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일’ 라운드테이블2 “협업-겸업의 기술 – KNOW-HOW” 녹취록 1/2

CHAPTER 2. 일 : 라운드테이블2 “협업-겸업의 기술 – KNOW-HOW”

일시    2015년 3월 21일 토요일
장소    오피스커피
패널    안연정(문화로놀이짱), 제현주(롤링다이스), 한광현(오늘공작소), 한주연(DEMA studio)
사회    한주연
사진    전소영

 

한주연  안녕하세요. 두 번째 라운드테이블은 “협업-겸업의 기술: KNOW-HOW”입니다. 협업을 하고 있는 패널들과 함께 대화하면서 협업에 대한 다른 상상을 가져보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입니다. 앞 테이블과 같이 90분 간 이야기하고 30분은 질문 받는 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저는 DEMA studio라는 다학제 협업 학회에서 학부생으로서 협업에 참여해 활동했던 경험이 있고, 이번 공공그라운드 2015 기획단으로 참여를 했습니다. 이 라운드테이블의 기획자이자 패널이자 사회자인데요.(웃음) 그래서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 가는 자리였으면 좋겠습니다. 옆에 계신 다른 패널 분들은 각각 롤링다이스, 문화로놀이짱, 오늘 공작소의 대표로 나와주셨습니다. 일단 각 패널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할게요. 저는 아까 말씀드렸던 DEMA studio라는 대학생 다학제 협업 학회에서 활동을 했었고, 본 테이블 관련해 사전 인터뷰를 했습니다. DEMA studio는 Design디자인/Engineering공학/Management경영학/Anthropology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모인 대학생들이 디자인 프로젝트를 하는 집단입니다.

제현주  안녕하세요. 저는 협동조합 롤링다이스의 대표 제현주입니다. 저희는 스스로 ‘지식 나눔 협동조합’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3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는 협업 조직입니다. 일단 전자책 출판을 기본적인 사업으로 가지고 가고 있고, 사회적 경제 분야에서 필요한 컨설팅 사업도 함께 추진하고 있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안연정  안녕하세요 저는 문화로놀이짱(이하 놀이짱)에서 일하고 있는 안연정이라고 합니다. 놀이짱은 제작소라고 할 수 있는데, 주로 재활용 가능한 목재들을 다루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소개하기에는 글쎄, 몸노동을 하는 조직인지… 사실 요즘 스스로도 많이 헷갈릴 정도로 피곤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요. 어쨌든 오늘은 놀이짱이 어떻게 시작 되었는지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같이 이야기 해보면 좋을 것 같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

한광현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공작소의 한광현이라고 합니다. 오늘공작소는 사람들이 처음 들으면 “뭘 만드는 곳이냐”고 묻는데요. 영어로 말하면 ‘today maker’라고 하고, 2012년부터 시작했습니다. 청년들이 20대 당사자 문제로 ‘오늘’에 대한 각종 현안들을 인문학과 기술 자료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보고, 직접 몸을 써서 그것들을 실현해보는 것을 중심 활동으로 하고 있습니다. 가장 모태가 되는 것은 녹색당이고요. 녹색당적 정치 이념과 가치를 현실에서 실제로 구현하는 것에 대한 다양한 실험들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40년 동안 방치됐던 집들을 계약해서 그 중 두 채를 저희 손으로 공사를 끝내고 두 명의 청년들이 입주해 6개월째 살고 있습니다. 이번에 시즌2로 다른 청년들이 들어와서 6개월 프로젝트를 시작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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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연  드디어 서로 다른 네 패널이 한 자리에 모였는데요. 사실 사전에 각 팀에 대해 알아보면서 협업하는 방식 혹은 협업의소재는 각각 다르지만, 이러한 협업 활동들이 향하고 있는 지향점은 비슷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각 팀이 어떻게 시작했는지를 먼저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렇게 함께 모여서 무언가를 같이 하게 된 이유 같은 것들에 대해서요. 그 시작점이 사실 지금까지 어떤 활동하는지와 이어지기도 하고, 또 ‘모였다’는 것 자체가 협업의 전제 조건이잖아요. 그래서 그 모인 계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협업의 시작: 어떻게 모이게 되었을까

한주연  DEMA studio는 디자인, 혁신이 한창 뜨던 2006-7년도에 디자인 경영 학회로 시작했어요. 경영학과와, 공대 학생들 위주로 모여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런 초기의 성격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협업 자체를 같이 해나가면서 어떻게 협업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배워나가는 활동 위주로 바뀌었고, 그래서 이름도 디자인 경영학회가 아닌 다학제 협업학회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학부생들이 무언가를 공부(디자인 경영)하는 데 있어서 혼자 할 수 없으니까 같이 하기 위해 모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액션에 치중하면서 지금처럼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나가는 그룹이 되었습니다. 가장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은 것은 뭔가 다같이 협업을 하면서 대화를 해나가자는 욕구가 있었던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점인 것 같네요.

제현주  롤링다이스는 어떻게 보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측면이 있는데요. 처음에 우리가 모였을 때, 협업을 해서 조직을 만들어야겠다는 의도는 전혀 없었어요. 처음 롤링다이스라는 이름도 없이 시작했던 때를 말씀드리면, 한 출판사의 철학 세미나, 그러니까 일종의 독자 마케팅 일환으로 열렸던 철학 세미나가 계기였어요. 거기서 사람들이 모여서 철학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출판사에서 진행했던 세미나 정식 코스 세 달이 끝나고 나서 출판사와의 연결 고리는 정리가 되었는데요. 그런데 그 석 달 동안 생겨난 에너지와 화학 작용이 구성원들에게 굉장히 좋았던 거에요. 그래서 이렇게 흩어지기 아쉬우니 우리끼리 모여서 공부를 계속 해보자는 이야기를 했고 그 모임을 2년 정도 이어갔습니다.

철학 공부와 관련된 분야를 지나고 정치경제학 공부를 지나 협동조합과 노동, 일을 조직하는 대안적인 방식들에 대한 책들까지 읽게 된 거죠. 그렇게 책을 읽는 과정에서 ‘우리도 이런 걸 실험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어요. 사실 공부는 할 만큼 했기 때문에 공부의 동력이 떨어져서 뭔가 아웃풋이 나오는 실질적인 일을 해보자는 욕구도 있었고요. 그래서 ‘이제까지 함께 책에서 읽었던 실험을 우리 버전에 맞게 실현 해보자’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당시 저희가 함께 읽고 있었던 책이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라는 책이기도 했고, 당시 협동조합 기본법 시행을 앞두고 협동조합 붐이 불고 있던 시기였어요. 협동조합의 원칙이나 윤리적 코드가 우리 생각과 잘 맞았고. 그래서 협동조합으로 일을 꾸려가 보자고 해서 시작된 곳입니다. 롤링다이스에서 만들고자 했던 첫 번째 아웃풋이 전자책을 만드는 것이고, 지금도 저희에게 중요한 사업이지만, 그게 단순히 ‘전자책’에서 그치기보다는, 우리가 원하는 방식의 일의 모델을 만들어보자는 게 훨씬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모델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가장 적은 자본으로 어떤 사업을 할 것인가를 찾았고, 거기 모인 사람들이 우연찮게도 전자책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던 거죠. 자본 투여가 적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큰 압박감 없이 시작 할 수 있었습니다. 롤링다이스만의 독특한 지점이 무엇이냐고 하면, 시작하던 당시 구성원 대부분에게 직업이 있었어요. 우리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일자리의 모델을 만들어보자는 것이 본업이 될 때 과연 우리가 자유로운 마음으로 실험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두려움이 가장 컸습니다. 때문에 제가 제안했던 방식은 모두들 지금 하고 있던 대로 돈을 벌고 남은 시간들을 모아서 롤링다이스를 한 번 굴려보자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출발할 당시 인원이 8명이었는데, 8명의 자투리 시간을 다 모으면 2명 치는 될 테니 그 2명 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계속해서 저희의 지향들이나 생각, 활동이 바뀌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움직여왔습니다.

안연정  ‘놀이짱’이라는 이름을 꽤 오래 사용했어요. 시작은 2004년으로, 홍대 앞에서 문화예술 일을 하던 프로젝트 팀 이름이 문화로놀이짱이었어요. 그 팀들이 당시 부흥기였던 홍대 앞의 자원, 홍대 앞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공간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10대와 연결하는 일로 시작했습니다. 시작의 시즌을 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가장 지금과 비슷한 모델로 연결되었던 일은 ‘공공마켓’이라는 시장을 만들었던 것으로 사실상 지금의 놀이짱 모델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 ‘노네임노샵’이라는 디자인그룹, ‘민들레사랑방’이라는 대안학교, 그리고 ‘문화로놀이짱’ 세 팀이 협업으로 홍대 앞에 있는 자투리 공간 하나를 주말마다 사실상 점유하여 그 공간에서 마켓을 열었던 것을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당시 마켓을 연 이유는 홍대 앞에서 다양한 활동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향유자 혹은 소비자의 포지션으로 접속하고 또 다시 나오는 방식 이상으로는 실제 생활과의 연결 고리는 잘 생기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홍대 앞에서 놀 때는 좋은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소속감이 느껴지지 않았고요. 저 같은 경우는 당시 20대였으니까 홍대 앞에 있을 때는 저렇게 살 수도 있겠다 싶고 소박한 삶이나 다른 대안적 삶이 상상이 되기도 하는데, 다시 내 생활로 돌아오면 얼마 만큼의 경제력을 지니지 않으면 불안하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막막하고, 이런 두 가지 감정들이 지속적으로 교차됐었거든요. 그래서 시장을 통해 하고 싶었던 것은 다양한 삶의 방식들을 보여주는 것. 꼭 어떤 직업으로 호명되거나 스타 디자이너, 예술가가 되지 않아도 자신만의 표현력을 높이고, 또 자신의 지속적인 활동을 만들어갈 수 있는 지지기반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을 했습니다. 

  일-삶-공동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협업하는 사람들

시장을 만들면서 더 많은 개인들이 이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가장 중심이 되는 공적 자원으로 만들었던 게 재료들의 창고와 도구들을 모아 놓은 공방 모델이었어요. 이 공간이 시장 안에 펼쳐져 있었고요. 사실 지금은 시장들이 굉장히 많이 늘어났죠. 시민 시장 형태 등의 다양한 시장들이 이렇게 많이 늘어나기 전 3년 간 진행 된 2006년의 ‘공공마켓’은 요즘도 많이 보이는, 직접 열매를 채집해서 술을 담가 오는 친구도 있었고, 작업자들은 다른 데서 전시하고 남은 물건이나 작품들을 보여주기도 했고요. 저희 같은 경우는 워크샵을 많이 했었으니까 남은 도구들을 나눠주고 시민들이 쓸 수 있게 한다거나 이런 방식을 통해 여러 가지 일의 방식을 생각할 수 있게 해보고 싶었어요. 이러한 일의 방식이 생성됐을 때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으로 찾았던 것은, 결국은 삶의 규모를 줄이는 것이었어요. 이 활동으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변변한 일거리로 만드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자기 주도성을 가지고 쫄지 않고 살수 있는 방법들, 여러 다양한 삶의 방식들이 인정받을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겠다는 데에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요.

예상하시겠지만 매주 시장을 열어 진행한다는 게 사람을 매우 지치게 하거든요. 모든 재료와 도구들을 각자 가지고 나와서 매번 공유하는 게 힘들었어요. 처음에는 하고 싶은 일들로 각각의 가게를 열기 시작했던 시장이 어느 순간 시장 하나를 운영하는 것으로 집중되니 개인성이 자꾸 사라지기 시작해서 일단 시장을 멈추기로 했어요. 그렇게 각자 자기 지역에서 활동을 다시 꾸리기로 했죠. 그래서 놀이짱은 홍대에 남고 노네임노샵은 문래동으로 이사를 하고, 이렇게 자기 활동을 좀 하기 시작하는 게 시즌2로 넘어가는 기점이에요. 놀이짱과 함께 홍대에 남은 저는 작업자가 아닌 기획자로서 어떤 활동들을 기획하는 일들을 하다가, 저도 거기 모였던 공공자원들을 가지고 제 자신의 생활에 필요한 문제들을 직접 해결하는 방식의, 일정 부분에서는 생산자로 전환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이런 활동들이 조금은 다른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지지기반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의 형태를 갖출 수 있도록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지금의 놀이짱을 만들게 되었죠. 처음에는 돈이 없기도 했고 새로 만들어진 것보단 옛날 재료들이 좋기도 했고, 홍대 앞 변화의 시점과 맞물려 버려진 재료들이 너무 많이 나오기도 했기 때문에 일단 그런 수많은 재료들을 모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서 도구들을 공유하면서 스스로가 생산자로 전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조직이고, 지금은 사회적 기업이라는 타이틀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광현  저희 오늘공작소의 시작은 매우 사적입니다. 녹색당의 김종삼 선생님이 <녹색평론>이라는 잡지를 발행하고 계신데요. <녹색평론>을 같이 읽고 학습하는 모임이 가장 주요 활동이었고, 영등포 하자센터 출신들도 모여 함께 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저희가 만나서 학습만 해봤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들에 개개인들이 도달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 하면서 다양한 제안서도 내보고 연구모임도 해봤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더라구요. 결국 공식적으로 어떤 사무실을 구하고 공간을 만들어서 우리가 직접 상상했던 것, 그리고 글로써 공유하려던 것을 눈으로 한 번 보여주자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20대가 협업-겸업의 삶을 꿈꾸기 위해 중요한 것은 ‘지역’

우리가 꿈꾸고 있는 미래가 어떤 지역, 어떤 나라에서는 오늘의 현실인 곳이 너무나 많거든요. 그들의 현실을 우리가 지금 누리지 못하란 법은 없지 않는가 라는 의문에서 직접 만들어보기로 하며 시작했습니다. 저희 공간은 마포구 망원동에 커먼 스페이스(공공 공간)로 만들어져 있는데요. 후회 반 만족 반입니다. 후회되는 부분은 첫 번째로 경제적인 부분이죠. 저희 같은 경우는 각자 버는 수입에 따라 각출하고 있거든요. 저 같은 경우 오늘공작소 일을 통해 지금까지 얻은 전체 수익은 거의 제로라고 보시면 되요. 아까 시작하실 때 협업과 겸업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희는 필수적으로 겸업을 할 수박에 없어요.(웃음) 같이 일을 하는 형태는 협업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개별 인자들은 다 겸업을 하고 있어요. 저 같은 경우는 테크니컬 라이터 생활을 되게 오래 했는데요. 지금도 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역시 문서 번역입니다. 지금 오늘공작소 활동을 통해서는 수입이 제로이고 저뿐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사실상 그렇습니다.

결과적으로 말씀드리면 저와 같은 40대들은 겸업을 해도 사실 큰 문제가 없어요. 좀 전에 안연정 대표가 말씀하셨다시피, 삶의 규모를 조금만 다운 사이징해도 지금까지 벌던 방식을 유지하는 데 그렇게 큰 무리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문제는 같이 활동 멤버들이 20대가 대부분이거든요. 20대가 문제인 거죠. 방법이 없어요.(웃음) 그래서 작년 말부터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어떤 대안을 찾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즉, 저희가 그 동안 기술을 공유하거나 지역의 가치를 앞세우던 것의 비중을 좀 낮추고, 이제는 오늘공작소 안의 개별인자들이 자신의 삶을 구체화시키는 방식들을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저희가 작년에 집 세 채를 다시 만들어서 공유하고 있는데요. 두 채는 보증금 300에 월세 10만원이고, 한 채는 보증금 100에 월세 8만원이에요. 듣기만 하실 땐 어떤 거지굴일까 하시겠지만(웃음) 생각보다 훨씬 괜찮아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사는 ‘방식’에만 집중했다면, 이제 그렇다면 우리가 그 동안 추구해 왔던 가치 이행 방식과 돈을 버는 방식이 굳이 달라야 할까? 라는 질문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올 해는 다섯 채를 더 계약을 해서 게스트하우스로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에게는 기술이 있거든요. 물론 놀이짱에 비하면 새발의 피겠지만.(웃음) 작년에 두 채를 다시 만들면서 저희 안에서 집을 짓는 기술 정도는 만들어진 거에요. 저희 손으로 집을 짓고, 그 안에서 먹고 살기 위해 필요한 요리 같은 활동에도 자신이 생겼고요. 그래서 게스트하우스 활동을 하면 우리의 미션과 돈을 버는 방식이 달라지지 않아도 될 거라는 확신이 생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사실 오늘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자리에서 보니까 여기 계신 분들 대부분 20대 근방이신 것 같은데요. 한국이 겸업과 협업을 통해 삶을 유지하기에는 매우 척박한 시스템이거든요. 엊그제 신문을 보니까 청년실업률이 11%라고 하더라구요. 근데 그건 굉장히 보수적으로 잡아서 11%고, 현실적으로 예상하는 것은 40%정도라고 생각을 한다고 해요. 그런데 지금 스페인 같은 경우도 청년 실업률이 80%에 육박하거든요. 단순히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전세계적으로 부는 IT 위주 기업들에서 생산되는데, 아시다시피 IT는 많은 사람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거든요.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이건 곧 현실로 다가오는 문제가 될 텐데, 이렇게 예상되는 미래에 대해 오늘을 좀 더 굳건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지역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서울에는 사실상 지역이 없지요. 서울에서 작년에 ‘마을을 만들자’ 등의 슬로건을 걸었는데요. 보세요, 주변에 마을은 없어요.(웃음) 현실과 이상이 굉장히 많은 격차를 두고서, 동시의 각자의 쇼를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그냥 이제는 외부의 풍경들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고 우리가 오늘 우리 시간을 들여서 나갈 수 있는 그 거리만큼만 생각하자는 게 지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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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연  현재 처해있는 부정적인 상황들에 대해 공유해주셨는데요. 하지만 ‘우리’라는 말들을 계속 하고 계시고 있기도 해요. 오늘공작소 내부에서의 ‘우리’가 있고, 각자 팀 내부에서 또 ‘우리’가 있고, 그 안에서 협업을 해나가면서 어쨌든 그 부정적인 상황을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들으면서 느낀 건 어떻게 보면 세 팀의 지향점이 분명해 보이기도 하고, 각 팀이 가지고 있는 ‘일과 삶, 공동체’라는 세가지 요소들을 어떻게 조화롭게 가져갈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들을 이야기 하면서 모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처음에 협업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한 답변에서 안연정 대표님이 말씀해주신 놀이짱의 경우에 시장 기획에서 시작해서 시즌 2로 넘어가서는 각자가 원하는 욕구와 필요에 의해 분화가 되는 모습들을 통해 사람들이 모이고 헤어지고 다시 구성되는 데에는 어떤 키워드나 관심사 주제가 있고, 그 공유된 접점을 통해서 사람들이 만나게 되는 지점도 있는 것 같고요.

 

  협업의 바탕들: 공간, 그리고 의사결정방식

한주연  이제 좀 더 협업 하는 방식을 들여다보면서 각 팀에서 어떤 ‘바탕’을 가지고 협업하고 있는지, 즉 협업을 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기본 태도라든지 어떤 세팅 같은 게 있는지, 혹은 아까 공간 이야기가 나온 것처럼 물적 조건이 될 수도 있고요. 그 외에도 방금 이야기한 문화적 조건, 공유된 관심사나 교육/학습 같은 것들이 협업에 어떤 바탕이 되어 작용하는지 궁금합니다. 함께 해나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을 무엇으로 가지고 계신지에 대한 이야기가 되겠네요.

한광현  저희는 협업의 바탕으로서 첫 번째로 고민한 건 공간이었어요. 현재는 마포구 망원동에 실평수 37평 되는 공간을 가지고 있고, 재작년 11월부터 160만원씩 월세를 납부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공간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더라고요. 함께 언제나 같이 있을 수 있는, 또 누군가를 초대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곳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해서 처음부터 공간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제 1원칙이었어요. 예를 들어 ‘작은 공간을 하자’는 생각도 안 했고, 어디를 빌려서 할 생각도 없었어요. 그리고 그 공간에 굉장히 많은 성격을 포함시켰어요. 부엌도 크게 만들고 잠잘 수 있는 곳도 만들고 각자의 책들을 모아 서재도 만들고요. 그래서 그 공간 하나에서 웬만한 생활 정도는 가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오늘공작소: 공부하고 제작하기, 공유하고 평가하기

아까 협업의 방식에 대해 말했는데, 저희가 가진 하나의 슬로건을 소개하자면, 인문학적 바탕이 없는 기술은 너무나 초라해지고 기술이 바탕이 되지 않는 인문학은 너무 허무한 일이다에요. 대략 3:7정도로 생각하시면 되는데, 3 정도는 인문학 선생님들을 초빙하거나 책을 정해 읽으며 여전히 학습을 하고 있고, 7 정도는 계속해서 생산을 하고 있습니다. 아까 말씀 드린 집 만들기와 자전거 만들기가 그런 건데요. 일반적인 자전거가 아니라 카고바이크(cargo bike)라는 조금 다른 형태의 자전거를 만들고 있어요.

카고바이크는 마을 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다 내린 해결책이에요. ‘마을에서 가장 먼저 없어져야 할 것이 뭘까?’라는 질문을 했을 때 그 답이 자동차였거든요. 동네에 가 보시면 저녁에 자동차들이 빼곡히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에요. 그 자리가 사실은 사람들의 땅이어야 하는 거거든요. 우리가 ‘왜 마을에서 서로 이웃들을 만날 수가 없을까’, ‘서울엔 이웃이 없어’라고 말하는 제일 큰 원인이 사실은 자동차라고 생각해요. 지난 번에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라는 책을 쓴 교수님이 서울에 인도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딱 하나 뿐인데 그게 가로수길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왜냐면 가로수길은 단속을 심하게 하거든요. 가로수길에서는 갓길에 차를 세울 수가 없어요. 그리고 인도가 넓죠. 사람들이 두 명씩, 네 명씩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즉 여러 명이 그 길을 공유하면서 걸어 갈 수 있다는 거죠. 그런 곳이 서울에 단 한 곳 밖에 없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그런가 생각을 해봤는데, 저희 동네만 해도 인도가 있기는 하지만 길 중간중간에 계속 차와 같은 장애물이 있어서 사람 두 명도 제대로 걸어갈 수 없어요. 그런 상태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거지요. 그렇다면 방법은 자전거다, 해서 이 카고바이크 생산에 집중을 하고 있는 거에요.

사실은 이것을 만드는 과정 중에서 사람들 간에 갈등이 있어요. 일을 해야 하는데 어떤 사람은 솔직히 말해 자전거에 별로 관심이 없는 거에요. 다른 걸 하고 싶은 거죠. 그럼 저희끼리 우선순위를 정해서 계속 회의를 해요. 그렇게 회의를 하고 나서 얻어진 결론에 대해서는 저희가 정해 둔 프로젝트 기간인 6개월 정도를 아무 불만 없이 하고, 6개월 뒤에 그 결과에 대해서 까죠.(웃음) 냉정하게 돌아봐요. 그 제안을 했던 사람은 전체 구성원에게 성과보고를 해야 하고, 그후 다 함께 그 성과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를 하면서 이것이 다음에 이어져야 할지, 말아야 할 지를 결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100% 찬성에 동의한 협업은 아니지만, 일정한 형태의 회의를 거쳐 결정하는 방식으로 협업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8명, 많게는 12명 정도가 모이게 되면 공통된 의견을 가진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더라고요. 그래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속에서 선택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선택의 이유를 같이 공유하는 과정이 협업을 하기 전에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주연  그러면 그 회의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본인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자유롭게 가져와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동시에 성과와 계획 역시 명확하게 가져와야 제안을 할 수 있다는 거죠?

한광현  그렇죠. 그런데 그 제안하는 이가 한 명의 개인일 수도 있고 어떨 땐 세 명 정도 뭉쳐서 같이 하나의 안을 낼 때도 있고, 여러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그게 불쑥 회의에서 갑자기 처음으로 공유되는 게 아니라 아까 말씀 드렸던 학습 과정 중에서 먼저 이야기가 공유된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카고바이크 같은 경우 저희가 덴마크 코펜하겐 사례를 같이 학습하다가 얻은 결론이 우리에게 자전거가 필요하다는 것이었고, 다른 형태의 자전거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학습을 통해서 사실상 미리 이야기의 터전을 닦았던 상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의 과정에서 이 사람이 자전거가 필요하다고 말할 때, 그 자리에서 매우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는 않아요.

 

  문화로놀이짱: 척박한 환경을 일구기 위한 몸노동 – 삶의 방식에 대한 질문들을 동력으로

안연정  저희들의 협업은 기본적으로 ‘몸노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먼저 2009년에 놀이짱은 지금의 창고와 공방 시스템을 갖추는 형태로 바뀌었어요. 그래서 초반에는 재활용 목재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가지는 노동 강도, 그리고 그 확보를 위해 뻘짓과 삽질을 어마어마하게 해야 된다는 상황이 있었어요. 그래서 총 8명이 어쩔 수 없이 협력을 해야만 하는 조건이었죠. 당시 ‘서교예술실험센터’ 옥상에 공방을 만들어 시작해서 8개월 정도를 지냈어요. 저희에게 첫 번째로 들어온 의뢰 작업을 위해 트럭을 한 대 사서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목재를 수거했어요. 그때는 돌아다니는 것, 수거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는데요. 상상만 하다가 실제로 구현하는 일을 하게 되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수거한 폐목재들을 해체해서 옥상까지 올리는 일이 장난이 아닌 거죠.(웃음) 지금 이 공간 건너편에 서강초등학교가 있는데요. 서강초등학교에서 전교실에 있는 나무 사물함을 주신다는 게 저희의 첫 번째 수거 의뢰였어요. 처음에는 좋다고 갔는데 1톤 트럭으로 6번 옮겨야 하는 분량이었고 그걸 옥상에 올려야 하는 상황이었던 거죠. 그래서 문래동 금천예술공장 친구들을 불러서 그들과 같이 옮겼는데, 너무 정나미가 떨어질 정도로 많은 양들이었어요.

그 후에도 한 8개월의 시간 동안 매번 (예를 들어) 장롱 하나를 수거하면 길에서 해체하고, 그 다음 그것들을 옥상에 올리고 하는 노동을 수반했어요. 그런데 그 몸노동들이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고, 저 자신에게도 이전에 없었던 감각이 생기게 했죠. 옥상 같은 경우는 특히나 지붕이 없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나무를 보관하거나 공구를 보관하거나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거나 하는, 요즘 열심히 보고 있는 <삼시세끼>처럼 자급자족 식의 몸노동들이 계속되었어요.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아무튼 어느 하나 우리 손으로 하지 않으면 구성될 수 있는 게 없었던 것? 이런 과정들이 초기의 우리의 협업을 단단하게 했어요.

그 후 아주 짧게 거기에서의 생활을 마감하고, 좀 더 안정적으로 지속하면서 있을 활동의 지대를 찾기 시작했어요. 2010년에 한 4개월 동안은 맨날 옥상으로 올리는 일을 하면서 마포에 있는 시유지와 부유지 중에 유휴공간을 찾아 다니는 활동을 계속 했어요. 그 당시에는 다마스 한 대에 대여섯 명이 꽉꽉 타고 다니면서 “이 땅이 뭐지?” 확인해 보면 구청 소유라더라, 시 소유라더라 하더라고요. 알아보려고 구에 연락해서 이 땅 쓸 수 있냐고 물어보고… 그렇게 복부인 놀이를 한참 하고 돌아다니면서 지대에 대한 꿈을 키운 시간도 큰 동력이었어요. 동시에 한계를 명확하게 느낀 것도 있었고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한계를 느낄 때 오히려 투지가 생기는 편이에요. 그 투지를 가지고 ‘여기서 빈틈을 찾아야 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또 다른 상상을 하고. 그 한계가 너무 명확할 때는 아예 다른 지대를 만들 수 있겠다는 얼토당토 않은 꿈을 꿀 수도 있잖아요. 어차피 가진 게 없기 때문에 잃을 것도 없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 당시에는.

그래서 한 4개월을 찾다가 지금의 놀이짱 공간을 찾게 되었어요. 먼저 더 이상 갈 데도 없었고, 뭐 공장지대나 단독주택들도 알아봤지만 엄청 많은 대출을 받아야 했고요. 순진하게 대출해주지 않을까 했는데 알고 보니 저의 조건으로는 대출도 일천한… (웃음) 그래서 그 공간을 갔을 때 여기다 싶어서 그냥 무작정 서교예술실험센터 계약 기간이 끝나기 며칠 전에 겨우 그곳으로 들어갔는데, 그때부터 비극이 시작된 거죠. 알아 보니까 물도 안 들어오고 전기가 연결이 안 되는 곳이고… 급해서 ‘일단 이곳으로 가자’라고 하고 협조를 하고 들어왔지만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절차 같은 것이 없는 공간이었어요. 그래서 일단 겨울만 나야지 하는 생각으로 들어갔다가 겨울이 지나도 다른 대안이 잘 나오지도 않고, 또 나름대로 그 공간에서 계속 활동을 하는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그 때부터 그 공간을 정비하기 시작했죠. 한 6개월 정도 정비했던 것 같아요.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지금 있는 상암동의 마포서교 주차장으로 가는데 사다리 차를 한 여섯 시간 썼나?(웃음) 그 정도의 목재가 있었어요, 그 위에. 사다리차 아저씨도 놀라셨죠. 사다리차를 여섯 시간 쓰면 사다리차 비용만 100만원 정도 나오더라구요. 엄청난 양의 목재를 가지고 다시 그곳에 놓고 그걸 정리하고… 사실 이런 일은 별것도 아니고 물, 전기, 통신을 연결 할 수 없는 곳에서 따오고, 끌어 쓰고 이런 일들을 했어요. 저도 서울에서만 살아 본 사람이었지만, 도시기반 시설이 없는 곳에서의 삶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웃음)를 알게 되었어요. 아무도 없는 곳에 8명이 온전히 산다는 건 사실상 뭉쳐서 지낼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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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망이 없는 세계를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함께 궁리하기

거기를 다 다지고 일구고 하면서 많은 협력이 있었고, 어느 정도 안정되고 그곳 생활이 익숙해지며 저희에게 변화가 찾아왔어요. 이 8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보통 기업이라고 치면 곱하기 3 해서 얼마 정도의 매출이 나와야 유지가 된다는 계산이 나오잖아요.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이런 정보에 대한 압박이 있었어요. “너네 정말 그렇게 살 수 있겠니?” 우리 안에서는 진짜 아무리 봐도 어떻게든 유지가 되는데 어떻게 이게 유지가 되는 건지는 사실 저희는 모르겠고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렇게 끊임없이 몸노동을 하는 과정에서 질문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요인은 뭐지?’ 혹은 이렇게 모여서 뭔가 스스로 해결하면서 지내는 게 분명 어떤 면에서 기쁨이 있는데 ‘이 기쁨이 지속될 수 있을까?’ 그런 질문 가운데, 잡초가 무성하던 땅을 또 몰래 개간해서 컨테이너 4동을 구입한 후에 거기에 2011년부터 ‘명랑에너지발전소’를 만들었어요. 원래 생각했던 창고와 공방 시스템을 공유하는 모델을 다시 만들기로 하고, 그 당시에 우리가 궁금했던 것들, 예컨대 ‘적정한 규모의 삶이라는 게 어떤 걸까’, ‘그러기 위해서 뭐부터 해야 되는 건가?’같은 질문들에 답을 구해보기로 했죠.

오늘공작소가 주거 문제를 해결하듯이 저희는 한 달에 얼마 쓰는지 서로가 참가자들과 공유하면서, 그 만큼의 돈을 가지고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얼마나 소비에 지금 매여 있는지, 줄일 수 있는 게 뭔지를 찾는 과정이었죠. 저희는 개인을 강조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같이 전망이 없는 시대에서 서로에게 끊임없이 민폐를 끼치면서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거든요. 밖에서 하는 엄청난 소비들, 보통 밥 먹고 차 마시고 하는 데 드는 비용이라면 오히려 내 공간을 좀 더 가꾸고 친구들을 초대해서 같이 먹고 노는 라이프스타일 만들 수 없을까? 이런 질문들 안에서 조금 전에 말씀하셨던 인문학적 상상력이나 기초를 다지고나 하는 욕구들이 생겼어요. 그래서 명랑에너지 발전소를 한 3년 유지하면서, 계속 인문학적인 기반을 다지는 일들을 하게 되었고 저희가 할 수 있는 수준 안에서 목공에서 시작해서 여러 기술들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하면서 협업을 했습니다.

이렇게 놀이짱 내의 협업은, 아무 것도 없는 척박함에서 생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서 시작된 협업에서, 이후 질문이 생성되면서 하게 된 협업의 형태로 변화해갔어요. 각자가 최저생계비정도로 활동비를 받으며 운영되는 조직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를 뭉치게 하는 힘이라는 게 뭘까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한다기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급을 서로 밀리지 않고 나눠 갖는다’를 꼭 지키자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닥치는 대로 일들을 했고요. 운이 좋게 끊임없이 일이 있기도 했었는데 물론 그 운이라는 건 아주 최소, 최저의 수준이었죠. 요즘의 놀이짱 동료들을 지켜보면, 다음 단계, 즉 3단계로 넘어가려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자기주도성과 자율성을 가지고 일을 하려고 하는 상황에 맞닥뜨려졌을 때 훨씬 주도성과 협업의 방식들이 더 다양하게 개발된다는 게 제 입장에서는 보이는 거죠. 예전에는 ‘무엇을 합시다!’하고 다같이 막 일을 했다면, 지금은 그냥 무작정 맡기고 그렇게 맡은 팀들 안에서 일들을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어요. 그런데 제가 봤을 때는 이 방식이 결과가 훨씬 좋은 거에요. 예전에는 아무 경험도 없고 모든 게 불안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한다’는 전망들로 그냥 쭉쭉쭉 갔다면, 지금은 그런 것들을 다 버리게 된 것 같아요.

저희끼리 하는 말이 있는데 요즘은 재정을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특히나 그 엄청난 지대를 맨날 우리가 치우고 관리하면서 지내다 보니까 뭔가 일이 안 되면 우리가 제일 잘 하는 청소용역 알바를 하자라든가, 노동에 대한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되었어요.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 기반은 우리가 몸노동을 기반으로 꾸려왔던 조직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우리가 어디에 속해있고 이 단체가 어느 정도의 이상을 가지고 있다거나, 내가 목수인지 아닌지와 같은 문제에 천착하기보다는 이렇게 모여서 끊임없이 노동과 경제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것. 더 나아가서는 나뿐만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는 정체성이 훨씬 더 자랑스럽게 자리 잡아 간다는 걸 느껴요. 그런 면에서 저 자신도 많이 변한 것 같아요. 내가 ‘무슨 일을 한다’는 타이틀보다는 ‘나 하나와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 서로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우리가 함께 노동을 한다’면 그 노동이 무슨 형태이든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농담처럼 매번 ‘난 사실은 수카라에 가서 카페 매니저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해요. 무슨 일을 하는지는 사실상 상관 없어지는 그 기준이 생긴다는 것, 그만큼 나의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게 노동과 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롤링다이스: 물리적 공간 없이 협업을 지탱하기 위한 고민들

제현주  네, 아마 이 주제를 가지고만 얘기해도 한 시간 반이 다 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두 분 말씀을 들으며 어떻게 보면 롤링다이스가 가지고 있는 협업의 방식은 정확히 이 스펙트럼의 반대 지점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협업의 조건으로 두 분이 공간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롤링다이스는 공간이 없거든요. 그 ‘공간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협업을 만들어내느냐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큰 숙제인 것 같고요. 저는 어쨌든 이끌어가는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서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그러니까 공간이 없는 상태에서 협업을 위한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유지한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물리적으로 같이 있으면 저절로 생겨나는 것들이 굉장히 많이 있잖아요. 관계를 느끼고, 친밀감과 서로에 대한 책임감과 같은 것들을 느끼게 되고…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협업이라는 것을 몸으로 알게 해주는 측면들이 있다면, 롤링다이스는 일을 할 때 대부분의 경우 각자 따로 하는 상황이에요. 집에서, 혹은 어떤 사람은 사무실에서 몰래(웃음)하게 되는데,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함께 일을 하고 있다’는 감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진정한 협업의 조건이 무엇인가’를 훨씬 더 명시적으로 고민해야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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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업이기 때문에 해야만 하는 일을 협업으로

제가 생각하는 협업의 조건이라는 것은 첫 번째로 ‘협업이기 때문에만 할 수 있는 일이라서 어쩔 수 없이 협업을 한다’인 것 같아요. 많은 경우 협업은 괴롭거든요. 특히 어떤 지식 노동을 한다고 생각하면 더더욱요. 의견과 의견들이 부딪히고 그것을 조율하고 뭐 이런 모든 과정이 사실 너무 괴롭죠. 서로 너무 사랑해서 네 의견이 곧 내 의견이고 이런 경우가 얼마나 있겠어요.(웃음) 부부가 서로 두 명만 있어도 그게 어려운데요.(웃음) 게다가 롤링다이스는 출발이 협동조합이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민주적인 공동체라서 모두가 한 표씩을 가지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협업이기 때문에만 가능하다, 라는 전제가 있지 않으면 협업이 되지 않는 거죠. 그러다가 그 시기가 조금 지나가서 실제 협업을 해서 뭔가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했을 때, 그 결과물들을 보면서 ‘아 우리 각자의 개인은 할 수 없는데, 그래도 우리가 모여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구나’라는 것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자신감이 생겨요. 근데 이건 정말 아까 안연정 대표께서 말씀하신 자존감이라는 감각인데요. 각 개인으로서의 자존감이 공동의 성과를 통해 ‘연결된 개인’으로서의 자존감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즉 고립된 개인이 자존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개인으로서 각자 10의 역량을 가진 10명이 모여서 100을 넘어서는 일을 하게 된다는 것? 그런 것에서 협업의 괴로움을 상쇄하는 기쁨이 만들어져야 협업이 가능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협업의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고요. 협업의 고통을 상쇄하고도 남는 기쁨이 있어야 이게 협업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롤링다이스에서는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도 공동의 작업을 하고 있다는 감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끊임없이 우리가 모두의 의견을 반영하면서 진행되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전체의 그림을 계속 공유시켜주는 것, 그러니까 당신이 이 일을 골방에서 하고 있지만 그 각자의 일이 우리가 그리고 있는 전체 그림에서 어떤 피스, 어떤 부분을 차지하는 것인가 하는 의미들을 공유하면서 가는 것에 노력을 많이 기울이고 있습니다. 또 실시간으로 연결해서 일을 하는 감각이라는 게 요즘은 워낙 온라인으로 언제나 접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다행스럽죠.

  자발성과 지속적인 동기부여를 통해 가능성을 확인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모델이 점점 진화해나가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에 롤링다이스 시작할 때는 ‘우리가 협업이기 때문에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규정 자체가 하나 있었다면, 그게 점점 커지는 거죠. 혹은 변화해 간다고 말을 할 수도 있는데요. 롤링다이스에서 협업의 방식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조건인 것은 각 개인의 ‘자발성’이에요. 서로 자발성을 일으키지 않으면 일이 전혀 돌아가지 않는 거에요. 롤링다이스는 돈을 벌기는 하지만 일단 고용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정해진 월급을 주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누군가가 일을 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어요. 그래서 일을 하고 싶게 만들어야 하는 거죠. 무슨 약을 쳐서라도.(웃음) 그런데 그 약을 친다는 것이 어떤 한 가지 방식이 되어 동기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재미가 있거나, 의미를 찾을 수 있거나 등 무엇이든 그 동기가 계속 변화해야 동력이 유지가 되는 거죠. 처음에는 전자책을 딱 한 권 만드는 것 만으로도 너무 동기가 충분하고, ‘와 우리가 만들었더니 아홉 부 나왔어’, ‘세상에 책이 잘 팔리네’하죠. 그런데 그건 한두 번까지에요. 세 번째부터는 다른 동기가 생겨야 하는 거에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계속해서 그 동기를 진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 새로운 의미 부여든 새로운 자극이든 재미든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러다 보면 그것과 함께 애초에 ‘롤링다이스가 이런 모임이다’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규정 자체가 자연스럽게 변화해나가는 그런 것들을 느끼게 돼요.

이런 변화는 사실 제가 처음에 의도한 것이 전혀 아니었거든요. 처음에 롤링다이스를 할 때는 저도 겁이 많은 인간인지라 ‘다들 일단 출자금 100만원씩 내자’고만 했어요. 100만원은 어디 여행 갔다 온다고 하면 그 정도는 쓰니까 100만원을 모으자, 그리고 총 800만원을 가지고 2년 동안 책을 내는거야, 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책이 정말 안 팔린다고 하더라도 800만원이 있으면 전자책을 2년 동안 낼 수는 있겠구나. 또 최악의 경우라고 하더라도 100만원을 날리는 거니까요. 이렇게 최악의 다운사이드가 정해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출발했죠. 이렇게 2년을 해보고 계속 해보고 싶으면 계속하고, 말려면 말고, 그건 그때 가서 원점에서부터 생각하자고, 이렇게 출발을 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2년이라는 시간이 가기도 전에 하나 하나씩 스텝들을 밟아나가면서 아웃풋을 만들어 갈 수 있게 되니까, 애초에 생각했던 ‘우리가 돈 쓰면서 노느니 100만원씩 모아서 우리가 내고 싶은 책을 내는 활동을 하면, 돈이 벌리면 좋고 안 벌려도 이것은 다른 의미들이 생겨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했던 것이 또 다른 방향으로 진화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1년이 지났을 때 결국 협동조합 법인으로 전환을 했고, 그러면서 2년짜리 동업계획서는 모두의 기억의 저편으로 날아가서(웃음) 이제 빼도박도 못하는 법인으로 서로를 구속하는 단계가 되었어요.

처음에는 어떻게 보면 우리가 회사에서 노동하고 나와서는 소비하는 그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어떤 활동을 만들어 보자는 소박하고 작은 욕구에서 출발했다면, 그것이 점점 진화시켜 가면서 지금은 정말 진지한 일의 모델로 가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경로를 밟아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경로를 밟아서 어떻게 진화해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들을 본격적으로 하는 단계인 것 같고요. 그렇게 본격적으로 고민을 하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서로 협업하는 과정에서 어떤 가능성을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어쨌든 이게 정말 우리의 두 번째 일이 아니라 첫 번째 일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그런 가능성을 확인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지금과 같은 방향으로 계속 진화해나가자는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협업의 방식이나 조건이라는 것은 그 진화해나가는 그림이 계속 서로서로 공명하면서, 한마디로 싱크를 맞춰나가야 하는 거잖아요. 그것을 위해 가장 중요한 자발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협업의 조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함께 그려가는 어떤 그림이 있고, 그 그림을 같이 진화시켜 나간다는 것, 그것을 안다는 측면이 중요한 것 같고요.

  전원합의제라는 의사결정방식

아주 기술적인 측면으로는 롤링다이스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희는 전원 합의제로 의사결정을 합니다. 처음에는 이럴 거라고 생각을 못하고, 당시 같이 읽었던 책에 이렇게 전원 합의제로 의사결정을 하는 조직이 나왔는데 다수결의 폭력, 뭐 실제 다수결로 하면 소수의 의견은 카운트 안 되는 것이다, 모두가 동등한 의견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와 같은 굉장히 인문학적인 감각에서 이 방식에 확 꽂혔어요. 그래서 합의제로 의사결정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랬더니 기대하지 못했던 효과가 생겼어요. 반대를 잘 안 해요. (좌중웃음) 다수결일 때는 내 반대가 미칠 영향에 대해서 별로 고민하지 않고 아주 쉽게 반대를 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합의제일 때는 반대를 하는 순간 자신이 무언가를 못하게 만드는 거에요. 그러니까 ‘내가 정말 이걸 못하게 할 만큼 반대를 해야 하나? 저 사람은 저렇게 하고 싶다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그러다 보니 어쩌면 오히려 불필요한 논쟁을 많이 하지 않고, 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 그리고 네가 할거야? 그럼 내가 뭐 왜 반대를 하겠어? 이런 분위기가 형성이 되더라고요. 원래는 훨씬 더 고상한 의도로 시작했던 합의제가 결과적으로는 어떤 면에서 의사 결정을 쉽게 만들어주는 차원이 있습니다.

 

  DEMA studio: 공간의 부재를 채우는 동료들과의 성장, 끊임없이 설득하며 협업하기

한주연  앞의 두 팀은 공간이 있고, 여기 두 팀은 공간이 없다는 차이가 드러나서 매우 흥미로웠는데요. 다시 패널로서 이야기를 하자면 디마의 경우 매 주 다같이 하는 세션은 각 학교 학생들이 학내 공간을 빌려서 진행합니다. 사실 그래서 졸업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각 팀 별 모임도 주중에 여러 번 있어요. 그러면 카페를 계속 전전하는 거에요. 약간… 전기를 찾는 좀비들처럼(웃음) 콘센트를 찾아 다니면서 카페를 전전하고, 그러면서 저희도 계속 생각하는 거죠. ‘아 진짜 이 돈이면 그냥 어디 반지하라도 빌려서 하면 좋겠다’고요. 그래서 공간이라는 인프라, 즉 물리적인 공간 안에서 생산과 학습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오늘공작소와 놀이짱을 통해 잘 볼 수 있었어요.

반면 롤링다이스와 디마스튜디오는 물리적인 공간이 없다는 점 때문에 어떻게 보면 비슷한 맥락을 공유하는 것 같아요. 디마는 매 학기 구성원이 바뀌고, 그래서 계속 우리가 뭘 하고 싶은지와 무엇을 지향하고 싶은지 역시 매 학기 바뀌는데요. 각 학기를 구성하는 멤버들의 욕구에 따라 그 변화가 일어나죠. 예를 들어 저의 경우만 봐도 처음에는 협업에 관심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디마에서는 같이 프로젝트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매 순간 서로 합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굉장히 어렵고 괴로워져요. 그래서 각자가 여기에 별로 관심과 흥미가 없으면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죠. 그래서 어떻게 사람들을 계속 남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런 흥미나 동기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컨텐츠도 고민하고,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자리에 있게 할지에 대한 고민이 사실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다시, 아까 안연정 대표님과 제현주 대표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자존감이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내가 여기에 있고, 얘가 여기에 있음으로써 서로에게서 어떤 영감을 얻어간다는 것? 그냥 같이 있고, 이야기를 하는 데에서 말이죠. 아까 제현주 대표님 이야기처럼 사실 결과물도 정말 중요하고 어쩌면 그것을 위해 함께 있는 것인데 그 과정 안에서 본인 혼자만을 위한, 혼자서 올라가는 게 아니라 ‘서로가 있기 때문에’ 올라가는 자존감이라는 게 분명히 있거든요. 그런 것들로 협업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유지된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런 감각들이 굉장히 연약하다는 걸 다들 알고 있기도 합니다. 왜냐면 이 모든 건 서로가 거기 없으면 끊어져버리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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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롤링다이스와 같이 민주적 의사 결정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겠는데요. 사실 굉장히 피곤한 방식이에요. 저희의 경우 끝까지 설득해요. 그래 그럼 이걸 버리고 가자, 이런 게 아니라 한 명이라도 합의가 안 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를 못하고 계속 설득을 하고… 그 과정에서 때론 매우 지치기도 하죠. 그런데 또 신기한 건 그 노력을 하다보면 어떻게 합의가 되긴 돼요. 그렇게 해서 뭔가가 만들어지거나, 이야기가 다시 이어져나갈 때의 그 쾌감 같은 것들이 이 피곤한 방식의 의사결정을 계속 이어가는 동력이 되는 것 같고요. 저는 앞의 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협업에는 역시 몇 가지 비슷비슷한 세팅이라는 게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어요. 협업을 위한 어떤 기반, 어떤 인프라가 팀의 특성에 맞게 존재하는 거죠. 몸노동을 해야 하는 협업 팀의 물리적 공간이라든지, 공간이 없는 팀들이 협업을 위해 만들어야 하는 동력의 형태라든지요.

더불어 네 팀이 규모의 측면에서 수십명이 되는 집단이 아닌 소규모이기 때문에 함께 공유되는 지점 역시 있는 것 같아요. 전자책이든 목공이든 카고바이크든 디자인 솔루션이든 생산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련의 활동이 있고, 그것이 공동의 학습과 연동이 되면서 서로 간에 공유되는 데이터를 쌓아가는 방식을 가지는 것이 공통의 맥 같아요. 그 공유되는 데이터란 다름이 아니라 구성원 중 이 사람은 이런 주제에 관심이 있고, 이런 부분을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한 정보들이고요. 또 방식에 있어서는 비교적 민주적인, 다 같이 무언가를 결정하겠다는 태도가 바탕에 깔려있는 듯 합니다.

그런데 이런 민주적인 세팅에서 협업을 하다보면 결국 이견이랑 갈등이 없을 수 없는데요. 그런 것들을 어떻게 해나가는지 궁금해지네요. 디마 스튜디오에서는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계속해서 논쟁이 벌어지고, 결국에는 합의의 지점을 만드는 것을 지향하는데요. 그런데 이때 그 방식 자체를 반대하면서 ‘왜 굳이 우리가 모든 것에 왜 합의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지는 친구도 있고, 이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도 있어요. 이 방식 자체에도 모두가 합의한 채 매끈하게 가는 것은 아닌 거죠. 이런 부딪침을 계속해서 겪어 나가는데, 다른 세 팀 역시 모두 조직이 변화를 겪어 나가는 과정에서 어떤 갈등이나 이견을 해결해나가는 방식이나 노하우를 획득하셨는지, 혹은 재미있는 에피소드 같은 것들이 있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다음 포스트에서 계속)

 

[CHAPTER 2. ‘일’ 라운드테이블2 “협업-겸업의 기술 – KNOW-HOW” 녹취록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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