음) 커뮤니티라는 게 돈 없이 좋다는 것만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기 때문에 처음에는 작업 공간이 필요해서 공간을 찾으러 다녔던 거였죠. 당시엔 이런 커뮤니티가 없기도 했고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힘들었어요, 뉴미디어 쪽으로 레지던시에 지원해서 삼 개월씩 살기도 했어요. 그런데 삼 개월 안에 결과물을 만들어 공간에 대한 리워드를 줘야 했고, 이 점을 사람들이 힘들어했죠. 자발적으로 시작했지만 제약이 생기면서 자기 작업에 제한을 받고 공간을 지키는 것도 힘들고, 강제성이 생기며 재미라는 게 없어진 거죠. 그렇게 1년 정도 떠돌아 다녔어요. 개인작업도 삼 개월 안에 뭐가 나오려면 전업으로 해야 하는데 그런 정도의 열의는 없었거든요. 전업은 아니고 그냥 잉여력을 발휘하고 싶었던 건데 그런 포맷으로 정착하기란 힘들죠.

때문에 남들한테 방해를 안 받으려면 우리가 투자를 할 수 밖에 없네 하고 월세를 모아서 을지로에 살기 시작했어요. 해커스페이스로 등록을 해놓으니 외국에서 해커들이 찾아오기도 했죠. 전업으로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회사 끝나면 각자 세 시간씩 지키는 식으로 운영했는데요. 돈 내고 그렇게 유지하려니 힘들어서 재작년 쯤 닫고 잠정적으로 온라인으로 전환했어요. 커뮤니티 만들기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죠. 거기 계시던 분이 3D프린터 관련 창업을 하시기도 하고 또 뉴미디어 학과 교수로 가기도 했는데 커뮤니티 유지는 온라인 채팅하는 사이트 정도로 축소되었고, 사람들이 활동을 하고는 있지만 작업으로 뭉치는 일은 프로젝트 정도로만 축소됐습니다. 초기 커뮤니티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는 케이스가 된 것 같고요.

그래도 2-3년 정도 전부터는 커뮤니티들에 협업에 대한 지원이 많아졌기 때문에 시작했을 때 공간을 빌릴 수 있는 곳이나 페어에 참가해서 기업 눈에 드는 프로젝트 경우는 개인 프로젝트에 대한 워크샵 지원도 받을 수 있어요.
 

  DIY에 흘러들어오는 창조경제의 돈 : 지원 혹은 외압

백희원  어떤 지원들이 늘어나나요?

정희  어떤 프로젝트에 대해서 공간을 받는다거나 프로젝트에 수반하는 워크샵 운영비를 받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지금은 능력 있는 분들이 발굴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분들한테는 기업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의뢰해서 외주를 진행하는 식도 있죠.

백희원  왜 늘어나는 걸까요?

정희  이제 좀 위험한 이야기로 들어갈 것 같은데.(좌중 웃음) 제가 보기에는 창조경제 같은 트렌드가 만들어내는 ‘예산을 얼마 써야한다’는 분위기도 있지만, 메이커 페어의 경우로 말씀드리자면 기업들이 보기에도 좋은 기회로 보였던 거예요. 첫번째 스폰서 였던 구글 같은 경우에는 구글 핵페어(Hackfair)라고 구글 프로젝트를 하는 개발자들의 쇼케이스 자리로 비슷한 행사를 만들었어요. 그게 아시아 지사장한테 좋은 평가를 받아서 다시 메이커페어 도쿄를 지원하고, 핵페어 포맷을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프로젝트들을 진행했죠. 이런 식으로 창의성에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기업들이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자기들이 직접하거나 스폰을 하죠. 미국에서 하는 제일 큰 메이커 페어 중에 하나가 뉴욕 페어인데 엘지 전자가 제일 큰 스폰서로 들어가면서 이슈가 되었거든요. 기업들이 창의성에 대한 투자가 어떤 식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방향을 잡았고, 이게 자연스럽게 개인 프로젝트로 흘러가게 된 것 같아요.

최빛나  기업들이 지원을 많이 하는 것을 저희도 요새 관찰하고 있어요. 아두이노와 비슷한 오픈소스 컴퓨팅, 피지컬 컴퓨팅으로 예컨대 인텔의 에디슨 같은 게 나오거든요. 영리 기업에서 오픈소스 하드웨어를 출시해요. 최근에 해커스페이스 국제네트워크 메일링이 오가는 걸 보니까 그게 오픈소스가 맞느냐, 인텔 그런 데 제발 오픈 소스 하드웨어라고 쓰지 말라는 비판도 있더라고요. 그런데 기업도 그냥 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매출 자체로 보면 전체 중에서 정말 소수거든요. 돈을 버는 게 일차적 목적이라고 보기엔 문제가 있죠. 그보단 놀면서 분산적인 창조성을 기업의 혁신, 개선과 연결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굉장히 강하게 있는 것 같아요. 국내 대기업들도 개인적인 제작문화라고 할 수 있는 메이커 문화에 자꾸 접근하는 이유가 그런 부분에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송수연  요즘에는 웹의 컨텐츠들이 개인 중심으로 생산되잖아요. 그런 성과들이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사람들의 자발적 노동이 자유노동이냐, 공짜 노동이냐 하는 논쟁이 있죠. 자율적인 활동과 노동에서 나오는 아이디어, 어떤 새로움에 기반 한 혁신이라는 것이 사회의 어느 면으로 닿고 있는지 그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는 건 중요한 문제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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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빛나  작년 말에 일본 오사카에 갔다가 막 개장한 그랜드프론트오사카라는 대형 쇼핑몰에 갔는데요. 쇼핑몰 한 챕터가, 지식의 수도(knowledge capital)라는 이름이더라고요. 이게 뭘까, 왜 이런 거창한 이름을 붙였을까 궁금해서 찾아갔어요. 여러 가지 기업들이 랩, 연구실이라는 이름을 달고 매장을 오픈하고 있더군요. 어렸을 때 갔던 과학관 같은 것도 기억났고요. 코카콜라나 서브웨이 샌드위치나, 베이커리도 있는데 전부 연구실이라는 이름을 달고 만드는 과정부터 오픈하고 있었어요. 예를 들면 서브웨이는 식물공장 모델을 작게 구현해서 LED불에서 거기서 식물들을 키우고 토마토를 키우면서 바로 샌드위치 재료를 만들어서 서빙 하는 랩을 구현하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오픈되어있다, 개방한다는 게 소비자와 곧바로 연결되겠다는 거잖아요. 그런 것에서 ‘어떤 혁신’을 만들고 싶어 하느냐가 느껴지더라고요. 예전처럼 기업 내 연구실에서 하는 게 아니라 아예 오픈해서 외화 시켜 버리는 걸 보면서 기업들이 생각하는 오픈 소스에 대한 해석이 이런 모양으로 드러나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

백희원  가장 존경하는 사람 설문 1위가 매번 스티브 잡스인지도 몇 년이 된 것 같은데 확실히 혁신이라는 단어가 트렌드가 되며 말씀하신 상황들이 벌어지는 것 같아요. 저도 자료를 찾아보며 DIY가 벌써 혁신 담론과 연결되었다는 데 놀랐어요. 제 일상에서 접한 것은 목공과 뜨개질, 절약의 기술, 센스 있는 셀프 인테리어 등등이어서 여전히 이게 주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검색했을 때 가장 먼저 나온 기획기사 타이틀이 ‘창조경제를 이끌 메이커스’인 거에요. 그 다음 검색 결과는 카이스트에 계신 교수님 글이었는데, 정부에 메이커 문화에 대한 지원을 촉구하는 거 였구요. 학교마다 메이커 스페이스를 만들어야 진정한 창조경제가 이루어진다는 내용이었는데, DIY가 대단히 빠른 속도로 이 접면과 붙어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상은 구경꾼의 것일테고, 실제로 메이커 분들은 시장이 어쨌건 정부가 어쨌건 즐겁고 신나게 만들고 계실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의수제작사례에 감명을 받았는데, 이렇게 만들고 계신 분들이 담론적인 층위에 관심이 있는지는 모르겠더라고요. 반대로 해킹행동주의나 자율성을 공부해 온 분들은 이런 현상을 관심 있게 지켜볼 것 같기도 하고요.

이렇게 DIY와 관련된 다양한 성격의 주체들이 ‘혁신’을 경유해 벌어지는 흐름 속에서 각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왜 국회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주주 투자나 대규모 투자도 가능하게 하는 정책을 통과 시켜주지 않느냐는 불만이 있더라고요. 이런 반응이 제작자들로부터 나오는 건지, 아니면 언론이나 연구소에 있는 분들이 형성하는 여론지 궁금해요. DIY를 사업으로서 접근하는 개인 메이커들은 얼마나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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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  저는 말씀하신 기획기사를 낸 전자신문 및 기사에 나오신 분들과 다 같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좀 조심스러워 지긴 하는데요.(웃음) 한국과학창의신문에서 ‘한국경제를 이끄는 메이커스’라는 기획연재를 전자신문에 의뢰를 해서 시리즈 기사를 낸 걸로 알고 있어요. 이 기사를 낸 분들의 목적은 결국 페이지 카운트죠. 그게 전자신문의 다른 기사와 비교했을 때 얼마나 흥미를 이끄느냐. 창조경제 예산에 대한 결과물도 역시 숫자로 취급되니까요.

일단 기사에 등장하신 분들은 실제 제작을 하시는 분들이고 정말 초기부터 전업으로 해오신 분들도 있고요. 메이커로 활동하는 분들, 특히 가시화 된 분들의 풀은 상당이 좁아요. 이런 기사를 쓴다고 했을 때 활동하고 있는 사람 중에 모르는 사람이 나올 가능성도 상당히 적은 편이고 기사 뿐만이 아니라 창조경제에 포함되는 다른 모든 포맷에 똑같이 적용됩니다, 그러니까, 컨텐츠를 생산하는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갑자기 이 풀을 50에서 100으로 늘리라고 지원을 한다고 해도 자발성 있는 개인을 그만큼 확보할 수 없다는 거죠.

창조경제 예산의 결과물이 어떤 포맷으로 드러나는지 잘 보여준 사례는 ‘무한상상실’이라고 제작공간을 전국에 50 곳 오픈했어요. 전국에 50개소의 메이커 스페이스를 오픈할 수는 있지만 이럴 때 그걸 어떻게 활용할지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죠. 메이커 스페이스 하나 더 오픈했다고 똑같은 수의 창작자들이 어디서 새로 나타나서 거기 가는 건 아니거든요. 제가 알기로 2000 만원 짜리 프린터를 갖다놨는데 운영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두기만 하는 데도 있고요. 포맷은 우후죽순처럼 찍어내듯 늘어나고 있는데 이를 채우는 컨텐츠는 같은 속도로 보강되지 않으니 불균형이 일어나는 거죠.

최빛나  저희도 그 전자신문 인터뷰를 했었어요. 알고보니 창조경제를 이끈다고 해서 결국 안나갔죠. 좀 다양한 방향으로 유통했다면 모르겠는데, ‘창조경제를 이끄는 주역들’이라는 타이틀로 나간다니까 할 수 없더라고요. 우리가 그렇게 정의되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당연히 들 수밖에 없잖아요.

저희는 무한상상실이 처음 발표됐을 때 매뉴얼을 다운 받아서 봤어요. 250페이지 정도인데 깜짝 놀랄 정도로 내용이 없어요. 10페이지 정도로 줄일 수 있을 만큼. 각 개소에 필요한 장비 등만 반복적으로 나오는 거예요. 그게 정책적으로 확정되고, 행정에서 지원을 하고 공적인 자금이 투여가 되면, 되는 거죠. 되고 그걸 또 그 쪽에서 평가하는 지표들이 있겠죠. 그럼 성과가 좋네요 이렇게 되고. 그런 식으로 되는 것에 대해 지금은 아예 그냥 비판을 하지도 않아요. 그것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자는 생각이 들어버리는 상황이에요.

송수연  이 얘기가 디지털 제조 영역에서 벌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말씀하셨듯이 풀이 좁아요. 거기 계신 분들이 사회적인 것과 연결된 뭔가를 체감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건 현재 제작문화란 것이 사회적 기업, 사회적 경제, 공유 경제, 창조경제의 패러다임에서 호명하기 쉬운 이슈라는 거죠. 그것들을 경제적 시각으로 보려는 게 큰 것 같고요. 개인적으로는 직접 만들고 창작하는 사람들이 그런 것들에 무감하게 움직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상하게 포섭되어 버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정희  여기에 대해서 요새 부정적인 분위기가 있지만, 또 한편으로 어떤 문화가 확산되려면 예산이 투입되는 게 맞고, 메인스트림으로 가기 위한 성장통을 겪고 있는 거라 볼 수도 있죠. 방향을 잘 잡으면 그 문화가 그만큼의 생산성이 있다는 거니 괜찮은 거고요. 물적 지원이라는 일종의 외압에 죽어버리면 이 문화가 대중을 위한 문화가 아니었음이 판단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들어보면 이런 공적 자금이 투입될 때 누구 한 사람을 찾아서 지원해줄 테니 해보라는 방식이 아니라 사단법인을 만들어서 예산을 집어넣는다거나 하면 그냥 이 사람들로 기사를 쓰거나 컨벤션을 함으로 예산을 다 소비해버리는 경우도 있거든요.

개인적인 성장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개인적으로 메이커하다가 스타트업으로 가신 분이 있는데 이 분이 교육용 모듈을 만들었어요. 창조경제 붐이 시작된 후로 여기도 정부지원을 따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했는데 직접적 지원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와디즈’라는 마이크로펀딩 사이트에 올렸더니 680퍼센트 정도로 지난주에 펀딩 성공을 했어요. 개인적으로 열망에 의해 사람들이 스스로 성공해버리는 사태는 공적자금 투입되는 전후로 똑같아요. 그래도 직접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변화가 좀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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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희원  늘 그렇지만 돈이 필요한 곳으로 흘러들어가기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하나의 서브컬쳐 속에 서로 다른 방향에서 출발하는 다양한 욕망들, 예컨대 주는 쪽의 인용하고 싶고 기대하는 욕망과 받는 쪽의 완전히 자의적이고 자발적인 욕망, 또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필요 등이 서로 맞물리는 게 쉽지 않고. 특히 돈을 가진 쪽에서 이런 기획을 주도하면 더 실패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놀고 있는 무한상상실의 사례처럼요.

비슷한 얘기로 사전인터뷰에서 정희님이 하신 공모전 사례가 있네요. 공모전을 통해서 좋은 창업 기획 등을 발굴하고 싶어 하지만, 우리가 2000만원 줄 테니 맘에 들게 해보라고 하면 결과물이 별로인 경우가 많다는 말씀을 하셨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조건 없이 기본소득이 좋은 정책입니다.(웃음)
 

  사회적 경제와 자발적 동원으로서의 사회의 DIY

백희원  청개구리 제작소에서는 DIY를 사회적 경제에 접목시키면서 청년 일자리 부족 문제를 DIY 방식으로 풀고자 하는 흐름을 보고 계시지요? 이 주제로 진행한 행사에서는 ‘사회의 DIY화’라는 표현을 쓰셨던데 이와 관련해 어떤 이슈가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최빛나  난망한 주제죠.(웃음) 정희님도 행정적 문제 말씀하셨는데 아시다시피 사회적 경제도 굉장히 행정주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죠. 원래 그런 점에 불편한 감정이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뭐든 늘 행정주도적으로 진행되고 거기에 맞춰 흘러가는 방식에서 뭔가 이뤄져왔던 것 같기는 해요. 작년에 청년노동과 제작문화의 연결, 사회적 경제 세 가지 축을 갖고 리서치 할 때 많은 친구들을 인터뷰하면서, 행정주도든 뭐든 간에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에 긍정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걸 굉장히 많이 배웠어요. 사회적 경제도 받아들이고 좀 더 세밀한 결들을 보려고 노력을 하게 되는 변화가 있었죠.

그리고 청년문화라는 하위 문화가 뭔지 들여다보면 정말 사회적 경제에서 일어나는 활동들이 그것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더라고요. 작년에는 이를 확인하며 청년과 활동이, 제작문화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짚어봤다면 올해는 또 그 다음의 질문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것이 뭔지 얘기하기는 너무 기네요. 여기에 대해 저희가 쓴 글이 공공도큐먼트3에 실린 ‘마을만들기에서 물건만들기까지’ 거든요. 작년에 언메이크랩을 하면서는 ‘누가 DIY 시민을 만들까’ 라는 질문을 했었죠. 이 DIY 시민은 2,30대 청년들을 대상으로 생각했었어요. 그 나이대 친구들을 초대해서 같이 얘기를 했는데 “도시를 바꿔봐요. 도시를 재생해봐요” 하며 ‘부추겨지는 자발성’, 자율성, 요구되는 DIY 라는 것들에 대해서 위기감이라고 해야 하는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더군요. 말씀드린 글을 한 번 읽어봐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백희원  저는 대학원에서 협동조합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아직 협동조합 경영학이라는 학문이 뚜렷하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협동조합이란 대상에 경영학적 관점에서 관심을 두고 연구하는 곳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은데요. 그 안에서도 협동조합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져서 자리를 잡아야 의미 있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고 협동조합도 한국에서 행정이 끌고 가는 힘이 강하다고 할 수 있는데, 한국은 그런 식으로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하시는 분도 있어요. 누군가 부추기는 게 꼭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지 않나. 부추겨짐 당해서 나중에는 정말로 자발적이 될 수도 있다는 논의가 맴맴 도는 것 같아요. 이게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뚜렷한 해답이 보이지 않는 어려운 상황에 있기 때문에 우회적인 방식을 모색하며 돌고 도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DIY를 위한 공간, DIY에서 가능한 공간

백희원  저는 몇 해전 부터 목공을 배우고 싶었어요. 구체적으로는 제 작은 방에 효율적으로 들어가는 책상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있는데요. 이때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어디서 만드느냐는 거에요. 물론 목공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많고 마을에서 공동으로 쓰는 공작소도 서울 곳곳에 생겼지만 일단 저희 동네에서는 못 찾았거든요. 그런데 이 동네를 넘어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어디어디로 특별히 만들러 가는 것 까지는 하고 싶지 않아요. 귀찮으니까.(웃음)

그러니까 결국 근처에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예컨대 동네마다 초등학교는 다 있으니까 어차피 낮부터 가서 할 것 아닌데 저녁에는 비어있는 공공 공간들을 나라에서 조건 없이 열어 주면 좋겠다. 물론 자율적 관리를 위한 장치들이 필요하겠고요. 또 한편 든 생각이 제가 사는 동네 주거비가 무척 싼데. 여기 옥탑 정도는 친구들 다섯 명 정도만 모이면 감당 가능한 비용으로 쓸 수 있으니 창고를 공유할 친구를 모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미국에는 개러지 문화가 있기 때문에 DIY 문화가 자연스럽게 발전할 수 있었다는 일반론도 존재하고 정희님께서는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책상 위에서 만드는 DIY가 많이 나오는 편이라는 얘기도 해주셨죠. DIY 문화가 공간과 연관성이 깊은 것 같아요. 어쩌면 한국처럼 공간이 부족한 여건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DIY 문화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청개구리제작소는 다양한 공간을 찾아다니며 리서치하신 경험도 있고 직접 공간을 만들어 운영중이시지요. 정희님도 페어를 여시니까 공간에 관심이 많으실 텐데. 한국에서 DIY를 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공간이 어떤 식으로 형성될 수 있을지. 이 문제와 관련한 제작자들의 노하우가 있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정희  저도 가구이야기로 시작하고 싶네요. 마찬가지로 방이 작아서 가구를 만들려고 목공소를 찾았는데요. 전공이 설치미술이라 만드는 방법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공간이랑, 나무를 살 수 있는 두 가지만 찾아봤어요. 제가 살고 있는 동네 뿐 아니라 서울시에 30분 정도씩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공간은 하나도 없더라고요. 공작소 등에서 여는 정해진 규격으로 만드는 워크샵만 있었을 뿐이지 제가 만들 줄 아는데 가서 쓸 열려있는 공간은 없는 거죠. 저도 찾다 찾다 못찾아서 결국에는 나무단위로 가구를 파는 곳을 찾았어요. 만들고 싶다고 했을 때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것도 큰 문제죠. 행정이 만드는 공간도 개인의 이용을 염두에 뒀다면 이런 걸 극복했겠지만, 30분 동안 도구 등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어도 교외에 있어서 차가 필요하다거나 실질적으로 이용이 불편하다는 문제가 있죠.

저도 늘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페어나 메이크 사업을 하면서 다른 나라에 가보면, 서울이나 일본처럼 한정적인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책상 위, 자기가 쓸 수 있는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정도의 프로젝트만 해요. 더 크게 만들어서 그 사람들의 생활에 어떤 도움이 되느냐 물으면 뭐 그 정도가 딱히 필요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요. 그래서 지금은 책상 정도의 공간 정도이긴 하지만, 과천에 있는 공간, 무한상상실 같은 곳은 공간이나 프로젝트를 훌륭하게 기획하고 실행능력이 있는 분들한테 재료비까지도 지원을 해서 1인용 자동차를 프린트할 수 있는 3D프린트를 만들고 있는 분도 있거든요. 개인적인 필요에서는 지금 정도 사이즈도 괜찮겠지만 더 큰 필요나 프로젝트, 예를 들어 기술발전이나 창업으로까지 연결하면 더 큰 공간이 필요할 것 같고 우리나라 현실 속에서는 협업 이라든지 커뮤니티 중심 공간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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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연  저는 한국에서 자율적인 시공간을 만드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고 느껴요. 삶의 공간만 봐도 존재의 감각을 회복하는 공간이 아니고 기본적인 생존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잖아요. 높은 지대와 임대료에 애를 너무 쓰다 보니까 자기 자신을 위한 시공간은 점점 줄어드는데요. 사람들의 만들기에 대한 욕구를 해결하고 연결시킬 수 있는 공간이라면, 가장 이상적인 것은 풀뿌리 모임에 기반 한 것이겠죠. 개인의 공간에서 실현할 수 없다면 동네나, 마을 만들기 등에서 공공적인 기능을 하는 공간이 생기는 게 맞는데. 실질적으로 그런 지원도 하고 있죠. 마을예술창작소의 모델이나 무한상상소의 모델도 근린시설인 도서관에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 공간이 주변에도 생김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공간과 자연스레 연결이 된다거나 왜 거기에서는 좀 더 급진적이 실험이 일어날 수 못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건 공공지원의 한계인 것 같아요. 앞서 나왔던 성과의 문제. 문화적 시각으로 성과를 측정하는 게 아니라 경제적 효용에 따라서 수라던가 하는 지표로 보는 게. 조금만 하다가 중단하게 만드는 사례가 많은 것 같아요.

여전히 개인의 자율성, 자립에 기반 한 공간은 필요한데 그것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전략을 찾아보자면, 요새 주변에서는 틈새 공간을 많이 찾는 것 같아요. 버려진 옥상을 자신들의 아지트로 만든다거나. 어떤 공간을 자기가 점유해서 쓰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만들기 공간이 필요해서 옥상에서 뭔가 했는데 옥상에 꼭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공간의 인프라가 갖춰질 필요는 없는 거죠. 새로운 동기를 무엇에 부여할 것인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최빛나  그런 공간을 점유해서 쓸 때 가장 많이 맞닥뜨리는 게, 흔히 요즘 얘기하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있죠. 공간고급화라고 번역하시기도 하던데. 문래동도 그렇고, 2,30대 친구들이 들어가서 창조적인 활동을 벌이면 물론 관에서 하는 것들과의 차별성을 갖고 자기 방식으로 하고 싶은 것이 드러날 텐데 그 후에 임대료가 상승하는 문제가 오죠. 창조경제가 가장 잘 작동하는 게 그런 거거든요. (좌중웃음) 저희도 문래동에 2008년부터 들어갔는데, 지금 보면 임대료가 굉장히 많이 올랐어요. 저희가 그런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키는 역할을 하는 거죠. 저희는 원하는 자율적인 활동을 하는 건데 더 이상 창조적인 일을 하면서 임대료를 높이지 않는 방식을 모르겠는 거예요. 다들 어느 정도는 경험하시지 않을까요. 그게 한국에서는 세대 갈등의 방식으로 부모 세대가 자식 세대를 착취하는 방식으로 해석 되기도 하는데  핵심이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 저희도 문래동 공간 계약이 11월에 끝날 텐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겠어요. 이제 창조적이지 않아야 하나? 창조적이면서 임대료를 올리지 않으려면 사람들을 초대하지 말고 안에서 우리끼리 놀아야 하나? 자율적인 공간이라는 게 너무 낙관같이 느껴지는 거예요. 이 테이블의 주제인 “DIY는 자율의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에도 어떤 낭만이 깔려있는 것 같아요. 낭만은 그래도 사람을 살게 해주잖아요. (웃음) 그러면서도 또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생각하지 못하면 안되지만. 굉장히 힙한 문화인 것 같아요, 자율성이란 것은. 저는 그래서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될 지 모르겠어요.
 

  DIY와 온라인 네트워크

백희원  사실 운동이든, 시장이든 어떤 하나의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건 힘든 것 같아요. DIY라는 말 자체가 너 스스로 하라는 거잖아요. 다 각자 스스로 하고 있을 텐데… 듣다보니 제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틈새들에서 창조와 자발성이 일어나는데 이것을 시장 혹은 행정 같은 큰 흐름이 집어서 인용하면서 다른 불편한 틈새를 만들어 줄 테니 여기서 해보면 어떻겠냐고 묻는 그림입니다.

결국 이 씬이 지향하는 게 틈새들의 네트워크일까요? 아니면 광장이나 큰 시장을 해킹하는 것일까요? 혹은 두 개 다 동시에? 다양한 질문들이 생기네요. 이 지점에서 딱 한 가지만 더 얘기해봤으면 좋겠는데, 오프라인만큼 온라인 네트워크도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오프라인에서의 어려움을 온라인이 어느 정도 해소해 주는 것도 같고, DIY와 상관없이 이런 온-오프의 보완적인 상호작용을 저도 생활에서 무척 많이 겪습니다. 오프라인 공간과 온라인 네트워크와의 호응이라는 측면에서 현재 상황은 어떤지요. 뚜렷하게 보이는 게 없다면, 온라인 네트워크에서는 어떤 움직임들이 있는지 정도가 궁금합니다.

정희  요새는 DIY라는 문화에서 Yourself보다 같이하는 문화가 중요해지면서 ‘Do It Together(DIT)’가 되고 있어요. 공유문화가 상당부분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고 있죠. 온라인 기반 문화의 좋은 점은 전세계 동시다발적이라는 점이에요. 드론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온라인 중요 드론 사이트에서 정보가 풀리면 다음 날에서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알게 되고 그 주제라면 갑자기 한국의 어느 카페에서 만나서도 거기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는 점이죠. 온라인이 정보 공유 데이터베이스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인데, 2년 전쯤에 ‘메이커스’란 책으로 유명한 크리스 앤더슨이 한국에 왔을 때 한국의 메이커들을 모아 밥을 먹었어요. 그분은 드론 데이터베이스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그 자리에는 서울대에서 드론에 대해 연구하는 분도 참석해 있었는데요. 일주일 전에 발표된 드론 신기술에 대해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인데 다 같이 영어로 한국어로 얘기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그 자리에서 일체감 같은 걸 느꼈어요.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인데 공통된 주제로 바로 얘기하는 게 가능하다는 걸 느꼈죠.

아직은 오픈을 안 했지만 창조경제 베이스로 4월부터 아두이노의 기초부터 해서 커뮤니티 포럼 사이트까지 쭉 열릴 거예요. 저는 그런 사이트들이 오픈한다고 해도 이 네트워크들은 지금처럼 중구난방으로 진행 될 것 같거든요. 사람들은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에 대해서 더 활성화된 커뮤니티를 갈 거니까요.

지금 한국의 온라인 흐름에 대해서는 뭐 딱히 무슨 사이트가 대표적이라고 지적하기는 힘들 것 같고 페이스북에 있는 ‘한국메이커모임’이라는 그룹에 저희가 말했던 작은 메이커풀 사람들이 모두 등록된 상태에요. 거기서 랜덤하게 질문을 하기도 하고요. 저는 내일 메이커들의 중고부품을 사고파는 마켓을 기획하고 있는데 거기에 행사기획을 올리면 보시겠죠. 이런 행사가 있을 때 비슷한 주제는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보던 분 또 만나고 그게 오프라인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것 같아요.

최빛나  아마 그 커뮤니티를 이루는 동력이 오픈소스인 것 같네요. 오픈소스가 단순히 공개된 설계도 도면이 아니라, 그걸 내가 받아서 다음으로 그 다음으로 발전시키든 개선시키든 하는 그런 태도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에요. 국내에서 그게 활발한지 잘 모르겠어요. 하나의 아이디어에 대해 개선되는 방향으로 활발한지. 그게 개발자들의 방식이기도 하거든요. GitHub 같은 것들을 사용하는 방식이. 제 경우도 제가 모르는 것을 할 때 거의 인터넷에서 봐요. 오픈소스로 공개된 설계도 도면을 이용해서 그대로 이용하기도 하고 다른 방식으로도 하는데 공개한 친구들에게 피드백을 잘 못 주고 있어요. 영어로 다시 피드백을 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게 체화되어 있지 안다는 점을 크게 느끼거든요. 아 나는 오픈소스 소비자야 (웃음) 라고 한탄하기도 하는데. 그런 온라인의 방식들은 앞으로 더 기대를 갖고 보고 있고요.

그리고 다른 측면의 얘긴데 해외를 보면 해커스페이스 메일링 리스트처럼 메일링 리스트들이 굉장히 활발해요. 기술에 대해 토론하거나 전반적인 사회문제와 연결한 것도 있고, 하루에도 수십 번 씩 의견들이 오가는데 한국에는 뉴스레터 말고 메일링 이라는 것을 통해 의견을 교환하는 문화가 많지 않아요. 저희도 시도해보고 싶은데 잘 안 되고. 그렇다고 그 방식이 좋아, 해보고 싶어라는 게 아니라 거기에는 토론 문화의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이 조금씩 변화하면서 한국식의 토론 문화에 맞는 방식이 온라인 토론 문화를 만드는 방식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요.

저희는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커뮤니티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요. 이건 질문과는 조금 다른 문제이지만 그런 메이커 문화, 새로운 제작문화 이런 것들이 전통적인 제조업과 연결되는 데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테크 제조업 포럼이 열리지만 가보면 이미 있었던 한국의 여러 가지 전통 제조업은 다루지 않아요. 무척 아쉽죠. 세운상가만 해도 그 안에 기술이 굉장히 많거든요. 오늘 관련 작업 하시는, 제가 무척 좋아하는 락희럭희구로공단(링크) 분들도 오셨네요. 전통적 제조업에서 연결할 수 있는 부분이 너무 많은데 단절되지 않았으면 해요.

송수연  저도 제작을 할 때 기본적으로 온라인 네트워크 정보를 많이 참고해서 실험해요. 저 자신조차 여전히 소비자의 입장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것들을 한편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청개구리제작소의 경우 했던 저희끼리 한 실험을 오프라인 워크샵으로 만들어서 한편으로 확장시키거든요.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웹사이트에 슬라이드 공유해서 올려요. 직접적으로 오픈소스의 피드백을 주지는 못하지만 나름의 방식을 찾아가고 있고요.

한국만 해도 많은 활동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아두이노 사용할 때 책의 기본적인 예제 말고 하다보면 질문이 생기잖아요. 그런데 그 활동을 하는 커뮤니티에 가면 이미 그 질문이 다 올라와있고. 이런 것들이 앞으로 또 변화를 만들 것 같아요.
 

  플로어 질문

청중1  메이커 문화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 잡지를 만들려고 준비 중인데 그 전에는 사업을 해왔어요. 시장에 대한 관점에서 메이커 문화 자체는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하고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메이커 문화가 잉여럭을 발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때문에 한국에서는 힘든 게, 미국에서는 비교적 자기 시간을 쓸 수 있는 경우가 많지만 여긴 생존 자체가 힘들거든요.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 그 상태로 유지하는 것만도 힘들어서 메이커 문화가 끼어들기 힘들고 잉여력을 발산하는 방법은 리플을 다는 것 정도? 지금 메이커 문화가 정부의 사업과 겹쳐서 붐이 된 거라고 생각하는데 앞으로 그 붐이 지나고 사업의 방향이 바뀌게 되면 어떻게 될지 염려됩니다. 정부는 분위기를 만들지 않습니까. 닭장을 만들고, 사업을 한다고 보여주는데 그럼 그 사업 방향이 바뀐다면 메이커에 대한 관심이 어떻게 될지, 그리고 이 문화가 유지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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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  말씀하신 내용이 메이커 문화의 지속가능성과도 연결이 되지만요, 한국 상황과도 연결돼 있네요. 일단 대부분의 데이터베이스가 온라인에 영어로 되어있기 때문에 그 언어 장벽을 뚫는 사람에게 허락되는 소수의 문화라는 생가도 들거든요. 그 안에서 만들기를 실행하는 사람을 찾으면 규모가 더 작아지는데요. 정부가 예산을 투자해서 틀을 만드는 것을 엄청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는 게, 돈 준다고 쫓아오는데 어쨌거나 긍정적이잖아요. ‘어어 왜 이래’ 싶지만은 않잖아요. 왜 주는지 몰라서 당황스럽긴 하지만. 어쨌거나 이런 문화의 확산을 위해 씨드머니를 투자하는 건 긍정적인 거고. 이 문화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고 자금이 줄 때, 몇몇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 있는 틀에서 얼마나 살아남느냐는 중간에서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가져야 하는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자금난은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문제죠. 지금은 메이커 문화 안에도 세 단계의 집단이 나눠져 있어요. 먼저, ‘제로 투 메이커’ 관심이 있어서 뭔가를 만들기 위해 투 잡 하는 사람. ‘메이커 투 메이커’ 프로젝트를 계속 하지만 목적은 없는 사람. ‘메이커 투 마켓’ 이런 행동을 하다가 돈을 버는 활동으로 연계돼서 사업을 하게 되는 경우. 한국 뿐 아니라 일본 미국도 그렇고 프로젝트를 하다가 창업을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이슈가 되었어요. 이런 문화가 계속되려면 자금을 자발적으로 벌고 지속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이제 메이커 문화가 어느 정도 정착되면 자생력 이슈는 사업과 연계되며 자연스럽게 흘러갈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송수연  개인의 생산을 공유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거로 보거든요. 몇 년 전부터 나온 얘기지만 사람들이 자기계발을 하기 위해 노력을 하잖아요. 그 핵심에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력과 상상력이 작동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굴레를 당분간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고요. 그렇다면 그 굴레에 갇히는 게 아니고 대신 각자의 스타일에 맞게, 공동체를 만든다고 하면 공동체가 어떤 것을 지향하느냐하는 질문과 함께할 수 있을 것 같고.

한국에서는 제작 문화의 토대나 맥락을 이제 막 만들어가는 시점인 것 같아요. 지금 확산되는 분위기가 행정이라는 드라이브로 인해 자극되고 시작되었다면, 지금 흘러가고 있는 에너지를 서로 연결해서 어떻게 공동의 토대를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어떤 역할들을 새롭게 해나간다면 이 또한 각자 안에서, 우리 안에서 지속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빛나  저는 메이커라는 표현보다 제작자, 제작문화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요. 메이커라는 표현이 불편하다기 보다는 제작이라는 것이 너무나 오래된 거잖아요. 인류 역사만큼 오래된 건데. 그것을 제작이라고 불렀을 때 훨씬 폭넓게 아우를 수 있을 것 같아요. 메이커라고 불렀을 때는 최근의 흐름들, 특정한 문화만을 지칭한다고 느껴지고요. 특히 한국에서 그런 경향들을 더 많이 발견하게 돼요. 창신동에 있었던 봉제사는 메이커가 아닌가? 이런 역사에서 풍부한 것을 얻어올 수 있기 때문에 제작이라는 표현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어쨌든 행정의 솔루션이 이 문화를 작동시키는 부분은 꽤 커요. 거기에 대해서 메이커가 한시적인 거다, 어떻게 될 거라는 걸 지금 얘기 할 순 없을 것 같고. 일본에서는 메이커 라는 말을 참 편하게 쓰거든요. 일본어 자체가 영어를 자기 언어에 많이 접속시키기 때문이기도 할 텐데요. 범상한 용어가 될 수도 있고 유통기한이 있는 용어가 될 수도 있는데. 저희는 늘 그것을 좀 더 폭넓게 쓸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는 게 메이커란 표현과 관련해서 하고 싶은 얘기입니다.
 
청중2  저는 대학원에서 메이커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정희 님께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메이커들의 차이가 어떤지 여쭤보고 싶고요. 인터뷰 내용을 보니 우리나라 독자를 기준으로 했을 때, 아이가 하나 있는 아버지가 주 독자층이라고 하셨는데, 그에 비해 실제 메이커페어에 참가하신 분들을 만나 보셨을 때는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정희  메이크 매거진의 주 독자층은 아이가 있는 30대 중반 남성이에요. 매거진만 떼어놓고 보면 남성이 90퍼센트거든요. 구매층은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지만, 평균을 보면 딱 35세이니까 아이들이 5,6살 정도일 거고요. 페어 행사를 하면 가족들이 같이 오기 때문에 그때는 성비가 절반 정도로 맞춰지고요. 아이들한테 납땜하는 것 가르쳐주면서 서로 즐기는 걸 자주 봅니다.

해외. 한국, 일본은 프로젝트 사이즈가 작다고 말씀드렸는데, 미국은 잘 알려져 있으니 아시아쪽을 비교해볼게요. 일본은 오타쿠 문화와 결부돼 있어서 사람들이 더 집요하다고 하는데 프로젝트 수준은 비슷해요. 주제는 드론이나 로봇에 공학에 많이 치우쳐져 있고요. 많이 치우쳐졌다는 것은 수공예나 전통문화는 많이 빠져있고 아두이노나 솔루션 등 공학적인 신기술인데 개인이 만든 프로젝트 위주로 가는 편이에요. 일본 경우는 메이커도 일찍 시작했고 페어 또한 길게 헀기 때문에 기술적 측면에서 시판 직전의 물건이 많이 보이는 편이고요. 규모면에서도 한국의 세 배 정도 페어에 참여해요. 중국에서도 작은 페어를 해오다가 작년에 신천 페어라고 큰 페어를 했었는데 일본에 오타쿠문화가 있다면 중국에는 ‘산자이(山寨)문화’가 있어요. 어떤 것을 주문하면 공장이 가진 네트워크에 의해서 재빠른 솔루션이 나오는 거죠. 중국이 존재감이 커지고 있어요. 신천이 부품생산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10년 전부터 한국에서 하드웨어 하는 사람들은 그쪽에 거의 매년 출장을 가는 상황이었는데요. 페어를 하면서 표면적으로 올라오게 되고요. 신천 페어의 경우에는 가서 프로젝트 의뢰를 하면 당일 날 제품으로까지 나오는 게 가능하다고 들었어요. 사업 베이스 제품에 대한 요구가 바로 충족되는 컨벤션 느낌이 많이 난다고 들었고요. 미국의 경우는 25만명, 30만명 엄청 규모도 크기 때문에 크기도 다양하고, 깊이도 아마추어보다 프로까지 다 있고요. 돌아다니며 느끼는 것은 이 사람들이 만드는 걸 좋아하고 문화적, 사회적으로 만든 결과물이 다르다는 점은 현상적으로 느끼는 것이지만. 저희가 처음 페어를 했을 때 메이크 창간자인 데일 도허티라는 분이 오셨었어요. 워크샵에서 문의시간을 가졌는데 어떤 분이 다른 나라 페어와 서울의 페어는 뭐가 다르냐 물었더니, 나와 있는 프로젝트는 다르겠지만 공유하는 스피릿이 같기 때문에 차이점을 못 느꼈다고 했어요. 저도 현상적인 차이는 느끼지만 어디에 가면 조직하는 사람도 그렇고, 공유되는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최빛나  작년 신천 페어 슬로건이 “Innovate with China” 였죠. 이런 것도 드러내는 게 큰 것 같아요. 일본의 취미가들 중심의 페어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국가 발전전략적인 것을 얘기하면서 이제 디지털 제조업은 중국이 중심이 되겠다는 의지 같은 게 굉장히 많이 느껴진 것 같아요.
 
청중3  저는 맥주라고 하고, 여성주의 콜렉티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청개구리제작소의 갤러리 팩토리 전시 ‘당신의 친구’를 흥미롭게 봤었어요. 무언가를 생산한다는 게 자기 만족적이고 환상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작업과 활동을 분리해서 생각했을 때, 작업보다는 활동의 초점이 훨씬 밖을 향해 있다고 느껴요. DIY가 의미를 갖기 시작하는 것은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어떤 의미들을 만들게 될 때 일 것 같은데요. 그래서 어떤 관계들을 상정하고 시작하는지가 상당히 중요할 것 같습니다. DIY를 둘러싼 관계 맺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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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연  저희는 활동도 같이 하는데요. 저희가 하는 행위들이 밖과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을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관계에 대한 말씀도 하셨는데. 개인적으로는 관계 맺는 데 서툰 것 같아요. 그런 커뮤니티를 만든다는 것 자체도 우리 성격이나 리듬에 맞는 것이냐는 질문을 많이 해요. 그런 건 억지로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스스로의 한계를 알고 있음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도하고 있고요. 지금 하는 얘기가 답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저희 경험을 얘기하자면, 저희가 몇 년 전부터 베틀 만드는 워크샵을 했었어요. 뜨개를 하다가 잘 안 돼서 어느 이상을 못 벗어나니 그를 대체하는 도구를 찾다가 베틀을 알게 되었고 베틀 워크샵을 열 때 우리가 어느 정도 준비하고 사람들을 초대했어요. 거기 온 사람들 역시 그런 것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확장하고 싶어하며 각자가 갖고 있는 기술들을 공유하면서 자리가 풍성해짐을 느꼈고요. 저희는 기본적인 걸 던지기만 했는데 그게 확장되는 게 저희에게도 자극이 되면서 다른 방식으로 시도해보려는 욕구가 생겨나고, 개선되었을 때 또 자리를 만들고 사람을 부르고 이런 식으로 연결되어 가더라고요. 인간적으로 끈끈한 건 아니지만 이런 만남의 방식이 작업과 활동에 좋은 요소가 되는 것 같아요.

요즘 다들 자기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어 하는 욕구들이 있는데 그런 점에 있어서는 만들기의 스펙트럼이 워낙 다양하니까 그런 장을 시작하기에 좋은 매개체가 제작문화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빛나  처음에 한빛미디어에서 메이크 매거진 창간을 할 때 메이커라는 단어에 반대하는 의견이 있었는데, 정희님이 그 때는 ‘메이커’라는 표현을 쓰자고 주장하셨다가 지금은 그 표현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하신 글을 봤어요. 여기에 대해 좀 여쭤보고 싶었어요.

정희  지금은 ‘메이커’라고 하면 아시는 분들이 많지만, 책 작업을 시작했던 2010년 겨울에는 새로운 단어를 찾아야 했죠. 메이크 매거진에 번역 콘텐츠가 많은데 번역 용어를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다가 메이크를 대체할 단어를 찾지 못한 것도 있고. 제작자, DIY라는 기존 문화와 차별되는 점을 고민한 것도 있고요. 빛나 님이 제작이 더 포괄적인 것을 칭한다는 점을 지적하셨는데, 저는 만들기 문화이긴 하지만 기술적인 편리함에 편승해서 시작된 문화를 새로 지칭할 어떤 용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고요. ‘발명가’, ‘DIYer’ 등을 다 포함하고 공유에 대한 새로운 개념까지 포함하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메이커가 영어로는 그냥 ‘만드는 사람’인데 그런 일반적인 용어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고 얘기하거든요. 우리도 같은 측면에서 ‘만드는 사람’ 이렇게 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웃음) 출판사에서는 “사람들이 메이커가 뭔지 모르잖아. 독자들이 모르는 건 쓰면 안 된다”고 반대 했었어요. 그러나 문화에 대한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썼던 거고, 지금 모르겠다고 하는 것은 메이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생기고, 여기저기서 많이 쓰이는데요. 제가 그때 이게 여기저기 퍼지길 바랐던 건지, 기존 문화가 섞이길 바란 건지 잘 모르겠는 거예요. 출판에서는 메이크 창간하면서 처음 쓴 건데 그게 과연 올바른 시작점이었는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쓰는데 그게 너무 커지니까 자신이 없어진 것 같아요.
 
청중4  롤링다이스의 제현주라고 합니다. 답이 있는 질문이 될 것 같진 않지만 제가 고민하고 있는 주제에 대해 의견을 여쭤보고 싶은데요. 이 DIY라는 커다란 흐름이 생겨난 데는 개인들이 가진 욕구와 욕망이 있을 텐데 그 이면에 깔린 것은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는 나름의 가치 지향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욕망이 모습을 드러내면 공공의 돈이든 산업의 돈이든 관심을 보이며 흘러들어 오는데 그 돈이 쓰이는 방식이 돈에는 개인들이 지닌 욕망이 붙어있지 않기 때문에 돈이 쓰이는 방식을 내버려두면 개인의 욕망 이면에 깔린 가치 지향이 자연스럽게 파괴되는 방식으로 쓰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건 제가 협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많이 보게 되는 현상들인 것 같아요.

돈이 들어와야, 그 개인들이 생업으로든 사업으로든 이어갈 수 있을 테니까 돈이 들어오는 건 그 자체로 나쁘지 않다는 견해를 보여주신 것 같은데요. 다만 그 돈이 쓰이는 방식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개인들이 나름의 조직화를 통해 그 돈을 어떻게 가치지향을 덜 파괴시키면서 쓸 수 있게 만들 것인가 하는 고민들이 협동조합 쪽에 분명 있는 것 같고 이 활동을 하시는 분들에게도 이런 고민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돈의 흐름이 활동하는 개인들이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혹은 그런 흐름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희  오늘 토의에서 돈 얘기가 많이 나오긴 했는데 중요한 문제니까(웃음) 제가 볼 때 개인적인 목적성의 파괴가 돈에 목적성에 의해 흐트러질 수 있다는 것은 둘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인데. 지금 들어오는 돈의 위험한 점은 목적성이 너무나 뚜렷하다는 것이겠지요. 주는 사람이 시키는 것을 하는 게 받는 사람의 도리잖아요. 그런 것들이 실제로 자기가 하려는 게 아닌데 주주나 스폰서가 다른 의견이 있으면 협동조합이든 뭐든 돌아가야 하니까 받아들였다가 뭐하는지 모르게 되고 다 망가지게 되는 것 같은데요. 여기에 대한 최상의 솔루션은 조직이나 프로젝트를 운영하시는 분이 자기 목적에 맞는 돈을 버는 것인데요. 그게 힘드니까 그렇다면 들어오는 돈의 목적성을 돌리는 데 노력하면 어떨까 생각해요. 프로젝트를 하고 싶을 때 가장 가까이에 있거나 낌새가 있는 건 창조경제에서 흘러나오는 돈인데, 그렇지 않고 가구를 만들고 싶다거나 할 때 공간이나 자재가 필요한 경우에는 가까운 가구협동조합에 가서 특정한 목적을 밝히고 목재를 받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작은 프로젝트를 하는 게 좋을 것 같고요. 목적을 같이 가진 그룹을 모아서 크게 가는 것도 좋은 방식인 것 같아요. 크게 들어오는 돈에 대해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송수연  청개구리 제작소는 활동을 시작할 때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 활동으로 돈을 벌 생각은 하지 말자고 해요. 각자의 생계는 다른 식으로 해결 하거든요. 활동을 지속하려면 그 부분은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저희 돈 쓰면서 하는 건 부담스러우니까 어디로부터 기금을 받을 것인가 내부 논의가 있었고 거기에 맞게 기금 신청을 했고요. 그 쪽에서도 항상 서류는 통과가 되고 프레젠테이션 하러 가면 너희 활동이 잘 이해가 안 되며 단체도 아니고 개인 모임에 주기 어렵다고 하는데 매번 그 지점을 설득해온 것 같아요. 지금도 설득을 하는 과정에 있어요. 기금을 어떻게 받느냐는 중요한 부분이었어요. DIY 문화가 관계를 새롭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도 있었죠. 저는 이 문화의 역사적 측면을 문화적 시각에서 볼 때 DIY 정신이나 태도라는 게 국가나 기업이 하지 않는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것 같아요. 저항의 문화건, 하위문화건. 물론 시간이 지나면 자본이나 시장에 포섭되기도 하지만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예를 보면 자가출판의 내용이나 주제를 보면 될 것 같아요. 지금은 또 많이 대중화되었지만요.

돈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 막연하게 있는 기금을 활용하면 좋지만 거기에 대한 자기 전략을 찾아가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최빛나  정희님 말씀에 동의하고요. 저희도 그 부분은 고민이 많아요. 공적 기금에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고 저희는 아름다운재단에서 지원을 받고 있어요. 어떤 활동을 하겠다는 것을 뚜렷하게 밝히고 계속 설득을 하는 거죠. 다른 행정 기금들이 어떤 평가지표를 들이대는지 모르지만 아름다운 재단과는 중간 중간 회의를 하는데 그쪽에서 계속 확인하는 것은 시민사회 가치나 공공성에 대한 가치를 질문하거든요. 재밌게 놀다가도 뭔가 척추가 펴지면서 자세를 바르게 하게 되고(웃음) 여러 가지들을 깊이 생각하게 하는 그 시간을 고맙게 생각해요. 저희가 그 기금을 신청한 이유로는, 아름다운 재단은 기부와 배분이라는 것을 중심에 두고 있는데 저희가 받는 것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받는 기금의 1퍼센트를 갖고 조성한 기금이거든요. 저희는 그것에 굉장히 의미를 두었고 계속 그 기금을 받기 위해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던 거죠. 행정적 지원에서 오는 것들은 눈 먼 돈들도 많이 돌아다니게 되고 그렇게 되면 뭔가 망가지는 것도 참 많이 생기는데 또 아는 것도 많이 생기잖아요. 거기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것, 그 다음에 생각할 수 있는 가치들도 발견하게 되고요. 그 가치들에 대해서도 계속 얘기를 하고. 초대를 하고, 오늘 공공그라운드에서도 초대를 해주셨고, 저희도 작은 그룹이지만 그런 가치들을 얘기할 수 있는 분들을 계속 초대하거든요. 크게 짠 하고 컨퍼런스를 여는 게 아니라 도미노처럼 하나를 넘어뜨리면 연쇄적으로 일어날 수 있게 하는 게 저희의 방식인 것 같아요.

저희가 제작문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초각적이고 다른 문화에 비해 실천적인 측면이 강해서에요. 거기서 나오는 어떤 담백함이 참 좋거든요. 그런 것들에 대해서 연쇄적인 작용들을 만들어가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고 있는 게 맞나?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일이에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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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5  아까 전통공예와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왔었는데, 제 생각에는 예전에는 한지 공예나, 그런 것은 가부장적 가족문화를 기반으로 했었는데 요즘에는 청년문화가 가족과 잘 소통하려 하지 않으니까 그게 문화적으로 이분되어 있는 것 같아요. 청년문화를 오타쿠처럼 표현한다거나. 저는 오히려 반대로 전통문화에서 청년들이 불편해하는 것과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DIY 로 문화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처음에는 도제문화가 떠오르면서 잘 이해가 안 됐는데, 얘기를 듣고 오픈소스나 웹기반으로 청년들이 연결될 수 있는 것 같아 흥미로운데요. 이게 운동과 무슨 연관이 있나 했는데 이해가 되더라고요.

질문은, 한지 공예 같은 전통 문화도 오픈소스로 하면 재밌을 거라 생각이 드는데요. 도제문화는 폐쇄적인 문화가 강하니까요. 아시는 게 있으면 말씀 부탁드려요.

정희  공예가 DIY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기존에 장인들이 만드는 폐쇄적인 문화가 지금 하고 있는 DIY 성격과 맞지 않을 수밖에 없는데요. 저도 그렇고 다른 나라 편집자들도 하는 얘기인데 전통 문화도 나라별로 다르고 아름다운 문화들이 있는데 왜 메이커 페어에는 그런 사람들이 없을까. 지난 겨울에도 일본 작업자랑도 얘기하다가 왜 기모노 장인같은 사람들은 여기 안 나오지? 그랬거든요. 자발적으로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페어에 나오는 건데 그분들은 도제도 있고 이미 시스템이 완성되어 있기 때문에 안 나오는 게 아닐까. 또 수공예 경우는 폐쇄적인 문화이기도 하지만 기존에 있는 뜨개질 잡지라든지 매체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있기도 해요. 그런 분들을 찾고 싶다면 그런 분들이 모이는 곳 예를 들어 홍대 플리마켓에 가서 플리마켓 기획자랑 얘기를 해서 작업자들을 덩어리로 들여오는 것이지 그분들 한 분 한분 께 정보 공유 요청을 드릴 수가 없어요. 수공예 커뮤니티와의 조우로 풀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애매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빛나  기존 제조업과의 연결과 관련해서 저기 와 계신 락키럭희구로공단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에게서도 영감을 많이 받는데. 예전 봉제 공장 노동자들과 함께 작업을 하고 계시거든요. 그렇게 하는 게 소통 등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고개를 막 끄덕거리시는데 (웃음) 저도 전통 제조업에 대한 관심을 얘기했지만 쉽지 않아요. 세운상가만 가도 굉장히 답답하거든요. 뭔가 새롭게 해달라고 하면 절대 안 된다고 하시고 하던 대로만 하시겠다고 하니까.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지금의 젊은층 중심 메이커 문화와 그것들을 연결해보는 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에서만 가지고 얘기하는 게 아니고 미국에서 메이커 페어가 작년에 백악관에서 열렸는데 백악관이 메이커 페어를 주최한 것은 혁신 제조업 때문이거든요. 제조업을 자국의 경제 붐으로 다시 만드는 것과 연결돼 있어요. 청와대에서 해야 된다는 게 아니고요. (웃음) 그런 흐름들이 있다는 것이고,..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조업이 제작문화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독일처럼 혁신 제조업이 성공했다고 얘기되는 나라들은 전통적인 제조업과 새로운 제조업이 잘 연결된 경우거든요. 한국에서만 시도를 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전통적인 제조업에 포함된 분들과 디지털 제조업에 계신 분들이 같이 일어나면 충분히 새로운 것을 발견할 가치가 많다고 하고 싶고. 그런 상호통합적인 걸 창조경제는 얘기하지 않잖아요. 저는 늘 그게 답답한 것 같아요. 제조업은 사라져야할 것처럼 얘기하는 부분들이 다르게 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

송수연  저는 다른 이야기 하나를 소개해드리고 싶은데요. 저희는 한참 뜨개에서 베틀로, 니팅기계로 관심이 확산됐었어요. 80년대에 나왔던 니팅기를 구입했었는데요. 동대문에서 중고로 어렵게 찾아서 샀어요. 사면서 판매하시는 분이 80대 초반의 연세셨는데 그분께 어떻게 쓰는지 배웠거든요. 그분은 그 기계가 사양산업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계나 부품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동대문 신발상가 옆에서 조그맣게 운영을 하셨어요. 구입 후에 한참 배우고 나서 하다보면 또 다른 질문이 생기잖아요. 예전에 그 분이 니팅기를 닌텐도 게임기랑 연결해서 패턴을 만들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얼마 전에 찾아갔더니 공간이 없어진 거예요. 마침 명함이 있어서 연락을 드렸더니 그 분이 고인이 되신거죠. 그분도 저희가 만난 훌륭한 장인이었어요. 개인의 역사, 사회, 문화의 역사가 있는 분이었는데 이제 그런 분들이 사라지고 계신 거죠. 우리가 장인이라 부를 수 있는 분들을 다시 한 번 회고해볼 필요가 있다. 그분들 활동을 어떻게 기록해서 구술사든, 기록이든. 그런 문화 기반이 함께 만들어지는 게 중요하지 않나.

최빛나  그 니팅기가 예전 컴퓨터 연산 방식과 굉장히 비슷해요. 컴퓨터 코딩을 전에 했던 방식처럼 천공 구멍을 뚫어서 사용하는 것부터 자동화된 것, 닌텐도에 연결되는 것까지 컴퓨터 연산적인 발전과 굉장히 많이 연결되어 있거든요. 지금 브라더 니팅기를 쓰시는 분이 별로 없을텐데, 그런 분들을 통해서 단순히 과거의 기계를 쓴다는 게 아니라 거기에서 이해할 수 있는 연산적인 것들, 현대적인 컴퓨팅의 요소들을 알아낼 수 있거든요. 저희도 배우고 싶었는데 안타깝습니다. (장내 숙연)
 

  마무리

백희원  실제 시간보다 더 오래 이야기한 기분이 드는 데 제작문화, DIY, 메이커라는 한 무리의 단어들을 가지고 서로 멀리 떨어져있는 것들, 예컨대 마지막의 니팅기 사례가 대표하는 과거의 제조업과 최신의 테크 기반 DIY에 대해, 오프라인의 공간과 온라인의 관계들, 또 창조경제와 사회적 경제라는 상반된 가치 지향의 기획들에 대해 한 곳에서 얘기할 수 있었던 시간 같아요. 다양한 욕망들이 DIY 씬에서 얻어가고자 하는 부분들이 있고 이게 하나로 통합되는 게 아니라 각각의 현상들로 나타나면서 혼란스러운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이 행사의 질문으로 돌아가 자율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어디서 어떻게 나오든 간에 이 안에 앉아계신 분들, 찾아오신 분들 각각이 실천하는 분들이라는 것 아닐까요. 예컨대 내가 원하는 기금을 받기 위해 설득 한다든지, 협업을 해도 내가 흥미로운 사람이랑 한다든지. 협상이든 거부든 지키고 싶은 고집과 추진하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어떤 자율적인 태도가 아닐까, 반드시 백 퍼센트가 아니더라도 나의 자발적 욕망이 없었다면 결코 시작 했을 리 없는 DIY라는 활동은 자율적 감각을 상실하지 않고 일부라도 유지해갈 수 있는 게 하는 장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흐름에서 우리가 스스로 맥락을 만들어 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와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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