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그라운드: 교육 라운드테이블 – ‘개인’을 길러내는 교육

_MG_9262

00 그라운드 교육 라운드테이블
2014. 4. 6 13:00 – 15:00 @브라우나비
사회: 정아람(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초청패널: 김찬호 (문화연구자), 김지윤 (언니에게 한 수 배우다), 최철웅 (자유인문캠프), 황윤지 (씨앗들 협동조합)
사진: 이고은  /   녹취: 정아람


정아람: 안녕하세요, 저는 <00그라운드: 교육 라운드 테이블>의 사회를 맡은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의 정아람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교육이 상품화되고 있는 시대에 ‘개인을 길러내는 교육’이라는 주제가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가치가 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세 팀과 연구자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김지윤, 황윤지, 최철웅 씨 세 분의 활동을 먼저 소개하고 김찬호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동네, 대학자신의 토대에서 시작]

김지윤‘언니에게 한수 배우다’(‘언한수’)에서 활동하는 김지윤이라고 합니다. 언한수가 무슨 팀인지 소개해 드릴게요. 저희는 광명에 사는 청년들이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재밌는 것을 해보자’고 모인 마을 청년 창작단입니다. ‘볍씨학교’라는 대안학교의 졸업생들이 모여서 시작했어요. 옛날에는 나이 든 사람을 성별에 관계없이 ‘언니’라고 불렀다는데요, 한 발짝이라도 먼저 경험한 언니들이 자기가 한 발짝 먼저 나선 만큼의 경험을 동네에서 나눠보자는 의미로 ‘언니에게 한수 배우다’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름 때문인지 시작부터 지금까지 여자 멤버로만 구성이 되어있고요. (좌중웃음) 이름이 길어서 저희는 ‘언한수’라고 줄여 많이 말합니다.

언한수는 내가 사는 곳에서 즐겁게 살기 위해 경험을 나누면서 일하고, 그 과정에서 배우자는 모토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사는 광명시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왔어요. 2011년에 시작해 지역아동센터에서 각자의 경험을 나누는 미술, 풍물 등의 수업을 진행했고요. 동네에서 재밌는 문화를 만들어보려고 ‘언니네 장터’라는 워크샵을 지역 장터에서 열어 편지 쓰기라는 문화적인 활동을 했습니다. 일하면서 부족한 배움을 스스로 채우기 위해 지역을 알기 위한 강좌를 열기도 했고요.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과 만나 수업하기 시작했고 2013년부터는 ‘동네’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다같이 놀자 동네 한 바퀴’라는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초중등 친구들과 함께 동네에서 재미있는 꺼리를 찾고 활동합니다. 아이들도 자기가 사는 동네에 관심을 갖고 동네 역시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서로 관계를 맺어 재밌는 동네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죠.

매달 아이들이 동네를 찍은 사진으로 전시회를 연다든지, 쓰레기를 줍거나 화분을 심어서 동네를 가꾼다든지 동네잔치를 벌이거나 어르신을 선생님으로 초청해서 요리를 배웁니다. 작년에는 두 개 지역 아동센터에서 수업을 진행했어요. 올해는 한 동네에서 지역아동센터 두 곳, 마을도서관의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뛰어다니고 돌아다니면서 동네 활동을 하고 있어요. ‘다같이 놀자 동네 한 바퀴’가 현재 저희의 큰 사업입니다.

작년부터 크게 진행하는 수업이 하나 있는데, (PPT를 보며) 이 사진은 아이들이 동네에서 전시회를 여는 모습이에요. 현재 저희는 <IDEC(아이덱)>이라는 국제행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국제 행사라서 동네에서 노는 언니들과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민주교육’을 주제로 다양한 토론과 워크샵, 축제가 열립니다. 대안교육이든 공교육이든 교육을 바꾸고 난 다음, 청년들이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사는지 저희는 고민하고 있었고 그런 고민들을 다른 청년들과 나눠보자는 생각으로 준비하게 됐습니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언한수 멤버 외 다른 청년들과 같이 준비중이고요, 올해 7월 27일부터 일주일 동안 열릴 예정이니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통해서 많은 관심 가지고 봐주셨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언한수에는 다섯 가지 원칙이 있어요. 이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원칙은 ‘배우기 위해 일하고 나누기 위해 배운다’인데요, 저희 언한수 모두가 배우면서 일하고 나누면서 또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고 동시에 우리가 사는 동네가 재밌고 풍성해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_MG_9132

정아람:지역에 살고 있는 아이들과 동네를 누비면서 교육의 컨텐츠를 함께 만들어나간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주어진 교과서를 선생님이 설명하고 그걸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우도록 하는 명령하달식 교육 방식과 달리 아이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공간에서 스스로 놀이와 교육의 재료를 찾으니까요. 다음으로 ‘씨앗들 협동조합’의 윤지씨 이야기를 들어볼게요.

황윤지:안녕하세요, 저희 ‘씨앗들 협동조합’(‘씨앗들’)은 2010년에 게릴라 가드닝을 해보자는 친구들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팀입니다. 처음엔 학내에 텃밭을 만들어서 우리끼리 가꿔보자는 작은 목적에서 단순하게 시작했어요. 학교와 점점 마찰이나 분란을 겪으면서 학교 안에서 텃밭을 운영하는 것의 필요성을 스스로 더 절감하게 됐고 학내에 다양한 공감대를 만들고 싶다는 의도에서 다양한 프로젝트 지원사업을 통해 도시농업을 테마로 하는 <레알 텃밭 학교>라는 강좌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이 강좌는 대학생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열린 컨텐츠 수업으로, ‘도시 농업’을 주제로 실습과 이론수업을 병행해서 매 학기 운영했습니다.

강의를 시작한 해인 2010년에는 고려대학교에 텃밭을 트기 시작하면서 텃밭학교도 진행했어요. 육칠십 명의 수강생들과 함께 방과 후 열린 강좌 성격의 수업을 열게 되었고요. 반응이 좋아서 이 수업을 이어나가고 싶다, 여러 학교 학생들과 만나고 싶다는 필요성을 느껴 다음 학기에는 이화여자대학교, 그 다음엔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다시 고려대학교에서 매학기 해당 학교 학생들의 수요에 맞춰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지역 주민들도 들을 수 있도록 무료로 수업을 진행해왔고 최근에는 협동조합을 설립하게 되면서 대학생 외 다양한 분들을 수용할 수 있는 강좌로 거듭났어요. ‘생태’를 주제로 <e레알텃밭학교> 수업을 진행했고요.

학내에서 텃밭학교를 여는 장점은 학교 안에다 텃밭을 직접 운영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저희가 수업을 한다는 명목 하에 학교의 땅을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한 동기가 됐죠. 학내에 텃밭학교뿐만 아니라 직거래장터를 운영해서 학생들에게 유통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어요. 각 학교에 동아리 형태로 정착 시키도록 했고 지금은 이화여대 ‘스폰걸즈’라는 팀과 고려대 ‘씨앗이랑’이라는 팀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초중고 C.A 수업도 나가게 됐어요. 고등학교의 경우는 대안학교 수업을 주로 했고 초등학교, 중학교는 동아리식으로 수업을 진행했어요. 대학생들과 나누지 못했던 다양한 컨텐츠를 초등학생과 교감하면서 스스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2012년 말에 협동조합을 설립하고는 어떤 식으로 수업을 진행할까 고민이 많았어요. 작년에는 누구나 집에서 도시농업강좌를 시청할 수 있게끔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사이버 e레알텃밭학교>라는 동영상강좌를 한겨레팀과 제작했어요. 유튜브에서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게끔 했고요. 혹시라도 도시농업이나 집에서 간단하게 가드닝을 시작하고 싶은 분들이 기본 상식 수준에서 강의를 볼 수 있도록 말이죠. 지금은 많이 알려진 경의선 폐부지 공덕동 ‘늘장’에다 텃밭과 생태공원을 조성해 운영하기도 했죠. 앞으로는 직거래 장터를 지하철 역사 내에 운영할 계획이에요. 지금도 노들섬에서 텃밭을 운영하며 대학과 연계해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아람: 저는 가끔 가로수 터에 씨앗을 심고 가끔씩 물도 주면 생활이 재밌어지지 않을까 상상하곤 했지만 시도해보진 않았어요. <사이버 e레알 텃밭학교>에서 식물이 성장하는 단계를 듣는데 재밌더라고요. 내가 인간이면 식물도 하나의 타자인데 그 타자의 생애 리듬을 이해한다는 게 소박하면서도 새로웠어요. 텃밭활동을 하면서 자기가 확장되는 걸 느끼지 않을까. 기회가 되면 씨앗들의 텃밭에 놀러가보기로 했습니다.(웃음) 그 다음에 자유인문캠프를 기획한 ‘잠수함 토끼들’의 최철웅씨, 소개 부탁드릴게요.

최철웅:자유인문캠프(‘자캠’) 기획단 ‘잠수함 토끼들’의 최철웅이라고 합니다. 저희의 활동을 사진으로 정리해봤습니다. (사진 보면서) 기획단 공식 명칭은 ‘잠수함 토끼들’이에요. 결성된 2010년, 4월 8일에 저희 학교 학생 두 명이 한강대교에 올라가 시위를 벌였어요. 학내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던 중에 이사회에서 8일, 최종적으로 구조조정 안을 통과시켰고 그간 싸워온 학생들이 마지막 저항의 몸짓으로 한강대교에 올라가서 고공시위를 한 거죠. 동시에 노영수씨가 크레인에 올라가서 똑같이 시위했어요. 최근에 책(『어느 기업가의 방문』, 후마니타스)이 나오기도 했는데 노영수씨는 당시 퇴학을 당하고 저 두 학생도 정학 처분을 받았습니다.

2008년에 두산이 대학 재단에 들어오고 2009년부터 구조조정을 시행하면서 인문학과를 중심으로 70여개의 학과수가 40여개로 거의 절반이 줄었어요. 경영·경제학과는 오히려 늘어나기도 했죠. 인문학과의 구조조정은 별 기준 없이 단행되었어요. 성향이 비판적인 독문과 교수는 학교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구조조정 대상이었죠.

당시 몇 개월간 천막시위, 집회 등 많은 싸움을 벌였는데 이사회에서 최종 결정이 나면서 학교가 원하는 방침대로 구조조정이 시작됐어요. 싸우던 사람들도 지치고 징계 당하면서 많이 위축된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다시 처음부터 진지를 다져야겠다’ 다짐하고 ‘희망의 진지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죠. 대학 안에서 공공성의 가치를 되새기고 학생자치의 형태를 복원해야겠다, 인문사회과학의 비판적인 담론을 보급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자캠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2010년 여름에 후배들에게나 트위터로 알려 같이 할 사람을 모집했어요. 중앙대 학부생과 대학원생 등 여섯 명이 모여 시작했고요.

저희는 강연·강좌를 중심으로 하고 있어요. 맨 처음에는 공개강좌로 시작했어요. ‘아주 근본적인 물음들’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이후로 ‘자본주의’ ‘국가와 정치’ 등등의 주제로 수십 차례 공개 강연회를 진행해왔습니다. 가장 중심적인 활동은 여름·겨울방학 때 여는 연속강좌인데요, 지난겨울까지 총 8회에 걸쳐 개설했어요. 처음에는 여섯 개의 강좌로 시작했는데 최근엔 열다섯 개 내외 강좌가 매회 개설될 정도로 규모가 커졌습니다. 매회 500~600명 정도의 수강생이 참가합니다.

매회 연속강좌가 끝나고 나면 홍대에 있는 ‘공중캠프’(‘공캠’)라는 곳에서 <자캠의 밤> 행사를 열어요. 공개 강연은 학기 중 한 번, 방학 때 한 번 해서 한 학기에 두 번 정도 하고, 한 번 할 때마다 그 주제에 대한 강연을 3회기 분량으로 기획하고 있어요.

<새내기 교양학교>는 2011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총 세 번 진행했어요. 새내기를 대상으로, 대학에 첫 입학 했을 때 대학의 실상이라든지 청년 학생들이 알아야할 기초적인 것들을 배우는 자리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진행하게 됐습니다. 처음엔 학교에서 진행하다 최근엔 1박 2일의 캠프로 외부에서 진행해요. 올해에도 5월에 1박 2일 동안 진행할 계획입니다.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던 당시 학내 비판적 기사를 교지에 실었다가 강제 수거당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그런 식으로 학내 비판적 담론 언로가 막혀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공론장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저희 자체적으로 독립 저널을 발간하고 있어요. 타블로이드판 신문인 <잠망경>을 한 학기에 두 번, 현재 9호까지 발간했습니다. 그 외 다큐멘터리 상영회 <다큐나이트>를 진행하고 감독을 모셔서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갖습니다. 최근에는 오현미 감독의 <울면서 달리기>(2012)를 같이 봤고요.

학내에 다양한 단체, 활동하는 팀과 네트워킹을 하는데 그 중 하나가 ‘페스티벌 봄’(‘페봄’)과 재작년부터 함께 한<페봄X자캠>이라는 프로그램이에요. 페봄 공연 중 한 두 공연 정도 같이 기획해요. 저희는 강좌를 같이 열어요. 공캠은 협동조합식으로 운영되는 술집이에요. <공캠 자캠 알콜토크>라고 해서, 다큐멘터리를 같이 보고 술 한 잔 마시면서 얘기하는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2011년에는 청년운동을 하는 팀이 모여 <청년 운동 별자리 잇기>라는 집담회를 한 번 열기도 했어요. 저 사진은 <공캠자캠 알콜 토크>에서 다큐멘터리 <맑스 재장전>(2010)을 감독한 제이슨 바커를 모시고 같이 알콜토크 했던 사진입니다. 저건 MT가서 찍은 것 같네요.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강좌와 상영회 그외 네트워크 활동, 독립저널 발간 등을 계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_MG_9185

[도구화된 지식, 단절된 지성]

정아람:‘잠수함 토끼들’의 태생이 기업화된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운동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 주체인 ‘청년’이라는 이름이 도드라져 보입니다. 청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해볼 수 있는데요, 김찬호 선생님께서는 세 분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으셨나요?

김찬호:청년들의 여러 가지 활동을 들으면서 제가 청년이었을 때하고 많이 달라졌다, 한편으로는 비슷한 흐름도 있지만 상당히 맥락이 달라진 걸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 때만 하더라도 ‘청년’은 사회적으로 앞서 간다, 상당히 저항적이고 사회에서 가장 고학력자, 부러운 대상이었거든요.

80년대에 대학생들이 엄청나게 늘어났어요. 고학력 청년들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사회에서 가장 발언권이 셌고 그 결과 민주화에도 기여를 했죠. 지금 ‘청년’ 그러면 ‘청년 실업’, ‘청년 신용불량’ (좌중 웃음) 굉장히 부정적인 것이 많이 검색 됩니다. 어떻게 이들을 사회에 자리매김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다 같이 할 수밖에 없는 일종의 대상화된 듯한 느낌이 있어요. 세 분의 소개를 들으면서 다시 이러한 몸부림, 모색이 일어나지 않을까 해서 반갑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엄청난 정보의 폭주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문자를 만든 이래 2000년 정도까지 만든 정보의 절반을 하루에 (다) 만들고 있습니다. 엄청난 겁니다. 여러분이 주말에 괜찮은 월간지 한 권 읽으면 백 년 전 최고 권력자가 평생 얻은 정보보다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지적으로도 넓고. 근데 우리는 그것이 별로 행복으로 느껴지지 않고 있어요.

또 네트워크로 무한하게 확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몇 억년 먼 이에게도 친구요청을 할 수가 있죠. 맺어지건 안 맺어지건 현실적으로 가능합니다. (좌중 웃음) 20억 인구가 지구에 들어와 있는데 어쨌든 연결이 된단 말이죠. 이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근데 다른 한편으로 보면 그런 정보의 폭발 속에서 오히려 지성은 쇠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생각하는 힘이 점점 박약해지고 점점 늘어나고 있는 지식도 도구화되고 있어요. ‘지식의 상품화’라는 것은 ‘지식의 도구화’와 연결 되죠. 너무 일찍부터 ‘그거 배워서 뭐할래?’ 써먹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겨지고 배움을 하나의 즐거움으로 경험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성장이라는 것이 기형화되고 불안하고, 인생은 점점 복잡해지고 세상은 넓어지는데 내가 어떻게 한 발짝씩 앞서 나가야하는지 막막하죠.

전 이렇게 비교해봅니다. 일상과 인생. 일상은 상당히 풍요로워지는 것 같고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점점 확실해집니다. 버스를 타려고 하면 몇 분 몇 초에 올 게 딱딱 예고되잖아요. 모든 게 편리해집니다. 소비상품, 어마어마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커피의 종류도 알 수 없을 만큼 선택지는 넓어져요. 그것에 반해서 인생의 선택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많은 직업들이 사라지고 있고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일상은 확실해지는데 인생은 점점 불확실해집니다. 우리 청년 때와는 너무 다르죠. 저희는 학점 신경 쓰지 않고 토플 거들떠보지 않고 대학졸업하면 다 취직이 보장돼있다 싶을 정도로 확실했는데 지금은 버스가 몇 분에 올지는 초단위로 알지만 자기가 1년 뒤엔 뭘 할지 모르는 너무나 대조적인 현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발표를 들으면서 몇 가지 키워드가 떠올랐어요. ‘언니한테 한수 배우다’ ‘한수’란 말이 뭘까. 저는 문화인류학과 인문학을 강의하다보면 단어들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는데, ‘한수’는 외국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순 우리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수 가르쳐줘’ 할 때, 학교에서 ‘한수’를 못 배웠는가. 한수는 구체적인 현장에서 경험을 통해, 관계를 통해 배우는 것 같아요. 책으로 한수 배우기 어렵죠? 도움은 됩니다만, 한수는 직접 실행을 통해서 배워야 하는 것이고요. ‘암묵지’라고 언어화할 수 없는, 머릿속에 몸속에 있는데 명시되지 않은 (앎인) 거죠. 여러분 카톡 만지는 것도 다 암묵지입니다. 카톡을 모르는 사람한테 일일이 설명하기엔 어려워요. 그러나 저절로 배운 것 아닙니까.

우리는 이미 한수 배우는 게 많은데 정작 살아가면서 필요한 핵심 능력은 배우지 못한 채 아주 기본적인 스킬들만 배우고 있는 겁니다. 이 한수가 전달되는 현장으로 동네, 도시농업, 대학이 있죠. 대학과의 대립. 굉장히 피곤하고 만만치 않은 싸움이죠. 오히려 80년대가 쉬웠던 것 같아요. 그때는 돌 던질 수가 있었거든요. 지금은 거의 꿈쩍 안 하죠. 중앙대학교. 연세대학교도 파헤쳐지는 거 보고 작년에 경험했는데 대학이 ‘배 째라’하면 대책이 안서요. 만만치 않습니다. 하여튼 이런 여러 가지 과제를 놓고서 여러분이 뭔가를 배워가는 과정이 대단히 흥미롭고 저도 참고하고 싶은 내용들이 많습니다.

공통된 것은 뭔가 끊임없이 세상과 열려있는 통로, 연결을 시도한다는 겁니다. 윗세대-아랫세대를 돌보고. 지금 한국사회는 세대간 단절이 굉장히 심각합니다. 여러분 휴대전화에 들어있는 인명은 거의 또래에 한정되어 있을 겁니다. 인간관계가 연령대별로 구획 지어진 사회는 결코 건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통해 경험을 전수하는 통로가 막혀있다는 뜻이니까요. 그것은 윗세대, 아랫세대에게 행복한 모습이 아닙니다. 사람이 자기가 경험을 통해 배운 걸 다음 세대에게 전달할 때 보람을 느끼거든요. 여러 세대가 만나도록 하고 경험을 통해 배우도록 하는 것은 삶의 보람을 새롭게 가꾸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적 행복감이라는 테제를 증명하기]

여기서 몇 가지 더 중요한 포인트, 일자리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짚어봅니다. 결국 이런 활동들이 첫 단초는 굉장히 소박하고 소규모로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게 이름 그대로 ‘씨앗’이 되어서 지역에 중요한 활동이 되고 일터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지역은 순환 경제로 돌아가죠. 거기서 만든 사람들이 노동의 주체로 살 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동네에 일거리가 점점 사라지죠. 그런데 일감을 만들어서 활동을 한단 말입니다. 활동이 보다 전문성을 갖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이것이 좀 더 지속가능한, 안정적인, 엄청난 돈을 벌어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일을 통해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데서. 요즘은 교육보단 학습이 중요하죠. 우리나라 교육에서 학습은 일방적인 지식의 전수이지 않습니까. 학습學習. 뭔가 배우고 익히는 것은 논어의 첫 구절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을 보살피면서 인간 성장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 나와야한다고 생각해요. 부모들이 보지 못한 아이들의 생활상, 연구가 뒷받침 될 때 ‘이 친구들이 단순히 몸으로만 때우는 게 아니고 아이들의 긴 인생에서 어떤 점들이 필요한지 정확하게 짚어가면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구나’ 하는 스토리가 나온다면 얼마나 더 즐거울까. 그런 걸 염두에 두시고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 이야기가 있으면 나중에 듣고 싶고 자료로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학에도 지역 아동학과가 있지만 실제 구체적인 현장과 괴리되어 있는 게 많거든요. 여러분들처럼 활동하시면 더 알찬 지식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텃밭 또한 여러 가지 스토리가 나올 것 같아요. 학생들이 텃밭을 하면서 무엇을 경험하는지, 어떤 변화가 있는지. 예를 들어 ‘우울증’을 걸렸던 친구가 치유되는 경험이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햇빛을 받고 흙을 만지고 뭔가 가꾸면 우울해질 수 없어요. 그걸 위해서 텃밭을 도모한다는 얘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게 많이 있을 수 있겠죠. 가꾸면서 맺어지는 사회적 관계도 있을 거고요, 학교 안에서 도시 농업을 실험적으로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더 중요한 건 여기 참여하는 분들이 어떤 성장을 여기서 하게 되는가,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자아를 어떻게 만나는가 이야기를 잘 만들어보면 이걸 통해서 영화를 만들 수 있겠죠. 저도 ‘마음의 씨앗’이라는 교육센터를 운영하고 있거든요. ‘씨앗’ 하면 상당히 많은 비유가 담겨 있어요. 시도 많고. 그래서 이런 것도 곁들여서 씨앗, 도시농업 관련된 컨텐츠를 축적해가면 보다 매력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미국에는 ‘가든 프로젝트garden project’라는 게 있어요. 재소자들한테 농사를 시키거든요. 재범률이 확 떨어진다고 합니다. 제 글에도 나오지만 프랑스에서는 교도소에 있는 아이들이 2~3개월 동안 아무 조건 없이 걷기만 하면 석방시켜준다고 하는군요. 그 경우에도 재범률이 엄청나게 떨어진대요. 그만큼 자연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치유의 힘이 있습니다. 그런 것과 관련해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인문캠프는 상당히 거친 싸움일 수밖에 없는데 그런 가운데서도 지속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성과 앞에만 놓고 결과에 따라 일회일비하면 오래가지 못할 거란 생각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강좌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서로가 생활을 나누는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같이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강좌를 계기로 어떤 만남과 모임이 이루어지는지 궁금해요. 강좌는 강사가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형식인데, 거기서 사람들이 어떻게 만나 혼자 있을 때 못한 것을 해내기 시작하는지, 어떻게 자아 효능감이 생겨나는지. 지금 청년이어도 어차피 만년 청년은 아니잖아요. 30, 40 나이가 들 텐데 그렇게 들어가면 그 변화에 기반이 되는 사회적 토대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80년대에 비하면 지금 거대담론은 워낙 많이 위축되고 ‘힐링’이 대세죠. 거대담론과 힐링 사이에 균형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 세대는 너무 그쪽(거대담론)으로 갔다가 운동권 열심히 했는데 결혼생활 엉망이고 이혼하고 애들 포기하고 이런 집들 많아요. (좌중 웃음) 굉장히 좋은 뜻으로 역사와 사회를 위해서 나섰는데 정작 자기 삶은 돌보지 못했죠.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지금 발표한 맥락 속에서 ‘공적 행복감’을 떠올려보고 싶어요. ‘공공’이라고 하면, ‘퍼블릭public’이잖습니까. 우리 사회에서 ‘공공’이라는 건 되게 헷갈리는 말이에요. 영어에서도 마찬가지에요. ‘공공’이라고 하면 한 편으로 ‘국가’가 얘기되죠. 공익근무 그러면 진짜 공익이 아니잖아요. 공적 이익이라고 하는데 공익근무는 군대 용어 아닙니까. 시민사회가 하나의 공공이고 국가도 하나의 공공이죠. 시장 바깥에 있다는 점에서 정부, 시민사회 모두 NPO (non-profit organization, 비영리기구)예요. 그런데 한편으론 ‘사적인private’ 영역, 민영화를 ‘privatization’이라고 일컫듯 시장에 대비되면서도 국가와 결부되는 뜻으로 ‘공공’이 얘기되기도 하죠.

<00 그라운드>에서 ‘공공’은 국가의 그것과는 다른 거란 말이에요. 그걸 뭐라고 하냐면, 전 그게 우리들의 마음과 삶이 담겨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즐거움이 창출되고 창작단, 재미가 곁들여져야 하죠. 옛날의 공공은 국가와 싸우는 공공이었죠. 공공영역, 시민사회의 영역을 만드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투쟁일변도였지만 지금은 삶 자체가 디자인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합니다. 자기를 돌보는 것과 사회를 바꿔가는 것이 같이 가야된다. 그런데 우린 자기를 돌보는 건 다 자기 혼자서 사적으로 하고, 사회를 바꾸는 것도 굉장히 소수한테 힘든 과제로 어깨에 짊어지게 합니다. 이렇게 두 가지가 꾸준하게 병행될 때 거기서 배움이 나와 모두를 위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무리하자면, 교육 상품화라는 것도 근본적으로 부모들의 삶과 세계관이 공공성을 잃어버린 데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공공성은 신뢰에 바탕한 것이거든요. ‘우리가 힘을 모을 때 더 큰 이익이 나에게 돌아온다’는 믿음이 없으면 유지될 수 없어요. 그게 깨지면 다 개별적으로 제 살 길을, 내 새끼를 키우는, ‘내 새끼주의’에 빠지죠. 삭막한 용어인데, (좌중 웃음) 내 새끼를 위해서라도 다른 아이들을 함께 보살피는 게 맞지만 그런 문이 안 열린다는 거죠. 말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경험을 통해, 사례를 통해서 보여줘야 됩니다.

저도 책을 계속 쓰고 있습니다만 답답해요. 이렇게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사례를 만들고 그것이 줄기세포가 되어서 다른 사람들이 ‘이거 저기서 하니까 되네’ 조금씩 알아간다면 처음 하기가 힘들지 두 번째 세 번째 복제하는 건 쉽거든요. 지금 황무지에서 씨앗을 심는 분들이니까 하나씩 점점 여러 방면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발제한다고 하지만, 직업병입니다. (좌중 웃음) 꼰대 같은 설명이었습니다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

[저항의 논리: 학생의 권리]

정아람:꼰대 같다고 하셨는데 (웃음) 제가 듣기엔 그보다도 오늘 나누려 한 얘기를 다 말씀해주신 것 같아요. 이 중에서 몇 가지를 골라 같이 얘기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사전에 패널분들께 제시했던 내용 중 하나는 ‘학생이 없다’ 혹은 ‘학생이 공부하는 공간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방금 말씀하셨듯 80년대와 비교해서 그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행위자로 청년이 나섰던 것처럼 ‘청년’이라는 이름이 희망을 전망하고 시민들과 도모할 수 있는 시민성을 가진 개념이었지만 과연 오늘날 학생이라는 것은, 그리고 학교에서 공부한다는 것, 더불어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그런 시민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세 분의 경우 학생 신분이라는 점도 있지만 교육의 장을 만들고 그 안에서 본인들이 배우고자 하기 때문에 ‘학생이 없다’는 점과 관련한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직접 교육의 장을 꾸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떤 변화를 보았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 점도요. 중앙대 학생들은 무엇에 잠식되어 있기에 쉽게 변화하지 않는지.

_MG_9143

최철웅:저는 대학원생으로서 자캠 기획단을 시작하면서 많은 학부생들을 만났어요. 어린 친구들을 계속 만날 수 있다는 게 좋은데, 제가 90년대 후반 학번이니까 나이차가 나기도 하죠. 만나고 나서 깨달은 게 굉장히 많아요. 김찬호 선생님께서 배움을 경험하는 게 왜 중요한지 말씀해주셨는데 이십대 초반의 학생들에게 이런 경험이 부족한 것 같아요. 상황이 발생했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예컨대 중앙대나 연세대처럼 대학이 노골적으로 뻔뻔하게 폭압이나 말도 안 되는 불합리한 상황을 일으켰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당황스러워하는 측면이 있어요. 학교는 당연히 합리적으로 교육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쪽이니 물건을 파는 사람이 요구받는 기본적인 상도가 있잖아요. 이런 게 안 지켜졌을 때 굉장히 분노하긴 하는데 어떻게 저항을 엮어내고 내 권리를 찾을 것인지에 대한 담론, 경험이 무척 부족하다는 것이죠. 대부분 무엇이 문제인지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중앙대에서 싸우면서 제일 힘들었던 건 사실상 대부분의 학생들이 구조조정에 찬성한다는 거예요. 싸우는 일부 교수, 학생들을 비난해요. 학교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이유로, 구시대적인 대안 없이 비판만 하는 90년대 유물, 운동권으로 보는 거죠. ‘운동권’ 하면 예전 같은 울림이 없죠. 게토화된 (웃음) 덕후들도 아니고 (좌중웃음) 캔버스에서 전도하는 이상한 사람 비슷하게 보잖아요, 피해 다니고. 그런 상황에서 문제는 학생들이 자기 언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거예요.

관련된 얘기로 첫 째는 학생으로서의 정체성이 굉장히 약한 것 같아요. 대학생이 스스로 ‘학생’으로 규정하기보다 ‘이십대’ ‘루저’ ‘청년’ ‘88만원 세대’ 이런 식으로 규정하는 징후가 보여요. 자신을 정치적 주체, 권리의 주체로 규정하기보다 그냥 ‘힘든 사람’,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사회에서도 이십대를 그렇게 보고 있죠. 그리고 또 하나, 단순히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80년대와 같은 대학문화가 이제는 대학에서 사라진 걸 들 수있어요. 대학생들의 자생적인 하위문화, 고유한 문화가 전혀 없잖아요. 대학도 그냥 소비문화인 거고. 대학이라고 할 만한 자기들만의 공동체, 자치의 경험도 없고 대학 바깥의 지배적인 문화나 소비문화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대학에 와서도 하게 되죠. 그러다보니 학생으로서의 정체성이 부족한 것 같아요.

저희는 일부러라도 뒤풀이를 많이 하려고 해요. 나중에 들어보니 특정 주제를 공부하고 싶은 강사와 학생이 모여서 성적이나 출석 부담 없이 그냥 그 주제를 공부하고 뒤풀이 자리에서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고민을 나누는 경험, 당연하고 기본적인 경험을 처음 해봤다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대학 수업으로 그런 식으로 관계를 맺고 배우는 과정이 없었던 거죠. 저희의 이런 시도가 어떤 변화를 낳는지,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어떤 활동을 펼칠지는 알 수 없지만 이처럼 좋은 경험을 한 번 하고 나면 나중에 다른 곳에서 활동을 할 때에도 리트머스 같은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김찬호: 그동안 몇 개월 하신 거예요?

최철웅:5년차 됐습니다.

김찬호:이상한 표현인데 어떤 것을 ‘건졌어요’? (좌중 웃음) 목표를 명확하게 성취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것만큼은 우리가 하길 잘했다’ 보람을 느낀 점이라면?

최철웅:지원을 받지도 않고 학교의 직간접적인 탄압을 받으면서 5년 동안 유지했다는 것 자체가 큰 성과라고 생각해요. 처음에 무조건 10년을 하자는 다짐을 기획단끼리 했는데 대학생들끼리 대학 안에서 또는 지역 기반으로 활동했을 때 5년 이상 지속되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중간에 변화가 생기거나 조용히 사라지는 경우가 많죠. 저희가 기획단으로 활동하면서 외형을 키우고 외부 네트워킹을 통해 알려지고 있다는 점이 그 자체로 하나의 성과이고 지속가능한 모델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정아람:저도 자캠의 수업을 몇 번 수강했었어요. 제가 배우고 싶은 주제를 공부하는 선생님과 부담 없는 강의료 덕분에 수월하게 만날 수 있었어요. 점수나 과제 방식을 고민하면서 강좌를 택한 대학 수업과는 많이 달랐죠.

김찬호 선생님께서 지식이 소비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셨는데 저도 동감합니다. 저 스스로 지적 호기심을 소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의구심을 갖고 있거든요. 최철웅 씨와 인터뷰하면서도 말씀드린 거지만, 공정무역 상품을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로 소비하는 것처럼 ‘정의’를 소비로써 구현하려는 거라면 자캠도 그 소비대상이 될 수 있지 않나 하는 염려가 들었어요.

[지속의 동력: 내적 성장, 순환과 번짐의 관계]

정아람:배우고 싶은 동기가 내적 욕망에서 비롯되는 경험을 누구든 마땅히 해봐야한다고 생각해요. 마찬가지로 ‘씨앗들’도 비슷한 동기부여를 거쳐 대학 기관과 마찰하면서 본인들이 하려고 한 바를 지켜냈는데, 그때나 아니면 이후 ‘씨앗들’에 동참한 소수의 학생들이 가치관이나 일상을 대하면서 어떤 변화를 보였는지 궁금합니다.

황윤지:진행 과정에서 학교와 마찰을 빚었지만 정치적 동기로 시작한 조직은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대학에서는 ‘교양’이라는 수업을 듣잖아요. ‘전공’과 ‘교양’으로 분리된 시스템인데, 교양이 정말 교양답냐는 생각은 많이 하실 거예요. 학교에서 주력하는 학과의 과목이거나 교수님들 전공에 맞춰서 교양 컨텐츠가 구성되고 있는데 그걸 말 그대로 ‘교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희는 ‘농업’이나 ‘농사’가 아주 기본적인 지식, 말 그대로 ‘교양’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와 저의 친구들이 처음에 대학에 와서 서로 농사에 대한 얘길 꺼내보니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거예요. 초등학생 때 배운, ‘이것은 농부아저씨의 피와 땀이야’ 그 정도 수준의 지식밖에 없었어요. 그러다보니 제 자신의 무지를 실감하게 됐고 왜 대학에서 이런 기본적인 교양 수업이 없는 거냐는 문제의식이 들었어요. 처음 시도한 <레알텃밭학교> 수업도 가벼운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우리가 이걸 교양수업으로 만들어보자’ 그래서 학교에 제안한 거예요. 학교의 학생이면 누구나 들어볼 수 있는 ‘도시 농업’ 강좌가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본 것이죠.

우리 수요에 맞는 교양강좌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개설했는데 사실은 교양수업을 만드는 게 불가능하더라고요. 전공 교수님도 있어야 하고요. 저희는 텃밭수업을 하면서 도시 농업 수업의 모델을 만들고 학생들의 수요를 증명하고 싶었어요. 이런 수업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걸 학교에 보이고 교양수업으로 제안하고 싶었죠. 기대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앞서 ‘학생의 부재’ 얘기가 나왔지만 부모님이나 학교에서 저희를 바라보는 시선이 김찬호 선생님께서 지적하셨듯 ‘쓸 데 없는 짓 아니냐, 농사지어서 어디다 써 먹을 거냐, 기업 취직할 때 농사 경력을 쓸 수도 없고 학교 안에서 농사지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 는 식이어서 저희도 항상 고민했어요. ‘재미’와 ‘의미’ 사이라는 게 저희 키워드였어요. 재미있는데 의미도 있다. 그런데 항상 의미를 증명해야 되고 그걸 스펙으로 활용해야 하는 문제에 매번 놓였죠.

근데 그 과정에서 저희가 계속 이런 활동을 할 수 있게 한 동력이 있어요. 굳이 성과를 따지자면 처음엔 가볍게 시작했는데 함께 하는 친구들의 삶의 가치관이 변하는 광경을 제가 많이 목격했어요. 어떤 한 사람이 자신의 작은 습관을 쉽게 바꿀 수 없다는 건 모두 체감하셔서 알 거예요. 저도 아주 안 좋은 습관을 바꾸고 싶은데도 항상 생각만 하지 잘 안 되거든요. 근데 이런 가치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에서 저는 엄청나게 큰 힘을 받았어요.

저희가 농사 위주로 수업하지만 어떤 가치관을 주입하거나 강요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친구들이 농사를 짓는 체험학습을 하다 보니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되더라고요. 토마토 한 방울을 키우는 데 몇 달이 걸리는 걸 겪어보니 토마토 하나의 가치, 그걸 쉽게 버릴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 놓이더라고요. 수업이 끝나면 저희도 뒤풀이를 자주 하는데, 농사가 힘들어서 자주하는 이유도 있어요. (웃음) 뒤풀이 자리에서 반찬 한 개를 남기는 것에 대해 암묵적으로 죄책감을 느끼는 공감대가 형성돼요. 누가 말하지 않아도요. 그런 내용의 수업을 따로 진행하지 않았지만 음식물 쓰레기를 남기는 문제, 예를 들어 뒤풀이를 왜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게 되죠. 수업에 도시락 싸오는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다 같이 자기가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오죠. 그러면서 서로 어떻게 요리했는지 얘기하기 시작하고 내가 키운 걸 재료로 싸오게 돼요. 이런 식으로 점점 공통의 성향이 저절로 강화되는데, 밥상을 같이 공유하는 식구 같은 존재가 되다 보니 그 학생들이 음식을 먹는 사소한 습관부터 변화하는 광경을 눈으로 볼 수 있어요.

저희는 이 프로그램의 교육자도 아니고 말하자면 기획자인 셈인데, 참여하는 사람들 한두 명의 삶의 가치관이나 방향성이 바뀌는 것을 목격하면서 기획을 계속 할 수 있는 자극을 받아요. ‘순환’이라는 키워드에 공감하는데요, 저희 교육 안에서도 항상 ‘순환’이 이루어져요. 음식물을 퇴비로 모아서 거름을 만들고 그걸 다시 퇴비로 사용해서 식물을 키우고. 순환의 시스템에서는 무엇 하나 버리지 않아요. 그 안에서 엄청난 가치를 느끼게 돼요. 채식을 하는 친구들이나 동물권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많아지죠. 처음에는 집 앞 화단을 가꾸는, 씨앗 하나 심는 사소한 동기에서 학생들의 삶의 방향성이나 관점이 바뀌는 것에 지대한 영향과 가치를 찾을 수 있어요. 확장해서 해석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아람:윤지씨 말씀에서 나온 두 가지 포인트를 언한수의 지윤씨와 얘기해보고 싶어요. 하나는 ‘스펙’이고 하나는 ‘순환’이에요. ‘스펙’이라는 건 말하자면 도구잖아요, 내가 좀 더 잘 살 수 있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 일단은 하고 싶은 걸 배제하고 내 능력을 셀 수 있는 수로 환원해서 증명하는 것이죠. 그것이 일반적으로 이십대를 잠식한 사고방식이고요.

저는 공교육의 환경에서 길러졌는데, 배우고 싶은 것을 스스로 추구할 기회, 부모님의 지지와 조력을 받는 축복을 누리지 못했어요. 좀 더 확대해 생각해보면 교육 공간에서 학생이 부재한다고 본 이유 중 하나는 앞서 윤지씨가 말씀하셨듯 학생 자신에 근거한 지적인 실천, 자율적인 활동을 취업이나 눈에 보이는 성과 중심으로 평가절하 하는 환경에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언한수’ 여러분은 ‘볍씨학교’라는 일종의 대안학교에서 공부했어요. 인터뷰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 또한 부모님이 우선 제안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배우기 싫은 것에 억지로 끌려가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본인들이 자란 마을 안에서 다음 세대인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그 배움을 전수하죠. 이런 세대 간 전수도 ‘순환’의 하나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_MG_9100

김지윤:볍씨학교를 간단히 소개해드리면 일반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제안하거나 부모님들이 지지하는 게 가능했던 것 같아요. 저는 초중학교를 볍씨에서 공부했어요. 볍씨 졸업생들이 다른 학교, 다른 일을 하면서 자기가 볍씨에서 배웠던 것을 실제로 사회와 삶에서 실천 하려다 보니 쉽지 않다는 괴리감을 느꼈어요. 경제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돈을 버는 게 참 쉽지가 않다는 것도요.

볍씨학교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있죠. 자신이 받은 혜택이나 축복일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즐겁게 가졌던, 받았던 기억을 동네 아이들과 나누면 좋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래서 볍씨에서 배웠던 공부, 즐거웠던 작은 놀이들을 저희 수업에서 풀어내고 있어요. 예를 들면 마당놀이, 오징어라든가 왕장고 놀이를 아이들과 재밌게 하고 있죠.

지역아동센터라는 공간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이 오는 곳이에요. 경제적인 조건이 아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걸 느꼈어요. 집안의 경제적 여건이 어려우면 아이들은 좋은 성적을 내기 힘들어지고 좋은 성적을 내기 힘들어지면 자존감을 잃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에요. 그러다보니 점차 학교에 가는 즐거움이 사라지죠. 제가 간 센터에서는 그런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 공부를 돕고 있어요.

지역아동센터에서는 책상 공부뿐만 아니라 야외 체험활동도 하면서 학교에서 느끼지 못한 재미를 동네에서 찾아요. 이런 점이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이 아이들이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즐겁게 놀았던 기억을 지닌 채 자라면 그 경험을 나누는 또 하나의 언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활동하기 시작한 계기 중엔 아이들이 동네에서 무언가 역할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알기를 바란 까닭도 있어요. 정말 조금씩 그런 것들을 느끼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아이들이 준비한 사진전에 마을 주민들이 반응을 보이고 그걸 아이들한테 전해줄 때. 그런 아주 작은 사소한 일로 동네 주민도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동네를 바꾸는 일, 동네 어르신들과 아이들이 관계를 맺는 일이 한 순간에 되진 않잖아요. 저희가 지금 한 동네에서 3년째 일하고 있는데 이제야 저희의 정체를 알리게 된 것 같아요. 무언가 변화했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결과가 나왔다고 하기는 애매해요. 그래서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웃음) 아직 우리가 아쉬우니까. 아이들이 동네에서 좀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고 동네 주민들도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아쉬움에서 계속 하고 있지 않나. 정말 작은 보람이 있는 듯 없는 듯 생기면서 말이죠.

[교육 공간의 분열: 삶터와 배움터의 분리]

정아람:‘언한수’ 사전 인터뷰 때 수업 <동네 한 바퀴> 를 정리한 자료집을 받았어요. 어느 강사분의 글을 잠깐 읽어드릴게요. “동네를 돌아보고 나서는 ‘삼리마을이 이런 곳이구나’라는 것이 와 닿으면서 ‘저쪽에는 뭐가 더 있을까? 누가 살고 있을까?’ 등 궁금함과 관심도 더 생겼다. ‘여기에 이런 활동을 해보면 재밌겠다, 여기에 이런 것을 만들면 좋겠다’, ‘내가 산리마을에서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고 해요. 동네의 구석구석을 몸으로 알아가면서 지적 호기심이 왕성하게 자극받고 그걸 탐구하는 추진력도 생기게 된 것 같아요.

동네 또한 하나의 교육적인 공간이라면지금 우리에게 일반적인 교육의 의미는 학교 공간에 유폐되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교육이 국가 기관인 학교 중심적인 제도 안에서만 작동할 때 거기서 학생이 관여할 자리는 제 경험상 거의 부재했던 것 같아요. 그 때문에 학생으로서 내가 만들어가는 교육공간을 고민하고 시도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야 교육의 권리가 학생에게 돌아간다고 생각해요.

최철웅씨를 인터뷰할 때 ‘학생으로서 자치를 경험한 적이 거의 없다’는 점이 와 닿았어요. 자기가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지를 확실히 인식함으로써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을 바꿔나갈 수 있는 의식이 생기는 거겠죠. 김찬호 선생님께서 이와 관련해 해주실 얘기가 있을까요?

김찬호:교육한다는 건 두 가지죠. 집어넣는 게 있고 끄집어내는 게 있어요. 인간은 완성해가는 존재인데 다른 동물에 비해서 미완성인 채 태어나잖아요. 다른 동물은 특별히 배울 게 없어요. 어느 정도 크면 알아서 완성이 되죠. 강아지한테 ‘왜 그 모양이냐, 언제 개 될래?’라고 하지 않잖아요. (좌중 웃음) 인간한테는 ‘언제 사람 될래?’ 라고 한단 말이죠.

완성해가는 과정 중 하나는 기성의 문화나 사회적 규율을 부모와 어른들이 지식의 형태로 넣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기 안에서 솟아나는, 우러나오는 것을 따라가는 거죠. 넓은 의미에서 창의성이라고도 할 수 있고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서 발현하는 끼도 그렇죠. 시키지 않고도 막 터져 나오는 게 있지 않습니까. 애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그런 게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 교육은 후자가 너무나 없어지다시피 하고 너무 일찍 제거되는 게 비극이죠. 창조경제 얘기하면서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고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놀이터를 못 가도록 부모들이 막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인데.

지금 집어넣는 건 너무 많이 하고 있고 균형을 갖추는 안에서 끄집어내야 하는데, 끄집어낸다고 하는 것도 이상하죠.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창의성은 허락되어야 한다. 창의성은 외부에서 누군가가 키워주는 게 아니라 일정한 조건만 갖추면 저절로 나오기 때문이다. 다만 어른들이 그걸 억압하고 허용하지 않는 게 문제다.’

아이들 보면 그렇잖아요. 그냥 가끔 보면 놀고 뛰어다니고 이상한 말 하고 그러잖아요. 그게 허락이 되면 가능하다는 거죠. 그것이 지금 허락되는 게 다 인터넷공간밖에 없으니까 제대로 된 지적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거죠. 학교 바깥의 학교에 의미가 있다면, 학교 안 또한 성격이 변해야 되겠죠. 학생이 없다는 것만큼이나 공간이 없다는 말도 하고 싶어요. 공간이 비좁다든지 아이들이 갈 데가 없다는 것뿐만 아니라 배움과 성장이 일어나는 관계가 살아있는 공간이 거의 눈에 보이지 않아요. 보이면 애들은 기를 펴고 활개 칠거란 말이죠. 그래서 학교 바깥의 아이들이나 청년들이 세상을 말하고 싶은, 삶의 경험을 창조하고 싶은 여지와 실험을 환대하는 실마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외국 여러 사례들이 있으니까 정부에서도 직업 체험을 시켜야하는데 정부에서 방향전환해서 직업체험을 할 수 있는 여건은 안 돼 있으니 일선 교사들에게도 골칫거리죠. 직업 체험 학습이 부모들 몇몇한테 집중되고 직장은 바빠 죽겠는데 애들은 오니 짐처럼 여겨지고, 이렇게 되면 안 되죠. 볍씨학교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숙성되는 대안의 과정이 필요한데 그것 없이 자꾸 속성으로 하려고 하니까 문제이지 않습니까.

정리하자면 근대 이전에는 학교 자체가 따로 있지 않고 삶터가 배움터이자 일터이자 놀이터로 통합되어 있었어요. 근대사회에 들어서 삶터에서 일터를 분리하고 일터에서도 배움터를 분리하고 다 분리시켜 버렸다고요. 주어진 목표를 좇아가기에는 기능적으로 효율적이고 빨라요. 그런데 그 단계를 지나기 때문에 다시 삶터 속으로 일터와 배움터, 놀이터를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작업이 필요하고 거기에서선 아까 지윤씨가 얘기한 ‘작은 보람들’이 굉장히 중요해요. 왜냐하면 작은 보람이라는 건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거거든요. 지금 시대에는 남들이 못 보는 걸 보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그게 뭐 기발한 게 아니라 똑같은 경험이고 사소해보이지만 그 이면에 깔려있는 남들이 모르는 비밀, 보물을 내가 이미 찾았다고 확신한다는 것은 앞으로 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헤쳐 가는 데 굉장히 중요한 자산이 될 겁니다. 그것이 개인 차원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의 사회적 자산으로 있기 때문에 이것을 풍요롭게 확장해 가는 것이 앞으로 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

[질문]

정아람:궁금하거나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다면 자유롭게 말씀해주세요. 논의 테이블을 좀 더 확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백희원:저는 사실 지난주 라운드테이블 사회를 본 백희원이라고 해요. 플로어의 질문을 뺏으면 안 될 것 같지만 기획을 같이 한 사람으로서 궁금한 게 있어서요. 저희가 ‘공공그라운드’라는 이름으로 행사하면서 ‘개인’이라는 단어를 강조했어요. ‘개인’의 의미를 변화시키고 싶었던 건데 우리가 ‘너무 개인적이야’ ‘자기밖에 몰라’ 이런 뜻의 소극적인 개인이 아니라 주체로서의 개인이라는 의미를 좀 더 담고 싶었거든요.

김찬호 선생님께서 ‘우리 때는 청년들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체, 행위자였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오늘날엔 확실히 그렇지 않은 경향이 있어요. 최철웅씨도 말씀하셨지만 ‘88만원 세대’ 이런 식으로 대상화해 불리기 쉬워졌죠. 그런데 그 행위 주체라는, 행위를 해서 누군가를 조그맣게 변화시키고 어떤 식의 반응을 유도하는 주체로서의 경험을 교육 내에서 발견하기가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이걸 특히 언제 느끼느냐면, 대학교에서 조별발표 하면 주체적으로 하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아이디어를 내도 반대나 동의 등 오가는 게 전혀 없거든요.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런 것 같아요. 통과가 되든 떨어지든 아무튼 본인이 내고 싶은 아이디어, 전달하고 싶은 말이 생기잖아요. 진짜 전달하고 싶은 말이 생길 때는 자기 감정 쏟아내는 대화가 아니라 나 하고 싶은 말이라도 상대의 입장을 생각해보게 되고요. ‘내가 이걸 뭐라고 말해야 잘 전달될까’하는 식으로요.

학교에 말을 걸어서 새롭게 의미를 발견하게 된 ‘씨앗들’처럼 행위 주체가 되어보는 경험이 무척 중요하죠. 그건 마냥 어려운 게 아니고 진짜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윤지씨가 ‘씨앗들’을 그냥 시작했다고 한 것, ‘언한수’ 여러분이 학교에서 배운 걸 자신들이 자란 마을에서 하고 싶어서 시작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어떻게 그렇게 가볍게 시작할 수 있었을까. 그 배경이 뭐였을지 궁금해요.

황윤지:저는 정말 너무 가볍게 시작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딱히 이유를 꼽자면 참여하는 친구들 각자 동기는 달라요. 어떤 친구는 그동안 못해본 것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입장이 아니어서 듣고 깜짝 놀랐는데, 자기는 몸을 쓰고 싶다는 거예요. 육체노동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래서 농사를 통한 육체노동이 너무 하고 싶다. 그게 이유였어요. 그걸 듣고 저는 되게 충격적이었거든요. 육체노동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구나.

각자 필요가 다 다른 거죠. 어떤 친구는 채식을 하는데 같이 밥 먹을 친구가 없다, 그래서 여기서 만나서 같이 밥 먹고 싶다. (좌중 웃음) 각자의 욕구가 계기였을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해 보편적으로는 단순한 호기심에 이끌렸던 것 같아요. 저같이 이 분야에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것. 저는 당근 씨앗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안 보신 분들이 많을 거예요. 당근이 당근 씨앗에서 자라는 게 너무 신기한 거예요. 그래서 당근 씨앗을 너무나 보고 싶어 했죠. 어떤 친구는 당근 잎 너무 먹어보고 싶다, 만날 뿌리만 봤으니까. 이런 아주 가벼운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는데 그러다보니까 호기심이 충족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호기심이 생기고 이런 과정에 매료돼서 계속 활동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지윤:‘언한수’는 저희 첫 멤버들의 담임선생님이었던 분이 먼저 이런 일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해주셨어요. 사업을 따와서 저희가 모이게 된 거죠. 알바 하면서 지친 언니들이 있었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가 배운 걸 나누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점이 큰 장점으로 들렸던 것 같아요.

다들 이 일을 어렵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수업이이란 것도 애들한테 뭘 알려주면 되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오히려 하면서 내가 뭘 알려줄지를 생각해야 하고 선생님으로서의 자격도 돌아봐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무 것도 몰라서 가볍게 시작할 수 있었는데 하면서 고민이 생겼죠.

지금도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아요. 그냥 아이들이랑 관계 맺을 때 아이들이 우리 마음처럼 안 되거나 수업 특성상 너무 뛰어다녀서 힘든 점은 있지만 크게 어렵다는 생각은 안 해요. 그래야지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가장 어려운 건 돈 문제인 것 같아요. 지난번에 저희 중 한 명이 ‘우리 진짜 좋은 일 하면서 사는데 왜 이렇게 돈은 조금밖에 못 버냐’고 갑자기 서러움을 토로했어요. 그래서 다들 너무 화가 나서 카톡방이 난리가 났었어요. 어떤 일이든 어려운 점은 다 똑같이 있을 거예요. 그 일만의 고민을 감수하는 게 일의 과정이니 그렇게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문제는 이런 일을 하면서 어떻게 계속 살 수 있을까, 어떻게 먹고 살면서 이 일을 할 수 있는지 답하기가 어렵다는 거죠.

_MG_9281

정아람:언한수는 학생으로 길러지면서 배운 것을 이제는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펼치는 중이잖아요. 더불어 무엇을, 왜 알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과정도 겪고 계시는 것 같아요. 교육으로 맺는 관계에서는 일반적으로 많이 아는 자가 상대방을 아직 많이 알지 못하는 수준으로 상정하면서 판단의 주권을 두고 권력을 부린다면, 언한수, 씨앗들, 잠수함 토끼들은 본인들이 배우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교육의 장을 열고 그렇게 얻은 배움을 도로 동료들과 나누죠.

같은 목적을 공유하고 일을 도모하는 동료로서 서로가 교육하는 관계를 형성한 점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철웅씨는 사전 인터뷰에서 ‘좋은 것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고 하셨죠. 윤지씨 또한 활동 초기부터 지금까지, 청년들이 도시농업을 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고 싶은 바람을 갖고 있다고 하셨고요. 지윤씨도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주고 싶다고 하셨으니 세 분의 활동 모두 혼자서는 결코 해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조별발표처럼 모이는 계기가 마련되어도 참여할 의지가 부족하죠. 협업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수업의 룰에 맞추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학습 공동체가 이루어지기 어렵고요. 지윤씨가 활동의 지속성을 고민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공동체 안에서 서로 교육하는 계기를 만들고 행동하면서 지속해야 할 동기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 팀은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방법으로 해결하려하는지 궁금합니다.

황윤지:씨앗들은 협동조합이잖아요. 조합원들 대부분의 연령대가 20대 중후반에 쏠려있는 편이에요. 그런 한계를 타개하기 위해 지금은 초등학생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조합원이 40여명 정도 활동하고 있어요. 이렇게 세대 간 확장을 통해서 다양한 세대나 단체를 만나려 하고 있죠.

저희는 협동조합임에도 지역성이 많이 부족해요. 주로 학내에서 활동 하다 보니 학생들의 지역성이 별로 뚜렷하지 않아요. 지방에서 온 친구들이 대부분이어서 자취하거나 이사 다니는 경우가 너무 많죠. 그래서 지역에 대한 애착이 부족한 편이고 저희도 그렇거든요. 자기 주위의 텃밭을 가꾸는 게 도시농업인데 저희는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고 활동하다보니까 땅 문제로 마찰이 심했고 힘들었어요. 지금도 땅을 매년 옮겨 다니면서 활동해요. 그래서 농사의 진정한 가치를 실현하기엔 아직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에요.

협동조합은 구에 소속되는 시스템이니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지역성을 갖고자 한 거예요. 지금은 서대문구로 이사 와서 이 지역 주민들과 연계활동을 하려고 해요. 최근에도 주민들과 만나서 이런저런 얘길 나눴는데 저희를 반가워하세요. 청년팀이 지역 안으로 흡수된다는 점에서 ‘언한수’에 부러운 점은 마을 안에서 순환하면서 살고 있다는 거예요. 마을 안에서 하나의 사회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저희도 그러한 것에 욕구가 강한 단체거든요. 지역에 정착해 청년들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분들과 만나서 연계하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커요.

교육의 측면에서는 생각하면, 자기가 알고 있는 내용을 가르치면서 소모해버리는 구조를 좋아하지 않아요. 서로 간에 자극을 주고받고 배우는 활동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저희도 처음에는 강의식 수업을 운영했어요. 그러다보니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친구들이 많지 않더라고요. 아무래도 강의하는 쪽과 듣는 쪽 역할이 구획되다 보니 저희도 점점 수업 방향을 고민하고 바꿔갔어요. 지금은 대부분 토론식으로 수업해요. 권위적으로 많이 아는 사람이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구조보다는 서로 자극을 주고 배우는 구조가 더 건강하고 지속성이 있다고 생각해서요. 너무 평등하다보니까 만날 뭐 하면 싸우는 단점이 있지만요. 운영회의 할 때도 1시간 계획해놓으면 세 시간 동안 싸우느라 안 끝나기도 하지만, 건강한 공동체를 꾸려나간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지역성에 주안점을 두고 활동을 해나갈 계획입니다.

김찬호:두 가지를 질문 할게요. 첫 번째는 농산물을 자체적으로 다 먹나요?

황윤지: 아무래도 자급이 일순위에요. 도시농업을 큰 규모로 하지 않으니 각자 가져가는 양으로도 많이 부족한 편이어서 봄·여름 작물을 수확하면 저희 자급용으로 써요. 가을 작물은 한꺼번에 수확하는 경우가 많아서 지역에서 다함께 김장 행사를 열고 지역 어르신들과 나누어요.

김찬호: ‘씨앗들’이 연결의 매개체가 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두 번째, 아까 다른 대학들도 하고 있다고 했잖아요. 지역 간의 연계를 얘기했는데 대학 간의 연계도 생기는 거 아니에요?

황윤지: 네, 도시농업은 대학단체뿐만 아니라 전국 도시농업 네트워크가 잘 형성돼있어요. 선배 단체뿐만 아니라 지역단체들도 다 연계가 돼있고 대학도 사실은, 처음에 저희가 2010년에 활동할 땐 저희뿐이었는데 각 학교에 이런 단체를 만들고 싶어서 직접 찾아가 수업하다 보니자극 받은 수강생들이나 친구들이 자생적으로 만들기 시작하더라고요. 지금은 거의 10개 대학 에서 다양한 동아리들이 각자 이름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고 연계할 수 있는 기회도 굉장히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아람:잠수함 토끼들은 기획단 안에서 재생산하기 위해 어떠한 전략, 노력을 쏟고 있나요?

최철웅:저희도 교육 활동을 하다 보니 지금 얘기 나온 ‘배움’과 ‘자치’를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처음 시작할 때 쓴 슬로건이 ‘자기 교육 운동, 해방의 인문학’이에요. ‘자기 교육’이란 말은 ‘자기 계발’에 대항해 기획단 내부해서 고민해 채택했어요. 지금 대학의 교육이라는 게 사실상 실질적으로 배움이라 할 만한 것이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수업은 학점을 따기 위해 전략적으로 선택해서 듣고 정말 내가 듣고 싶은 강의는 한 학기에 한 두 개 정도만 선택하죠. 나머지는 학점을 잘 맞을 수 있거나 팀플(팀프로젝트)이 적다는 점을 고려해서 수강하게 되죠. 사실상 최근에 보면, 교양강의도 예전 같지 않아서 100명씩 듣는 대형 강의를 하잖아요. 커리큘럼의 경우 중앙대는 교양강의가 짜여 나와요. 강사가 자기만의 독특한 커리큘럼을 짜서 교육할 수 있는 여건이 거의 안 되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스펙을 쌓고 토익공부를 하거나 시험공부를 하죠.

공부 또는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자기가 스스로 문제를 설정하는 데 있죠. 내가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스스로 문제라고 느끼는 것을 설정하고 문제임을 의식하는 게 중요한데 그런 경험을 거의 못해보고 있어요. 도서관 가면 대학생들이 태반이 문제를 풀고 있잖아요. 남이 낸 문제에 자기가 답만 찾는 연습을 고등학교 이후 대학에서도 하고 있는데, 자기계발이나 스펙도 마찬가지죠. 그 자체가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하고 싶다면 자기 계발 열심히 하고 스펙 쌓는 게 자연스럽지만 보통은 자기의 욕망이 아닌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괴리감을 느끼고 별로 흥을 못 느끼는 거죠.

그래서 저희는 내가 듣고 싶은 강의가 무엇인지, 어떤 강사를 섭외하고 싶은지 이런 것들을 고민하며 스스로 기획해하고 커리큘럼을 짜요. 대부분의 커리큘럼을 강사 선생님이 짜기도 하지만 저희가 피드백을 해서 어떻게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요청하기도 하고요. 자캠에서 계속 강의하는 선생님들도 대학에서 강의할 때와 달리 배우는 게 많다는 얘길 많이 하시죠.

기획단 자체적으로도 단순히 강의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기 교육을 하기 위해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어요. 책읽기 모임도 계속 했고요. ‘교육’, ‘대학’, ‘인문학’은 무엇인지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답을 찾아보는 과정을 공유하면, 동일한 지점에 도달하더라도 자기가 처음부터 고군분투해서 찾아간 경우와 주어진 정답을 남에게 들은 경우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에 대학 안에서는 인문학을 통폐합하느라 난리인데 대학 밖에서는 인문학이 부흥하고 있잖아요. 인문학 스타가 등장하기도 하고요. 세상에 대한 자기만의 고유한 관점, 가치관, 문제의식을 설정하고 나름의 판단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대학 교육은 그것들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 아닐까요? 그래서 특히 자캠처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자기가 원하는 교육, 배움,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기획해 스스로 꾸려보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질문1: 요즘 많이 하고 있는 고민인데 개인적으로 정리가 안 돼서 질문이라기보다는 그냥 말씀드려요. 제가 주로 하는 일은 부업으로 방과 후 아카데미, 학교 밖 교실 같은 수업으로 초등학생이나 청소년수련관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있어요. 저는 거창하게 혹은 있어보이게 아이들이 자기 삶의 미학, 미술 세계를 어떻게 꾸릴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데 그러면서도 넓은 의미로서의 동료로 아이들과 관계 짓고 싶기도 해요. 그런데 사실상 아이들은 교육, 관계, 학습보다는 그냥 적을 둘 사람이 필요한 거예요. 아이들과 저의 관계는 ‘제도권 밖 학습’ 아니면 ‘애정’ 이런 식으로 양자 구도로밖에 형성이 안 되는 거죠. 그렇다고 제가 그곳에 가서 미술 실력 향상을 위해서 애들한테 매일 진도를 빼고 빡빡하게 교육시키기에는 ‘방과 후 아카데미’ 로 불릴 필요가 없고요.

일단은 수업이 닥치고 교육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에 제가 계속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스스로 받고 기관이나 아이들한테 보여주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교육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감정노동을 당겨쓰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들 심리 치료를 하는 건지, 교육이 무엇인지, 인간이 인간을 가르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고 이런 식이라면 제도권 입시 학원 같은 데 들어가서 학습 능력을 증진 할 수 있는 사무적 관계가 훨씬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제가 쓰는 즉각적인 감정노동과 별개로 어쨌든 애정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데 이 애정이 제도권과 제도권 밖 애정으로 양분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걸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 그러면서도 제가 가르치는 과목이 있고 학습향상이라는 대외적 목표가 있으니까 이걸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 고민이 들어요. 패널분들께 질문의 형식으로 여쭤본다면 그런 조율점에서 어떻게 고민하고 계시는지. 사람에 대한 애정일 수도 있고 교육자체에 대한 애정일 수도 있고 그런 점들이 항상 고민이 되는 것 같아요.

질문2:저는 지금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거든요. 특성화 고등학교이긴 한데 초중고가 아무리 적어봐야 한 반에 30명이고 엄청 힘들거든요. 자캠 공개 강연을 몇 번 들은 적이 있어요. 그때 생각했던 게 -제가 제대로 강의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교육받는다는 게 뭘까, 교육이 불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점이었어요. 학교는 가끔씩 EBS (강의) 영상 틀어주잖아요. 거기서 항상 얘기하는 건 꿈과 미래인데 학교를 다니면서 꿈과 미래를 준비한다면 학생들한테는 현재가 없게 되잖아요. 현재를 계속 유예시키는 상태랄까요. 현재와 미래를 같이 만들어나가는 교육이라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정아람: 첫 번째 질문자께서는 교육자로서 학생과의 관계를 설정하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셨어요. 제도 교육 바깥에서 종사하면서 학습 능력을 배양하는 것과 학생에 대한 애정 중 무엇에 중심을 두어야하는지 어렵다고 하셨는데요, 지윤씨께서 경험을바탕으로 답변해주시면 어떨까요? (웃음)

두 번째 질문자의 의견은 ‘학생들의 미래를 위한 교육이 학생들의 현재를 유예시키는 현실에서 교육은 불가능하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지윤: 첫 번째 질문에 먼저 답하면, 되게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처음 2년 동안은 질문하신 분과 비슷하게 미술 등 예체능 중심으로 수업을 했어요. 그러면서 고민이 많았어요. 지역아동 센터에서는 아이들이 미술이나 사진 기술을 배우고 능력이 향상되는 것, 결과가 멋있게 나와서 부모님들이 “와”하는 걸 원하셨거든요. 한편으론 저희가 ‘삼성 꿈 장학재단’에서 지원받아 진행하고 있으니 사업지원서에 쓴 대로 목표했던 바의 결과를 도출해야 인정받고 지원을 계속 받을 수 있는 거예요.

아이들과 그저 산책만 하는 것도 동네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일인데 사업계획서 상에는 산책이 수업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어요. 계획서에 미포함 된 활동을 하면서 결과를 어떻게 잘 낼지가 고민이었죠. 동시에 아이들이 어떻게 즐길 수 있게 할지도요. 결론이 쉽게 난 게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답변드리기 어려울 것 같아요. (웃음)

한 가지 깨달은 건 3년 동안 제가 수업하면서, 절대 선생님이 원하는 대로 아이들은 움직이지 않고, 내가 목표한 걸 수업에서 이루려고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목표로 한 바가 아이들한텐 일방적일 수 있잖아요. 아이들은 그냥 수업을 해야 하니까 한 건데, 내가 오늘은 꼭 뭔가를 완성시키자, 글 하나씩은 꼭 쓰자고 하는 건 일방적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고 저마다 사정도 다르죠.

지역아동센터 선생님들도 같은 고민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마주한 고민을 나눌 수 있어요. 저희도 아이들과 싸우는 것처럼 감정이 소모되는 경험을 많이 했어요. 내 경험에 한해서 아이들한테 알려주거나 상황을 대처해야할 때 스스로 한계에 부딪쳐서, 사회자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아동발달 등을 공부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강사들끼리 모임을 갖고 고민을 나누죠. 이런 모임을 유지하는 것도, 고민을 해결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질문자가 말씀하신 ‘유예’라는 표현에 공감해요. 저는 대안학교를 나왔지만 그래도 질문을 받아요. 대안학교 학부모들이 대안학교 졸업생들은 뭐 하고 사는지 가장 궁금해 하세요. 확실한 케이스가 없으니까 내 자식들은 어떻게 자랄지 많이 불안해하시죠. 그래서 그 답을 졸업생들한테 찾으려고 하는데 졸업생들은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요. ‘앞으로 너는 뭐가 되려고 이런 일들을 하니’ 라는 질문을 많이 하세요. 대안학교 학부모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교육을 받든 10대, 20대 똑같이 ‘넌 앞으로 뭐가 되려고 하니’란 질문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그럼 저희는 뭐가 되려고 한다기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면 안 되겠냐, 왜 그건 안보고 뭐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자꾸 포커스를 맞추는지’ 반문하게 돼요.

질문3:두 번째 질문하신 분의 얘기를 듣고 정리해보았는데요, 김찬호 선생님께서 답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교육 상품화’의 대안이 마을 교육의 복원에 있다거나 개인이 경험한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교육을 벗어나는 게 더 교육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교육이 왜 필요한지 의문이 들어요. 오히려 저런 대안적인 교육 모델이 교육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건 아닌지요? 선생님 본인이 받았던 교육의 경험도 궁금합니다.

김찬호:‘교육’이라는 말에 담긴 개념의 문제일 수 있죠. ‘교육’보다는 ‘학습’, 학습보다는 ‘배움’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해야할 것 같아요. 어차피 모든 개념이라는 게 역사성을 갖잖아요. 우리가 경험한 바에 기초해서 말을 쓰게 돼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받은 교육이 우리가 쓰는 말인 ‘교육’ 의 의미가 되어버린 거죠. 원래 순수한 의미의 교육이 뭐냐는 질문은 계속 해야 되겠지만 일상에서 쓰는 ‘교육’은 우리가 그저 받아 익숙한 학교 교육이지 않습니까. 그것이 기능부전 또는 우리 삶을 상당히 부실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이걸 보완할까 생각해보게 되죠.

‘이것 아닌 저것이 정답’ 식으로 대안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공교육에서도 잘 자란 예가 전혀 없진 않거든요. 저 역시 공교육을 통해 쭉 컸고 우리 세대 때는 대안학교라는 것도 없었어요. 대안학교가 있어서 다녔다면 제 인생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제 청소년기에 학교만큼이나 영향을 미친 곳은 교회였어요. 고등학교 , 대학교 과정에서 학교와 별도로 저를 성장시킨 곳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기독교 신앙이 투철했기 때문이기 보다는 학교나 가정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활동이나 관계 맺기 또는 실험을 통해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 있었다고 봐요. 그게 제겐 가장 소중했고요.

우리 때 대학은 여유가 있었죠. 교수들도 시간에 쫓기지 않았어요. 그냥 순수하게 호기심이 많은 저의 배움을 이끌었던 것 같아요. 그걸 모아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여유도 있었고 스터디 모임 등 만남이 제게는 풍성하게 있었습니다.

교육 상품화에 대한 대안으로 마을뿐만 아니라 마을을 벗어난 영역이 있을 수 있고 인터넷 공간에서도 얼마든지 훌륭한 배움이 일어나고 있어요. ‘TED’와 같은 강의만 봐도 질 높게 제공되고, 팟캐스트도 또한 그렇죠. 지적인 면에서만 본다면 접할 기회는 엄청나게 많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을 어떻게 자기 나름대로 편집하고 관계 속에서 배움의 에너지를 낼 수 있는가 그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아람:십 분 정도 더 시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질문 있는 분 자유롭게 말씀해주세요.

질문4:발표 잘 들었습니다. 저도 일반적인 공교육을 받아와서 말씀하신 대로 대안학교나 다른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어요. 1,2년 뒷면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는데 입학을 앞둔 다른 부모들과 똑같이 해외로 나가야할지 여건이 안 되면 국내에서 조기 교육을 시켜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제가 보기엔 세 팀의 활동이 한국 사회에서 큰 자산이고 역량, 동력, 힘이 될 거란 생각이 듭니다만 저 또한 앞 질문에서 나온 ‘(아이들의) 미래가 없다’는 점을 고민하고 있거든요. 이런 공교육에서 아이를 키울 때 과연 미래가 있을까 하는 고민은 똑같이 할 겁니다. 결국은 대안학교를 갈 거냐 일반 학교를 갈 거냐 하는 건 미래에 한국 사회가 바라는 인재상과 연관될 텐데요.

산업화를 거치면서 지금의 사회는 일반적으로 기업식 인재를 키우는 쪽으로 교육하고 있죠. 사회를 바꾸지 않으면 교육은 그대로 유지될 겁니다. 그래서 먼저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를 바꾸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이 앞에 나온 분들이 활동을 하고 계시는 거겠죠. 이런 활동이 한국에서 계속 확장되어야 하고 퍼져나갈 수 있는 원동력을 만들어야 되겠는데, 지금 하시는 활동에 힘든 점도 있고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할 수도 있잖아요. 그럼에도 활동을 더 많이 공유하는 방법으로 무엇이 있을까요? 더불어 김지윤씨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기업은 사회적 책임 분야에서 계속 고민하고 있는데 기업과 같은 민간이나 지자체의 지원 프로그램을 찾아보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정아람: 활동을 공유하는 방법, 그리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일환인 지원 프로그램과의 연계 의향을 짚어주셨습니다. 대학을 인수한 기업과 직접 부딪치고 있는 잠수함 토끼들부터 들어볼까요?

최철웅:여러 가지 질문이 계속 나왔는데 차례로 짚으면서 답변해볼게요. 맨 첫 질문인 교사와 학생 관계 설정 문제. 저희도 강좌를 하면서 드는 고민이지만 강사 선생님 또한 같은 고민이 들겠죠. 이런 자리에 와서 내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강의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대안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기 때문이죠.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뒤풀이를 자주 갖는다고 했는데 그런 인간적인 관계맺음이 중요하잖아요. 하지만 처음 만나는 낯선 환경에 낯선 사람들이 있으니 어느 정도 감정 노동이 필요하기도 한 거죠. 저희는 기획단이 감정노동 부분을 전담하고 있어요. (좌중 웃음) 뒤풀이건 강의이건 기획단이 주도적으로 매개, 촉매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고요.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술을 많이 먹게 되는 단점이 있죠. (좌중 웃음) 밤새 뒤풀이를 끝까지 남아서 챙기는 상황이 많죠.

두 번째로 교육 문제를 말씀해주셨는데, 초중고는 잘 모르겠어요. 대학은 공교육, 고등교육이라고 할 만한 위상에 걸맞지 않게 기업화되고 취업 준비소, 직업 훈련소가 되어버렸죠. 대부분의 대학이 구조조정을 시작하면서 인문사회과학 학과나 수업을 폐지하는 추세예요. 중앙대에서는 ‘회계’를 교양필수로 가르치고 있어요. 이사님이 ‘대학생이 졸업하는데 숫자는 좀 알아야지’이런 마인드로. 예전 같으면 사무 경리의 직무를 맡을 때나 필요한 건데 대학생들에게 전부 다 필수로 가르치고 있는 상황인 거죠.

공교육의 가능성이 너무 희박해 보이는데, 그동안 내가 어떤 시스템 안에서 어떤 교육을 받아왔는지, 앞으로 어떤 배움을 받을 것인지 묻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대학은 그나마 초중고보다 나은 형편일 수 있겠죠. 저희처럼 대안적인 교육 형식, 배움의 공간을 스스로 기획하고 만들어보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각 대학마다 이런 것들이 하나씩 생겼으면 했어요. 학내 교수, 강사, 대학원생 연구자,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싶은 친구들이 서로 대학 안에서 만날 수 있는 형식이랄까 기회가 별로 없어요. 어떤 관계의 형식으로 만나냐가 중요한데 기존의 강의실, 수업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죠. 그래서 다른 형식 속에서 만날 필요가 있는데 자캠은 강사나 학생 입장에서 부담 없이 와서 교류하는 형식인 것 같아요. 평소 고민하던 것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을뿐만 아니라 굉장히 저렴한 수강료를 책정하기 때문에 학생 입장에서 부담 없이 수강하고 강사들에겐 소정의 강사료를 드릴 수 있죠. 단순히 재능기부가 아니라 자기의 생활도 충족시키면서 학생을 만나는 기회가 되는 거고요.

기획단은 무급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평소에 하고 싶은 활동을 대학 안에서 자유롭게 부담 없이 할 수 있죠. 예전에는 각종 학회랄지 세미나랄지, 비슷한 형식인 ‘제2대학’이라는 운동도 있었는데 그런 대안적인 형식이 무너지면서 대학 안에서 숨 막히는 상황이 되었죠. 그래서 대학 밖에서 인문학을 갈구하지만 대학 안에서도 여전히 그런 것들을 시도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대학에 많이 남는 강의실이 활동에 현실적으로 중요한 조건이에요. 학생이기 때문에 임대료를 내지 않고 쓸 수 있으니까요. 학생도 많기 때문에 대학이라는 공간을 활용해서 대안 공간을 더 많이 만들면, 대학이 하나만 있어도 큰 기능이나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도 그런 것이 많아지는 추세니까 더 많아져서 네트워크를 이루면 좋겠죠.

저희로선 기업의 지원은 고려하고 있지 않아요. 기업에 데인 게 있어서 (좌중 웃음) 가능하면 받지 않고 거리를 두면서 활동하려고 합니다.

_MG_9353

정아람:활동 공유에 대한 다른 두 분의 대답은 잠시만 미루고 잠깐 개입해서 한 가지 더 질문할게요. 대학 안에서 대안적인 교육을 하고 계신데 사회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대학 입시를 거부하는 운동도 있고 대학 자체가 과연 지속되어야 하냐는 질문도 있죠. 대학의 실효성을 어떻게 고민하고 있나요?

최철웅:대학에 다니지 않는 편이 나을 정도로 대학 교육의 내용적인 측면은 굉장히 열악하다고 생각해요. 교육의 양은 많은데 질적으로는 과소교육을 대학에서 체계적으로 받고 있는 상황인 것 같아요. 정말 필요한 건 일부러 안 가르치고 필요 없는 것들만, 막대한 부담을 주며 가르치다보니 대학생들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는데 몇 년 동안 끙끙거리면서 토익을 공부한다든지 스펙을 쌓겠다고 이런저런 문제집을 풀고 상식을 굳이 공부하죠. 이런 것들이 사실상 실질적인 교육엔 도움이 안 되는데도 공부하기에는 힘든 것들이죠. 경쟁 구조에서 몇 년씩 해야 되니까요.

어쨌거나 그럼에도 대학이라는 물적 공간이 가진 효과랄지 대학이 가진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대학을 여전히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대학 도서관을 지역 주민에게 개방하는 시도가 최근에 있던데 대학에는 공간, 연구 성과, 공부하는 지식인들, 학생 등의 자원이 많잖아요. 특히 공간이 굉장히 중요하죠. 대학 강의실도 수업 후와 방학 상당히 비어있고 자치 공간도 마련되어 있죠.

김찬호 선생님께서 초반에 배움의 공간이 부족하다는 문제점을 짚어주셨는데, 활동하다보면 다들 느끼겠지만 대학 안에서 자치 활동을 할 때 공간 하나가 없어서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동아리방 하나도 주어지지 않아서 떠돌아다니는 거죠. 그러다보니 커피숍 같은 데 가야 하는데 자기의 생활공간에서 활동이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상황이 되죠.

대학 안에서 자기의 활동 공간을 쟁취하고 대학이 갖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 공공성을 우리가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대학이 가져야 할 공공성의 기준에 근거해 교육이 상품화되었다고 비판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대학의 역할, 위상을 사회적으로 주문하고 대학의 자원을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아람: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어서 다른 두 팀이 활동을 지속하고 시민사회에 공유하는 방법을 들려주시면 되겠습니다.

황윤지:제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말씀드리자면, 제가 활동을 시작한 2012년 당시에는 도시 농업에 관련된 강좌가 미미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굉장히 많이 보급되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굳이 도시농업을 표방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도시 농업에 참여하고 교육받고 교육하시는 분들이 많이 늘어났죠. 이러한 원인으로는 물론 저희도 열심히 홍보한 몫이 조금은 있을 수 있지만, 다양한 단위 주체로서 각자가 모두 열심히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지금의 성과가 완성형은 아니지만요.

저도 초등학생이나 학교 교육에 관심이 많은데, 텃밭이 보급된 초등학교가 굉장히 많아요. 처음에는 없었지만 이제는 지자체에서 강요하기도 하고요. 발표회를 들으러 가면 ‘올해에는 200개 초등학교에 텃밭을 보급하겠다’ 이런 정책으로 발표해버린단 말이에요. 그럼 학교 입장에선 거기에 맞추는 게 좋아요. 그러다보니 지자체에서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것도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어요. 학생들에게 필요한 이유를 알고 난 다음 프로그램에 참여하겠다는 학교도 생기고 저희같이 이런 교육에 자발적으로 들어가는 팀, 교육자도 많아요.

그밖에도 저는 가장 큰 역할을 하는 분들이 학부모님들이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텃밭 수업을 나가보면 학교에서는 성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농작물에 몰래 농약을 치기도 하고 그래요. 그런데 학부모가 참여한 학교에 가면 그분들이 더 나서서 ‘우리 애기들 먹을 거니까 더 건강하게 키우고 싶다’고 수업 외의 시간에도 관리를 해주시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 아이들에게 텃밭을 만들어주고 지역 주민들과 함께 이용하고 싶다며 자발적으로 학교에 건의하는 학부모도 많고요.

저는 텃밭 관련해서밖에 말씀을 못 드리지만 다른 분야도 똑같이, 오늘 프로그램 주제와 비슷하게 각자 개인이 어떤 주체로서 활동을 제안하고 이끌어가야지만 사회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 때문에 이게 안 돼’ 하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잖아요. 그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은 어떤 한 단체가 아니라 저희같이 작은 단위 주체들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희끼리 재밌게 활동할 수 있지만 굳이 조합을 만든 이유도 저희 같이 사소하고 어떻게 보면 허접한 주제로도 이런 활동을 표방하고 공공연히 할 수 있다, 그리고 파급력을 조금이라도 미칠 수 있다, 다른 주제로도 이런 단체가 많이 생기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서 사회가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알리고 싶은 측면이 커요.

덧붙여 말씀드리면 대학 텃밭은 저도 처음에는 불모지라고 생각했어요. 학교에 텃밭을 만드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는데 막상 학교를 돌아다니다 보니까 저희처럼 대놓고 표출을 안했다 뿐이지 교수님들 끼리끼리 동아리로 텃밭 운영하시거나 학교 직원분들, 경비아저씨들 모여서 병아리 키우는 분들고 계시더라고. 닭 키워서 드시는 줄 알았어요. (좌중 웃음) 허가는 안 받더라도 닭 축장에 키우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저도 그런 걸 발견할 때마다 굉장히 놀랐고 가서 이야기 나눠보고 공감대 찾은 적이 많아요. 이런 식으로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학교 커뮤니티도 바꿀 수 있고 저희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궁극적으로 사회에 작은 변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여기 계신 분들도 관심 주제를 드러내서 같이 모여서 활동해보면 의미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지윤: ‘언한수’는 광명이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광명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싶어요. 뉴스레터를 만들어서 지역 내 지역아동센터나 여러 기관에 배포한다든지 지역 장터에서 주민 분들과 직접적으로 만나면서 활동을 공유하고 있어요. <동네 한 바퀴> 자료집을 만드는 이유도 저희가 활동하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 같이 뭔가를 했으면 좋겠다, 이런 게 하나의 실마리가 되길 바라기 때문이에요. <IDEC>이라는 큰 행사를 준비하는 이유도 이렇게 활동하는 청년들이 많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고요.

저희도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여러 가지 방법을 많이 찾아봤고 실제로 한 해에 여러 개의 사업을 따서 진행한 적도 있어요. 문제는 프로젝트성이다보니 단기간이라는 거예요. 사업을 일년 짜리로 하면 더 이상 돈을 받을 방법이 없고 그럼 어떻게 우리가 지속적으로 돈을 벌면서 할 수 있냐는 고민을 계속 해요. 우리가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에 비해 돈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죠.

저희 팀 자체도 우리가 어떻게 돈을 지속적으로 벌 수 있을까도 고민해야 하지만 지원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점도 같이 고민해야할 것 같아요. 다들 아시다시피 청년들이 돈 벌기가 쉽지 않고 첫 시작은 지원받으면서 해야 하는 게 맞기 때문이죠. 활동하고 있는 지역인 광명시에서 받으면 가장 좋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있어요. 그런 것들을 받기 위해 저희 활동을 알리기도 하고 계속 고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아람:이 모든 얘기를 종합해 김찬호 선생님께서 짧게 정리해주셨으면 합니다. 짧게요. (웃음)

김찬호: 중요한 말씀 다 하셔서 간단하게만 하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마음에 담기는 일과 공부를 한다는 것, 거기에 삶의 꼬리를 내리면 다른 사람들이 ‘너 뭐가 되려고?’ 이런 말들을 견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미 세 팀이 그런 토대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고요.

엄청나게 큰 것도 사회이지만 자기 일상의 조건도 작은 사회거든요. 자기를 지지해주고 승인해주는. 우리는 지금 생존투쟁도 어렵지만 인정투쟁도 어렵습니다. 인정받기가 참 어려운데 서로 인정해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게 필요해요. 대안학교를 보낼까 하는 고민도, 어느 학교를 보낸다고 아이가 결정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인간은 참 알 수 없고, 아이를 키워보니 어느 부분은 팔자더라고요. (좌중 웃음) 많은 걸 그냥 그러려니 하고 두세요. 너무 세세하게 계획하려면 더 힘들더라고요.

마지막으로 돈이 중요하죠. 광명시에서 받으려면 거기 행정을 좌우하는 이런 청년들이 시의원에 나가야된다고 봅니다. 의원들이 의외로 큰 역할을 하거든요. 지금 엉뚱한 일을 하니까 엉터리로 돈이 쓰이고 있는데 장기적으로는 그런 전망을 바라보면서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아람: 에둘러 왔지만 교육의 공간이 사적으로 축소되고 교육이 하나의 재화로 변질된 배경을 살펴보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생존의 방편이 시장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교육 또한 생존의 한 방편이 되면서 교육의 상상력이 시든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교육의 공공성은

나의 생존이 지역과 사람들의 연계 안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개인이 자리한 공적인 영역과 교육을 고심해보았으면 합니다.

단순히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경쟁 중심적인 사고가 아니라 길고 너른 관점으로 ‘우리 삶은 어떻게 해야 좋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질문하면서 교육의 공적인 역할과 책무를 생각한 계기가 되었길 바랍니다. 이분들의 활동이 지자체나 기업의 단기적 지원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풍토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지금 여기에 와 계신 여러분들의 지지와 후원일 겁니다. 네 분께 다시 한 번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댓글 남기기