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드 테이블 패널 인터뷰 : (3) 최철웅 ‘자유인문캠프’

2014. 3. 14 16:20 ~ 18:50 @흑석동

00 그라운드 교육 라운드 테이블 인터뷰

인터뷰이: 최철웅 (자유인문캠프 기획단 ‘잠수함 토끼’)

인터뷰어: 정아람 (00 그라운드)

한번도 우리의 것이 아니었던 ‘자치’

지난 3월 8일 자캠의 밤을 끝으로 2014 겨울 자유인문캠프(이하 ‘자캠‘)가 막을 내렸습니다. 기획단 ‘잠수함 토끼’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최철웅: 자캠은 잘 끝났구요. 수강생이 많아지면서 정신이 없었어요. 학부생들은 학교 다니고 있고, 휴학한 친구들도 있고. 지금은 학기 중에 진행할 기획들을 계속 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알콜 토크]로 ‘공중 캠프’에서 <밀양전>(박배일,2013)을 상영했고. 4월에는 중앙대 이내창 열사라고 의문사 당한 운동권 선배가 계신데, 이번에 ‘이내창 기념 사업회’에서 이장하면서 추모회를 열어요. 거기 결합해서 ‘국가폭력과 인권’이라는 주제로 공개 강연을 기획하고 있어요. 5월에는 [새내기 교양 학교]를 열고, 학기 중에 내는 [잠망경]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획단 안에서 교육팀, 출판팀 따로 되어 있나요?

최철웅: 꼭 그렇진 않아요. 전체적인 준비는 전부 같이 하고 실무 진행은 나눠서 하는 거죠. [잠망경]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고 [새내기 교양 학교]도 준비하는 팀은 따로 있고. [다큐나이트]도 3월 말에 <울면서 달리기>(오현민, 2012)라는 작품으로 학내 상영회를 준비중이고요. 모든 행사는 중앙대 학생 아니어도 참여 가능해요.

2008년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하고 나서 2년이 지나 ‘자캠’이 탄생했습니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위급했었나요?

최철웅: 학교 구조조정은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어요. 70몇 개 학과가 40몇 개로 줄어든 숫자만 봐도 대단한 거죠. 구조조정이 필요하면 구성원들끼리 합의를 해서 최적화된 안을 도출하면 되는데, 그냥 전부다 학교로부터 일방적으로 하달됐어요. 교수는 물론 학생도 당연히 배제 되고. 특히 인문학과 쪽에 폐과와 통합이 강했어요. 독문과, 불문과 거의 다 통합한다고 해서 실제로 통합이 됐어요. 독문과, 불문과, 러시아어학과를 통틀어 ‘유럽문화학부’로 만들고 일본어, 중국어학과 등 합쳐서 ‘아시아문화학부’를 만들고. 그런데 사실상 그 학과들이 통폐합 할 이유가 없었어요. 독문과는 학내 평가에서도 ‘최우수학과’로 선정되던 과에요. 교수진이 비판적 성향을 갖고 있다 보니 사실상 정치적인 맥락에서 구조조정이 진행된 거죠.

당시에 교지가 재단 비판했다고 회수 당하고요. 구조조정에 대한 모든 반대나 비판이 전부 억압당하고 통제 당했어요. 반대목소리 내면 징계 위협을 한다든지. 학내에선 교수, 총학, 교직원까지 전부 같이 싸우고 있었어요. 독문과, 불문과, 일문과는 교수와 학부모까지 참여해서 천막시위를 수십일 동안 벌이기도 했고. 교수와 학생이 전부 같이 모여 집회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학교가 끝까지 밀어 붙인 거죠.

2010년 4월에 이사회에서 최종 승인이 났는데, 그날 노영수 씨가 크레인 올라갔다가 퇴학당했어요. 한강대교 올라가서 시위 했던 두 학생도 정학 당하고. 그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 진행됐어요. 이사회에서 승인하고, 구조조정에 대한 모든 조건이 형식적으로 갖춰졌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싸울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하고 나서 학내에 싸웠던 주체들이 패배감에 젖었고 상황은 더 안 좋아졌죠. 학교가 퇴학까지 시킬 정도니까 위축되고.

당시 ‘자유예술캠프'(이하 ‘자예캠’)모델이 있었어요. 2009년 ‘한예종 사태’를 계기로 교수들이 자발적으로 사태를 알리고 관심을 모으기 위해 인문학강좌를 열었는데 그걸 모델로 해서 ‘장기적인 싸움이 필요하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런 플랫폼을 갖고 중앙대도 다시 처음부터 기반을 다져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거죠.

 

 

[공공의 학교, 공공의 학문]

인문학적인 기반을 다져야겠다?

최철웅: 단순히 인문학이라기보다는 구조조정 싸움에서 한계로 다가왔던 부분이기도 한데, 학내에서 사실상 대부분의 학생들은 구조조정에 찬성해요. 중앙대 경쟁률이 높아진다는 거죠. 두산에 친화적이기 때문에 두산을 비판하면 굉장히 싫어해요. 당시 싸우면서 더 절망했던 것은 학내 지지를 못 받는다는 점이었어요. ‘일부 교수들, 일부 운동권들이 재단에 반감을 갖고 정책에 태클을 건다. 중앙대는 빨리 ’서연고중성‘(기존 서울대-연대-고대-성균관대-중앙대 순)으로 5위 안에 진입해야 되는데’ 그런 이데올로기가 팽배해 있었던 거예요.

싸우는 입장에서도 경쟁력 강화, 대학 발전 논리를 깨기는 너무 힘들었어요. ‘너희는 학교 발전을 하지 말자는 거냐, 그 전 식물 재단이 있던 암울한 중대로 돌아가자는 거냐, 우리도 빨리 대학 순위를 높여야하지 않겠느냐’ 인문사회과학이랄지 담론이 침식당하면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학생들에게 굉장히 깊이 체화되어 있고 싸우는 사람들도 고립감을 느끼고 본인들도 그런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막연했어요.

‘학문의 전당’, ‘인문학의 비판 정신’ 이런 추상적인 구호만 갖고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그 이상의 담론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거예요. 지난 10년에 걸쳐 이루어진 대학의 신자유주의화의 효과로 보인 거죠. 교양과목에서도 비판적인 학문이나 담론을 접할 기회가 없고, 세미나나 학회도 다 무너졌고. ‘기존의 교수진이나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지금 학생들에게는 전혀 당연하지 않구나. 인문사회 교육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틀을 다시 만들어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학생들로만 이루어진 기획이라 시행착오가 예정되어 있었을 법도 한데 도움을 준 선생님이 계셨나요?

최철웅: 처음에는 같이 고민 했던 중대 교수님을 첫 회 강사로 초빙했어요. 2010년 11월 학기 중이라 바쁘신데도 적은 강사료만 받고 강의를 해주셨어요.

첫 시작이 학기 중이었군요.

최철웅: 강좌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대학교 구조조정의 문제의식을 전파하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학생들이 학교에 있는 학기 중에 했던 거죠.

농성은 실패했지만 운동의 형식은 많을 텐데요, 특별히 강의라는 ‘교육’의 형식을 기획 준비 때부터 ‘아, 이거야!’ 하고 바로 뽑아낸 건가요?

최철웅: 교육, 인문학 강좌 프로그램이라는 안은 처음부터 갖고 있었어요. 그것 말고도 재밌게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해서 영화제라든지 학내 신문을 만들자, 우리가 영화를 찍어보자 등 많았어요. 그때 자유롭게 냈던 아이디어를 지금 하나씩 하고 있어요. [잠망경]의 경우는 처음부터 학내 자치 언론을 만들자는 의견이 있었고. 문화제는 [다큐나이트] 형식으로 하고 있고요.

첫 학기부터 지금까지 커리큘럼을 짜는 데 변화가 있었나요?

최철웅: 일단은 강좌 수가 굉장히 많아졌어요. 처음엔 여섯 개였는데. 1회 때는 당연히 알려진 바 없고 처음 하는 거라서 중앙대 교수님, 강사 위주로 구성했다면 지금은 외부의 연구자, 강사진이 훨씬 많아요. 초반에 비해 예술 관련 강의가 많아졌어요. 의도적으로 했다기보다는 하다 보니 예술 관련 강좌에 대한 수요가 굉장히 높은 거예요. 자캠 수강생의 대략 70프로가 예술계인 것 같고요. 그 정도로 예술, 디자인하는 친구들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더라고요. 처음엔 인문학·사회과학에 중점을 뒀는데 예술하는 친구들을 위한 강의를 고려하고 있어요.

인문학은 어느 분야에든 접합할 수 있는 학문인 것 같아요.

최철웅: 저희가 생각한 인문학도 분과학문, 문학, 철학이기 보다는 인문학적인 관점, 태도, 정신이에요. 사회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정치적인 관점에서 비판하는 그런 것들을 인문학이라는 기표로 표현하고 있는 거죠.

슬로건에서 왜 ‘우리 교육’이 아닌 ‘자기 교육’ 운동인 거죠?

최철웅: ‘자기 교육 운동, 해방의 인문학.’ ‘자기 교육’은 ‘자기계발’에 대항해 쓴 거예요. 우리의 문제의식이나 취지에 제일 맞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인문학이 가진 해방성에 초점을 맞췄어요. 인문학 공부라는 게, 물질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정신적으로 해방시켜주는 계기가 되잖아요.

처음 기획할 때 다른 시민 강좌도 참고 하셨나요?

최철웅: 참고는 하는데 굳이 의식해서 기획하진 않고요. (저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걸 해요. 같은 강의더라도 필요하면 하고, 다른 데서 잘 안 하는 강의나 강사도 우리가 좋으면 부르고.

강좌의 주제와 강사진은 기획단의 관심사에서 비롯되나요, 당대의 문제성을 고려하나요?

최철웅: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짜는 것 같아요.

요새 기획단에서 많이 얘기하는 사회적인 문제는 뭐가 있나요?

최철웅: 전반적으로 관심 있죠. 특히 정치의 문제, 예술을 바라보더라도 정치적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자캠은 교육 플랫폼 기획뿐만 아니라 학내 청소노동자분과도 연대하는 등 활동이 입체적이에요.

최철웅: 저희가 처음부터 계속 고민한 문제의식이 있기 때문에 활동과 병행하고 있어요. 제일 큰 목적은 활동이고 강좌는 그 수단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면서 학내 분위기도 조금 달라지는 게 느껴지나요?

최철웅: 학교에서는 [잠망경]에 민감하게 반응해요. 학생 자치 활동을 관할하는 학생처에서는 수거하려고 하고, 게시물을 붙이려면 학생처의 도장을 받아야 하는데 자캠은 허가를 안 해줘요. ‘자캠이 오면 아무 것도 안 해 줄 거다’고 직원이 말해요. (웃음) 강의실을 빌릴 때도 협조를 받기 어렵구요.

학생들의 반응은 잘 모르겠는데 중대 학생들이 외부 학생들보다 자캠을 잘 몰라요. 그렇지만 몇몇 활동하는 친구들의 네트워크가 자캠을 통해 생성된다는 것,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친구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 것 같아요. 자캠을 통해 일을 많이 배우기도 했고, 네트워크, 기획하는 방식. 그렇게 풀이 유지되면서 그 친구들이 서로 의지하면서 같이 활동하고 있어요.

학내 기구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대학에서 하려고 하는 이유가 뭐죠?

최철웅: 대학 내에서의 학생 운동, 새로운 대학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대학이라는 곳은 이제 20대의 대다수가 거쳐 가는 공간이잖아요. 4년 동안 활동하는 공동체인데, 거기서 얻는 구체적인 경험이 굉장히 중요하죠. 4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다른 어떤 공간에서보다 좋은 경험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공적인 성격을 가진 곳이고요.

대학의 공공성을 계속 확대해나가는 게 현실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활동할 때 사람이 모이고 물적 기반이 있어야 하니 장소가 중요한데 대학이 그런 면에서 학생에겐 굉장히 좋은 공간인 것 같아요. 어차피 수업 때문에 매일 와야 하고요.

기존의 많은 인문학 프로그램이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밖으로 많이 나가는데, 대학이 답답하고 희망이 없다고 보는 건지. 그런데 밖으로 나가도 어려움은 비슷한 거죠. 시장의 압력이 있고요. 저희가 중대에서 하는 이유도 그래요. 학교에서 하면 공간 임대료가 없어요. 많은 강좌를 열 수 있는 데는 그런 현실적인 이유가 커요. 학교 밖에서 하게 된다면 수강료가 훨씬 오르고 강의 들을 수 있는 수강생도 적어질 테고요. 대학 자치를 더 공론화하고 급진화 하는 문제의식은 처음부터 저희 서로가 공유했던 점이에요.

대학 내에 기반을 두고 대학 바깥과 어떤 식으로 네트워킹 하고 있나요?

최철웅: 취지에 공감해서 같이 기획하려는 거라면 서로 ‘신뢰관계’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자발성, 활동을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맥락에서 그런 활동을 통해 한 번씩 만나는 거죠. 신뢰관계가 생기면 어떤 형식의 기획이나 활동하는 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어요. 서로 부담 없는 선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거죠. 추상적인 대의나 목적을 염두에 두면 협력 동력이 오래가기 힘든 것 같아요.

‘지속성’이 중요해요. 이런 활동이 한 번씩은 잘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분위기 타고 홍보 잘하고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 요소 등을 넣는다면요. 근데 하고 나면 지치죠. 단기적인 시야를 가지고 기획한 거라서 후에 같이 할 수 있는 여지도 없고. 네트워킹이라는 게 지속적인 활동을 위한 방편 같은 거예요. 공중캠프의 특성상 내용을 기획할 수는 없으니 공간을 지원하고, 자캠은 내용을 기획해서 같이 꾸려본 거죠.

 

 

[당연한 것들의 상실]

‘자유인문캠프’ 말고 다른 이름은 생각해본 적 없나요? (웃음)

최철웅: 이름이 별론가요? (웃음) 처음 시작할 때 자예캠과 같이 얘기를 했었어요. 자예캠 기획한 심광현 선생님과 지금 대학들이 전부 사실상 인문학 강좌가 취약하고 지형이 무너졌으니까 대학 마다 만들면 좋겠다. 중앙대는 자유인문캠프, 다른 데는 사회캠프 이런 식으로 운동을 확산하려는 구상이 있었어요.

각 대학별로 하나씩 있다면 시민의 입장에서도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몇 배로 생기는 기반이 되었을 것 같아요.

최철웅: 현실적으로 잘 안 되더라고요. 지금 대학생에겐 기획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한 것 같아요. 배운 경험이 없고, 어떤 자원이 있는지도 잘 모르고요. 잘 되면 좋은데 쉽진 않은 것 같아요. 일을 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중요한데 정작 학교에서는 이런 것들을 잘 가르쳐주지 않아요.

학생들과 함께 사회적으로 활동하는 장을 학교 내에서 꾸려보지 못한 입장에서는 자캠처럼 스스로 기획해서 활동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모를 것 같아요.

최철웅: (그런 입장에서는) 해보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고, 가능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겠죠. 기획단과 얘기하면서 느낀 건데, 요즘 학부생들은 ‘롤모델이 필요하지만 롤모델이 없다’는 얘길 많이 해요. 선생이랄지 선배랄지 그런 개인이 없다는 고민을 하더라고요. 제가(98학번) 학부생일 때엔 롤모델이 필요가 없었어요. 그래서 ‘남들과 다르게 살아보겠다는 친구들이 왜 따라갈 모델을 찾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하나의 증상이었던 것 같아요. 계속 얘기를 해보니, 너무나 당연한 것들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거예요.

당연한 것이 이를테면?

최철웅: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길 공적으로 한다는 것, 성적고민 없이 내가 듣고 싶은 과목을 듣는 것. 공부 자체가 목적이어서 해보는 경험. 예전엔 대학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추구할 수 있던 것들이에요. 이게 너무나 당연한 건데 지금은 누구도 경험하지 못하고 있더라고요. 그 조그마한 자유조차도 느껴보지 못하는 거죠.

(학생 자치 활동도) 관심이 있어서 참여하면 항상 실패하고, 생각했던 것과 달라 환멸감만 느낀다든지. 뜻 있는 친구들이 활동하기에는 적합한 틀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기존 운동조직은 문화적으로 안 맞는 부분이 많고. 실패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는 오히려 이상한 취급을 받고. 그래서 성공한 모델을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목적이 있었죠.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도 얼마든지 좋은, 누가 봐도 좋아 보이는 것들을 기획할 수 있다는 것을요.

자캠은 실패한 점이 없었나봐요.

최철웅: 네, 딱히요. 일을 굉장히 잘하는 걸 중시해요. 사소한 걸 하더라도 책임감을 갖고 프로패셔널하게 하는 것.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부터 포스터 하나에도 신경 쓰고, 강좌가 굴러가는 시스템도 학생이 하는 거지만 아마추어적이지 않도록 노력 하고. 기획을 하더라도 최대한 잘될 수 있는 방향으로 하고요. 좋은 마음만 갖고 막연히 시작해서 일은 아무 것도 안 되는 사례가 많아서요. 슬로건 하나도 거의 3개월 동안 고민했어요.

자캠의 일원으로서 20대 청년들에 대한 앞 세대 연구자들의 논의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최철웅: 20대가 사회적 모순이 집약된 문제적인 세대라는 인식을 많은 분들이 해서 그런 담론이 나오는 것 같아요. 사회적 조건에 대한 분석과 별개로 20대 주체성에 대한 분석도 다 필요한 것 같고. 중요한 건 그 당사자인 이십대인 것 같아요. 본인들은 자기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이십대 담론에서 당사자의 자기 분석은 별로 없어요. 아직 이십대들이 자신의 언어를 갖지 못하고 있는 거죠. ‘힘들다’, ‘사회가 우릴 이렇게 만들었잖아.’말고는.

이런 학생들에게 자캠의 교육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최철웅: 어쨌거나 자기 언어를 갖는다는 건 공부를 통해서, 배움의 과정을 통해서 되는 것 같아요. 자신의 언어를 가지려면 인문사회과학적인 지식이 필수죠. 당장의 효과가 나는 건 아니더라도. 인문학공부를 해본 사람들은 다 공감하겠지만, 처음엔 자기 언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가 계속 읽고 쓰다보면 어느 순간 자기 언어를 찾아가는데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거든요. 고등학교 때까지 바보 같은 교육을 받고 자라니까요. (웃음) 자기의 철학이랄지 세계관이랄지 그런 걸 못 배우고 20년 동안 입시교육을 받아오는 건데. 그래서 대학 때 각종 인문사회과학서적을 탐독하고 세미나 하면서 뒤늦게 압축적으로 형성한 쪽이 지난 세대들인 거죠.

그런 경험을 더 이상 대학에서 못하다보니 배울 기회도 전혀 없는 거예요. 직장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뒤늦게 시민 단체 같은 데 한 번씩 가서 해도 쉽게 축적이 되지 않고. 자신의 언어를 갖고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세우려면 굉장히 많은 독서와 문화적 체험이 필요한데 그런 것들이 구조적으로 봉쇄되어 있고 사회에서도 중요하다고 하지 않죠. 주변에서는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하고. 스펙 쌓는 데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고 취업하는 데 오히려 역효과만 날 뿐이라고 하고. 자신의 언어를 갖지 못하고서는 어떤 활동을 하거나 주체적인 삶이 따를 수 없는데. 그런 것들의 필요성을 느끼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한 장으로서 자캠의 강좌가 의미 있는 것 같아요.

단순히 인문학의 ‘위기’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위기’라고 부르면서 그 사태를 더욱 공고화하는 게 아닐까요.

최철웅: 인문학의 위기는 징후인 거고 총체적인 삶의 위기인 거죠. 최소한의 환기성도 정착이 안 되었고, 상식도 개개인에게 내면화되지 않은 상황이에요. 그래서 신자유주의와 같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청년세대까지도 잠식하고 있고요.

자치의 개념이 학생들에게는 희박한 것 같아요.

최철웅: 자치라는 건 쟁취해야 할 대상이에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는 거죠. 역사적으로도 언제나 싸워서 얻었고요. 그런데 싸우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자치 공동체라는 걸 싸울 필요 없는 밖에 나가서 만드는 거예요. 착한 마음을 가지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따로 모여서. 그런 경험을 못해본 사람은 계속 못하고 몇몇, 그런 기회를 잘 찾은 사람은 그런 경험을 조금이나마 해보는 거고. 대학 안에서 싸움을 벌일 필요가 있지 않나. 물론 당장은 어렵겠죠. 조건이나 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크니까. 그렇지만 그런 것들도 싸워야 바뀌는 거지 자동적으로 주어질 수가 없잖아요.

학생이 없고 교육의 소비자만 있는 것 같아요.

최철웅: 소비자마인드, 소비자 주체성이라는 게 무서운 것 같아요. 담론이랄지 지식마저도 소비대상으로 변질시키는 거죠. 인문학 강좌도 예컨대 공정무역커피를 마시듯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간주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자캠 강의를 듣는다는 것도 일상을 차별화하는 대안적인 라이프 스타일로 소모될 수 있고요. 소비자로서의 주체성을 바꿔나가는 계기가 중요해하고 자캠에서도 그런 것들을 확산시키려 해요. 성적 처리 없는 수업을 듣는 게 너무나 당연한 건데 그 당연한 경험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세대잖아요. (웃음) 그게 참 웃기기도 하고 위험한 거죠.

그게 당연한 거였구나. (웃음)

최철웅: 저희가 활동하다보면, 당연한 건데 그렇지 않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학생들이 정말 자치적으로 하는 거냐. 처음에 많이 나온 얘기가 ‘배후가 누구냐.’ 정치 조직이 있겠지, 절대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기획한다고 생각을 못해요. 수강료 저렴한 것도. 기획단들이 활동비 받지 않고 활동한다는 것도. 강의 자료 같은 걸 기획단이 출력해서 나누어준다든지, 녹음해서 강좌 파일을 굳이 웹에 올려둔다든지, 하는 모든 사소한 것들을 곧이곧대로 이해하지 못해요. 힘들긴 하지만 학생들이 많이 듣게 하려는 목적에 부합하려고 하는 건데. 뒷풀이 하는 것도 그렇고, 무료로 공개 강연 여는 것도요. 인문학적 지식을 더 많이 전파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활동이죠.

자신의 활동공간에서 자발적으로 자치활동을 하는 건데 활동비 받는 건 좀 이상한 것 같아요. 몇 명의 기획단이 업으로 삼아서 하려면 수익을 내야하는데 그럼 수익을 위해 일해야 돼요. 자캠이 지속되는 이유는 자기 활동으로 하기 때문에 그래요. 부담감 없이 자발적으로요. 돈을 받고 한다면 활동의 성격이나 태도도 달라질 거예요. 일하는 만큼, 받는 만큼 등가교환 관계처럼요.

선생님들이 뒷풀이에 스스럼없이 참여한다는 게 애틋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뒷풀이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나요?

최철웅: 강사라고 해서 일반적인 대학에서처럼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위계적인 관계로 만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각자 인문학이란 걸 자신의 삶과 사회적 공공성과 연관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인데 서로 자유롭게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한 거죠. 요즘 학생들은 교수나 강사와 스스럼없이 뒷풀이하는 걸 이질적으로 여겨요. 어떻게 보면 뜻이 맞는 ‘동료’인 건데.

실제로는 그렇게 생각하기가 어렵잖아요.

최철웅: 그런 생각을 깨려면 직접 그런 경험을 해보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술자리에서 스스럼없이 어울려 보고. 요즘 젊은 세대들이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도 있지만 기성세대와 소통하는 걸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좋은 말 해주면 대단히 감정이입하고. 동등한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는다는 거죠. 경외와 공포는 사실 거울상인데. 서로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인식이 없기 때문에 그런 관계가 발생해요. 서로를 이질적인 타자로 보는 거예요.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데.

대화하고 싶은 스승을 만난다는 건 드문 경우인데.

최철웅: 기획단을 만든 이유 중 하나가 그거예요. 좋은 선생, 좋은 강의를 경험해보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좋은 경험과 문화적 체험을 해보는 것. 그래서 막연한 시행착오를 경계하는 편이에요. 자기가 하고 있는 게 어떤 의미인지 본인이 잘 알고 있어야 하고 자기 위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하고 있는 목적이 효과를 내고 있는지 냉철한 자기 인식과 성찰이 항상 필요한 것 같아요.

허투루 살지 말아야겠다고 자꾸 돌아보게 되네요. (웃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가기도 하잖아요?

최철웅: 그렇게 하는 방법도 있는데 요즘 세대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달까요? 시행착오를 할 만한 시간이나 에너지가 부족한 것 같아요. 자꾸 실패의 경험이 쌓이면 위축되기도 하고.

실패하면 재기할 수 없다고 보는 건가요?

최철웅: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를 파악하고 있으면 실패를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거죠. 성공했다 하더라도 자만하지 않고요. 왜냐하면 그 성공이 내가 잘해서인지 분위기를 잘 탄 건지 알 수 없는 거니까요. 자기의 중심을 지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상황에 대해서 같이 얘기하면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려 노력하고요. 그렇지 않다면 협업을 할 때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중간에 갈등이 생기기도 하니까요.

저희처럼 소규모로 움직이는 기획단은 내부 구 성원간 갈등이 생기는 게 제일 치명적이에요. 그런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엄밀한 자기 인식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통해 가능한 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실수를 하지 않는 것.

2012년 한 인터뷰에서 자캠이 20년 동안 지속되길 바란다고 하셨는데요, 지속하기 위한 전략을 설정해두고 있나요?

최철웅: 어쨌거나 지속가능한 모델, 형식을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대안적인 하나의 형식, 공간이 있는 거잖아요. 이런 게 주변에 하나 있고 한 번이라도 경험하는 게 인생을 통틀어서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잠깐 했든 평생 해보든. 작은 대안적인 공동체가 중요해지고 있고 대학에서도 그런 것들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 되는 거고요.

대학이야말로 그런 대안적인 공동체의 표상이었는데 그게 무너진 거잖아요. 다시 복원해야 한다고 봐요. 요즘 많은 활동가들이 지치고 힘든 상황인데, 자캠은 지치지 않고 즐겁게 활동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모델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학부생들과 졸업생, 대학원생이 같이 하고 있긴 하지만 그때그때 삶의 리듬이 바뀔 수도 있잖아요. 졸업을 한다든지 취업을 할 수도 있고 생활이 어려워질 수도 있고. 이런 것들을 어떻게 자체적으로 서로 돕고 보완하면서 지속해나갈 수 있을까. 그런 고민들을 조금씩 하고 있죠.

회의 공간도 출자를 해서 근래 잡게 됐어요. 공간 하나 있다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회의할 때 커피숍 같은 데 가지 않아도 되는 거고. 돈을 좀 아낄 수 있는 거죠. 요즘 세대에게는 덜 소비하고 최대한 공동체 안에서 해결하는 방안이 중요한 것 같아요

공간이라는 물리적 기반이 생겨서 기획단 내부에서도 마음가짐이 단단해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2014년 자캠이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최철웅: 기획단들 내부적으로 탄탄해지는 게 항상 큰 목적이에요. 기획단들만 서로 호흡이 잘맞고 탄탄하면 활동하는 자체는 문제가 안 되거든요. 기존에 해온 노하우가 있어서 일 자체는 정말 쉬운데. 서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호흡을 맞춰갈 수 있는, 한두 명이 부담감 느끼고 하는 게 아니라 전부 다 같이 일을 하는 것. 그런 분위기를 계속 만들어가고 유지하고 내부적으로 세미나도 하면서 내공을 쌓는 것. 활동하다보면 자기 자신을 챙기지 못하는 게 너무 많은데 그런 것들을 보완하면서 탄탄하게 기반을 다지는 게 목적이에요.

 

 

최철웅 (자유인문캠프 기획단 ‘잠수함 토끼’)

2008년 6월, 기업체 두산중공업이 중앙대를 인수하고 박용성 회장이 이사장으로 선출되면서 기업의 논리로 학교가 재편되기 시작했다. 2010년, 학과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퇴학, 정학 등의 징계를 받았고 이에 대해 학내에서도 효과적인 대응이 부재했다.

외려 학내 자치 회복이 불가할 것이라는 회의적인 분위기가 일자 같은 대학 대학원생인 최철웅은 이 사태를 ‘인문학의 담론 투쟁이 실패’한 현장으로 읽고, 트위터로 동료를 모집한다.

비평적 담론으로 저항의 기초를 닦고 네트워크를 구축하고자 ‘자기 계발’에 맞선

의미인 ‘자기 교육’의 슬로건을 중심으로 내걸며 ‘ 자유인문캠프’를 기획한다. <자기 교육, 해방의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2010년 가을 첫 학기를 시작했다.

* 자유인문캠프·잠수함 토끼 cafe.naver.com/univfree/2097

* <잠망경> magazine.freecam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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